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기 칼럼] 내 집 마련 포기하고 주식 사라고?
실수요까지 몰아낸 규제에 시장 패닉
2025-10-17 김성기 부회장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규제 카드는 이번 10·15 대책에서 거의 나온 듯하다. 수도권 아파트 담보대출 한도가 가격대별로 차등 적용되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도 함께 떨어져 대출 한도가 현행 6억원에서 다시 몇억원씩 빠질 전망이다. 아파트값이 크게 오른 한강 벨트뿐 아니라 강북 지역과 외곽까지 3중 규제를 받게 된데 대해 주민 반발이 적지 않다고 한다. 내 집 마련을 위해, 또는 집을 늘려가기 위해 어렵게 저축해온 실수요자까지 무차별 규제를 받게 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 실장은 이재명 대통령을 거론하며 부동산에 쏠린 자금을 생산적 부문, 특히 자본시장으로 돌리겠다는 정부 의지가 매우 강하다고 했다. 3중 규제는 자본시장을 염두에 둔 의지를 반영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 대통령은 대선 전 “세금 부담을 늘려 집값을 잡지 않겠다” 공언했다. 그러나 최근 집값이 다시 급등하자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개인 의견이라는 전제로 “보유세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다른 말을 했다. 안정적인 주택 공급으로 부동산 정책을 주도해야 할 장관이 세금에 의존해 시장을 규제하려는 안이한 인식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따랐다. 김 정책실장도 부동산 대책에 세금 카드를 배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현실적으로 시장을 안정시킬 만한 대책이 사실상 바닥났다는 의미로 들렸다.
충격적인 3중 규제에 주택 시장은 당분간 위축세를 보이겠지만 거듭된 규제에 내성이 생겨 그 효과가 오래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급 대책도 시장에서 신뢰받지 못하는 실정이라서 집값을 안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는 9·7 대책에서 앞으로 수도권에 매년 27만 가구씩 착공하고 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택지를 조성한 후 직접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LH가 직접 나서 시행하면 저렴한 분양가에 주택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LH가 역대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에 동원돼 자금력이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당장 더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LH 부채는 2022년 146조6000억원대에서 올해 6월 165조원으로 늘었다. LH가 조성한 택지를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토지수용에서 건설까지 떠맡기에는 어렵다 분석이 나온다.
실효성 부족한 공급 방안, 불안 부추겨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고려하면 어차피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땅이 크게 부족할뿐더러 LH가 역할을 확대해 나서기도 어렵다. 입지가 좋은 곳에 주택 공급을 늘리려면 기존 아파트 단지에 재건축하는 방안을 기대할 만한데 절차가 복잡해 긴 세월이 걸리고 공사비와 부담금이 너무 올라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 공사비는 이미 서울 전역이 평당 1000만원대에 들어섰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초과이익이 8000만원 이상일 경우 최대 50%까지 세금으로 미리 환수하는 제도라서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동안 매매가와 전세가 급등을 우려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건축을 가급적 늦추는 방향으로 억제한 탓에 절차도 매우 까다롭고 오래 걸렸다. 1979년 준공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우여곡절을 거쳐 오는 2030년 준공 51년만에 재건축 첫 삽을 뜨게 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제도는 ‘똘똘한 한 채’에 쏠리는 현상을 불러와 집값 상승이 예상되는 강남 3구와 한강 벨트, 경기 과천과 분당 등에 매수세가 몰렸다. 정부의 공급 확대 방침에도 특정 지역의 매매가가 다시 뛰는 이유다.
정책과 시장 움직임이 따로 돌아가는 여건에서 규제가 기대하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 대출을 조인다 해도 시장은 가능한 통로를 찾아 다시 고개를 들고 다주택자 세금 중과는 오히려 유통 물량을 줄여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집값 안정을 이루려면 고집스럽게 규제에 집착할 게 아니라 정책이 시장에 순응해야 한다. 재건축이 시장 수요에 따라 진행될 수 있도록 초과이익환수제를 풀고 절차를 간소화할 때다. LH를 내세울 게 아니라 민간 건설회사들이 뛰어들도록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보유세를 강화하려면 먼저 양도소득세 등 거래세를 대폭 내려 다주택자의 매물을 유도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시장 요구에 따르다 보면 일시적으로 집값이 더 뛰고 투기 같은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주택시장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를 위해 긴 호흡으로 변화를 끌어가는 뚝심을 발휘해야 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