[김성기 칼럼] 민심 경고에도 탄핵 내닫는 선출 권력

미 관세 쇼크 속에 물가 불안, 민생 외면

2025-10-03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안전장치 없이 받아들일 경우 한국 경제가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와 같은 충격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미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원하는 투자 방식과 규모를 확정하려면 한미 통화 스와프 등의 안전장치가 전제돼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되는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서 시사잡지 타임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그것(미국의 협상 요구)을 받아들였다면 탄핵당했을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며칠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3500억 달러 투자를 “선불”이라고 주장해 탄핵까지 떠올리게 한 미국 요구 수준을 짐작케 했다.

IMF 외환위기는 한국인에게 악몽과 같은 경험이었다. 한보그룹을 필두로 기아자동차와 진로, 대우 등 부채를 기반으로 외형을 키웠던 재벌들이 연쇄도산하고 외국자본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IMF 관리체제로 경제주권이 넘어가면서 시중금리가 폭등하고 기업도산과 실직, 이에 따른 가족해체의 비극이 속출했다. 외채를 갚기 위한 금 모으기 운동으로 결집한 국민 여망이 결실을 이뤄 외환위기를 어렵게 이겨낼 수 있었지만 그 트라우마는 아직 뇌리에 남아 있다.

한·미 관세 협상이 길어지면서 갈수록 압박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 대미 수출 자동차 관세가 25%로 높아져 일본이나 유럽연합(EU) 등 경쟁 상대국들의 15% 관세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졌다. 의약품과 반도체 등 관세도 급격한 인상이 예고돼 철강을 포함한 제조업 전반에 걸쳐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9월 수출입동향에서 전반적인 호조를 기록했으나 이는 관세 장벽이 높아지기 전 ‘밀어내기 수출’ 덕분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최대 교역국인 미국 수출은 감소세를 보였다. 3500억 달러 투자를 현금으로 내놓으라는 압력이 거세져 환율이 달러당 1400원대로 치솟는 요동을 쳤다. 미 증시 훈풍에 힘입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던 국내 증시는 관세 협상 난항과 환율 급등의 영향으로 한때 폭락장세를 보였다. 추석 연휴 직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외국인 매수세가 몰려 사상 최고치인 3500선을 훌쩍 넘었다. 그러나 관세 협상 추이에 따라서는 다시 급격한 변동을 배제하기 어렵다.

7월 시작한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에도 8월 소매판매가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설비·건설 투자도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는 소비쿠폰 지급으로 경기가 풀릴 것이라고 장담했으나 8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오히려 2.4% 줄었다. 소비쿠폰이 기대와는 달리 반짝 효과에 그쳤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9월 물가는 쌀, 소고기, 달걀 등 식자재값이 크게 올라 추석을 앞둔 가계를 압박했다. 지난 9월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온라인 행정시스템을 마비시켜 혼란을 더했다. 화재가 진압되고 우체국 금융·우편과 주민등록 시스템 등 복구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당분간 국민 불편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심상치 않은 민심 동향 주목해야

대미 통상협상이 난관에 빠지고 수출 쇼크와 시장 혼란이 가중되는 어려운 시기에 민주 헌정의 기반인 3권분립을 흔드는 입법 권력의 독주에 국민의 따가운 시선이 쏠린다. 더불어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것을 비판하며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주장했던 민주당은 사법개혁을 내세워 조 대법원장 퇴진과 대법관 증원, 헌법소원제도 도입까지 내세워 압박을 가중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우리는 불의한 대통령들을 다 쫓아냈다. 대법원장이 뭐라고 이렇게 호들갑인가”라고 일갈했다.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도 조 대원장 공격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내란 세력에 면죄부를 주는 ‘사법 세탁소’ 역할을 했다며 즉각 사퇴를 주장했다. 근거가 희박한 음모론에서 비롯된 청문회 개최를 무리수라는 언론 보도에 대해 정 대표는 ‘이간질’이라고 공격했다. 언론을 외면하고 탄핵까지 거론하는 여당을 보는 국민 시선이 곱지 않다. 선출 권력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헌정을 흔들어 나라를 결딴내는 게 아니냐 하는 걱정이 지나친 기우로만 들리지 않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가 급락했다는 소식이 예사롭지 않다. 민주당 지지율도 동반 하락을 면치 못했다. 한·미 관세 협상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것과 함께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 탄핵을 겁박하고 검찰청 폐지를 비롯한 정부조직법 개편 등을 밀어붙여 부정적인 평가를 키운 것으로 평가된다. 국민은 집권 세력의 과잉 의욕과 여론을 외면한 무리한 정책이 거듭하면서 초래한 결말을 이미 여러 차례 목격했다. 아직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선출 권력자들에게는 쓸데없는 얘기겠지만 지금은 주변 여건을 냉정하게 돌아볼 시기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