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규모에 따른 차등규제, 선진국 중 韓이 유일···타 국가는 ‘행위’에 규제
2025-11-24 김준혁 기자
24일 대한상공회의소의 김영주 부산대 교수팀 의뢰 ‘주요국의 기업규모별 규제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규모에 따른 규제 적용에 있어 한국과 주요 선진국 간 차이가 존재했다.
한국은 상법, 자본시장법, 공정거래법, 외부감사법 등 주요 경제법 전반에서 자산총액, 매출액, 종업원 수 등 정량적 기준 중심의 규제가 설계됐으며 이에 기업이 성장할수록 새 의무가 단계적으로 누적 적용됐다.
반면 미국·영국·독일·일본 등에서는 이 같은 기업 자산·매출규모 등에 따른 규제의 누적 적용 등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상장 여부 등 기업의 법적 형태, 지위, 공시·회계 등 행위유형에 따른 규제체계를 운영했다.
보고서는 한국식 규제에 대해 “성장할수록 규제가 늘어나며 기업들의 성장 유인을 약화시킨다”며 이를 ‘성장페널티(GrowthPenalty) 구조’라고 규정했다.
실제로 김영주 교수팀의 국내 법제 분석 결과, 12개 법률에 343개의 계단식 규제가 존재했다.
반면 미국은 기업규제를 규모별로 세분화하지 않았으며 이에 법령상 대기업규제도 명시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상장회사 등 지위 중심 구조에 따라 상장 유지 조건으로서의 지배구조, 외부감사 등의 규제가 이뤄졌다. 독점과 관련해서는 카르텔, 남용, 결합 등 행위 중심의 규제가 적용됐다.
특히 보고서는 자산, 매출규모 비례의 규모별 차등규제 시행 국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증권법, 사베인스·옥슬리법(SOX) 등 증권규제에 상장회사에 대한 지배구조 또는 재무구조 규제는 있었으나 상장회사의 규모별 규제는 없었다. 셔먼법, 클레이튼법, 연방거래위원회법 등 반독점법에서도 기업 규모가 아닌 시장행위의 경쟁제한 효과에 초점을 두고 위법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영국 회사법은 공개회사와 폐쇄회사로 나눠 규제에 차이를 뒀으나 이를 규모별로 세분화하진 않았다. 공개회사는 상장회사와 이외 회사로 구분됐으며 상장회사에는 공시규정, 지배구조 관련 의무가 강화됐으나 규모에 따른 규제와는 무관했다.
시장 독과점 방지 목적의 경쟁법 및 기업결합법도 시장경쟁 왜곡 여부와 경쟁 제한 우려를 개별적으로 심사하며 기업규모에 따른 차등 적용은 없었다.
김영주 교수는 “영미권은 규제목적으로 기업을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으로 구분하거나 대기업을 다시 규모별로 나눠 누적 규제를 부과하지 않는다”며 “한국은 규모를 기준으로 기업집단을 지정하고, 세분화된 자산구간별로 규제를 누적하며, 상법·공정거래법 등 여러 법에서 이를 중복 적용시켜 기업성장에 구조적 부담을 주는 체계”라고 주장했다.
독일의 경우 상법(HGB)에서 자본회사를 소·중·대규모로 구분했으나 이는 재무제표 작성·공시·감사 등 회계 목적에 한정된 기술적·절차적 기준으로 알려졌다.
대한상의는 “주식법(AktG)은 공동결정제도에 따라 기업규모별 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근로자 대표 비율을 달리 정하고 있다”며 “이는 노동참여라는 사회정책적 목적에 따른 제도일 뿐, 우리나라처럼 기업규모를 규제의 출발점으로 삼아 누적 의무를 부과하는 구조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자본금 5억엔 이상 혹은 부채 200억엔 이상인 회사를 ‘대회사’로 법률상 정의했다. 다만 이를 세분화해 규모별 차등규제 체계는 두지 않았으며 금융상품거래법, 독점금지법 등에도 규제 기준에 기업규모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한국경제 고성장기 도입된 기업규모별 차등정책은 경제력 집중 억제와 성장격차 해소의 역할과 명분이 있었다”면서도 “지금 같은 성장정체기에는 성장을 독려하고 유인하는 방향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산업계의 지적에 대해 정치권에서도 여·야 모두 차등 규제 해소에 대한 공감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9월 여당과 대한상의와의 간담회에서 “최태원 회장이 말씀하신 기업 사이즈별 계단식 규제로 인해 규제를 피하느라 성장도 피한다는 지적이 크게 가슴이 와닿았다”며 “기업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시장에서의 안전장치와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제안해 주신 내용은 당 정책위와 함께 꼼꼼하게 살피겠다”고 말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최근 대한상의와의 간담회에서 “기업이 새로운 도전을 과감하고 자유롭게 시도하게 규제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성장 중심 산업 정책을 만들고 계단식 규제 구조를 개선하도록 국회 차원에서 입법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