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호칭의 무게, 신뢰의 책임
2025-11-24 김시온 기자
‘기자’라는 호칭을 둘러싼 논란만 봐도 그렇다. 지난 2023년 9월 기준 문화체육관광부 정기간행물 등록관리시스템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언론사’는 2만2820곳에 달한다. 언론사를 창간하는 과정은 일반 개인사업자 등록과 다르지 않으며, 특별한 자격요건도 요구되지 않는다.
이런 제도적 허점을 틈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라는 그럴듯한 이름 아래, 외형만 언론사일 뿐 언론의 본질인 ‘진실’과 ‘공정’은 뒷전으로 하고, 실상은 이익 추구에 몰두하는 ‘유사 언론’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공익 대신 사익을 쫓으며, 편향·왜곡·악성 보도를 서슴지 않는다.
‘기자’라는 신분을 내세워 확인되지 않은 소식이나 왜곡된 정보를 ‘뉴스’의 외피를 씌워 유통시키는 행태는, 공신력 있는 언론의 이름을 잠식하고 저널리즘의 토대를 흔들고 있다.
최근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사이버 렉카’ 역시 같은 맥락이다.
과거 저널리즘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시사 정보와 의견을 제공하는 공적 행위였다면, 인터넷과 유튜브의 확산 이후 그 개념과 경계는 극도로 모호해졌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고, 누구나 스스로를 ‘기자’라 칭할 수 있는 시대에, ‘호칭’은 신뢰의 증표가 아니라 소비되는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호칭의 힘’을 악용하는 사례는 종교계에서도 낯설지 않다.
‘목사’(牧師)는 개신교 성직자를 뜻하는 말로, 예배를 인도하고 성도들의 영적 생활을 지도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 숭고한 뜻과는 달리, 여신도 성범죄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정명석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총재도, 700억 원대 횡령 및 성폭력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은 류광수 세계복음화전도협회(다락방) 총재도 모두 단체 내에서 ‘목사’라 불린다.
불교의 스님, 천주교의 신부가 ‘성직자’라는 이름 아래 사회적 신뢰를 전제하듯, 기독교의 ‘목사’ 역시 단순한 직함이 아니라 윤리와 책임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누군가 “목사입니다”라고 말하면, 그 한마디만으로 신뢰가 부여된다.
이단 단체들은 바로 그 신뢰의 틈을 파고든다.
JMS에서는 정명석의 ‘임명’만으로 목사가 탄생하고, 다락방은 류광수 총재를 원장으로 둔 자체 신학기관 ‘렘넌트신학연구원’(RTS)을 통해 자신들만의 교리로 지도자를 길러낸다. 두 단체 모두 스스로를 개신교라 부르지만, 제도권 개신교계는 이들을 명확히 ‘이단’ 혹은 ‘사이비’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사회가 이들을 개신교의 분파 정도로 인식하면서, 이단 지도자들이 저지른 범죄마저 ‘목사’의 일탈로 일반화한다는 점이다.
검증 없는 호칭이 공신력의 가면을 쓰고, 개신교의 이름으로 사회적 신뢰를 잠식하는 셈이다.
이들에게 ‘목사’라는 호칭은 책임의 표식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조직의 실체를 희석시키는 방패막이로 기능한다.
호칭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다. 그것은 신뢰를 매개이자, 그 역할에 상응하는 책임을 내포한 사회적 약속이다.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채 권위만 탐한다면, 호칭은 권력의 장식으로 전락한다. 현재로서는 이단 단체의 지도자를 지칭할 때 사용할 공적·중립적 호칭 체계가 부재하다.
‘목사’라는 단어는 종교 자유의 영역에 속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신뢰와 직결되는 공적 언어이기도 하다.
사회적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단 단체 구성원들에 대해 ‘지도자’, 혹은 ‘비제도권 종교인’ 등으로 명시해 표기 체계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
이런 분류는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적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다.
호칭의 정확한 사용이야말로 혼란을 최소화하고 종교와 사회를 보호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