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직 칼럼] 쌓여가는 내란 피로감 – 민생은 뒷전
2025-11-26 권순직 논설주간
힘든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는 젊은 직장인들은 오뎅 가게에서 뜨거운 국물과 함께 꼬치 우동과 떡볶기를 먹으며 허기를 달랜다.
시장 안쪽으로 길게 늘어선 음식점들을 살펴본다. 식탁이 열 개 정도인 식당 - 한 두 테이블에만 손님이 앉아 있다. 여느 해 같으면 퇴근 무렵 만석(滿席)일 식당이 썰렁하다.
극심한 불황 현장이다. 서민들의 시름은 이렇게 깊어만 간다.
< ***당 국회의원 SSS > < ###당 위원장 MMM > 이라는 어깨 띠를 매고 시장 곳곳을 돌며 표를 부탁하던 정치인들의 모습은 지난 선거 이후 이곳 시장에서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재래시장에서 순대국을 먹었다느니, 김밥을 먹었다느니 매표(買票)쇼를 하던 그 많은 정치인들은 시장 골목이 아닌 권력 다툼 전장(戰場)에 몰려있다. 민생 외면 현장이다.
(1) 민생의 고단함을 파악하고 여의도와 용산에서 서민들을 위한 정책 마련에 몰두 중 (2) 향후 선거 날짜가 한참 남았으니 그때 찾으면 되지 뭐 ...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맞는 말일까. 질문이 어리석다. 말할 것 없이 (2)번 아니겠는가.
국민들에겐 힘들고, 민망스런 일들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난데없는 계엄령으로 나라를 수렁으로 빠뜨린 지가 1년이 다 돼간다.
아직도 ‘내란 청산’으로 날이 새고 진다. 국민 혈세 수천억 원이 날아가느니 어쩌니 하는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논란, 론스타 재판 공 다툼, 정치인들의 볼 상 사나운 저질 말 싸움 등등 짜증만 쌓인다.
내란 청산 – 언제 끝나나
특정 정파의 정치인이나 지지자들 말고는 많은 국민들이 ‘내란 청산’ ‘내란 극복’ 이란 말에 이제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란 피로감이다. 만 1년이 다 돼가는데 날만 새면 내란 얘기고, 고달픈 서민 삶은 나아질 기미가 없으니 일반 국민들 사이에선 내란 얘기가 신물이 난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형국이다.
이른바 ‘내란 주범’인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감옥에 가둬 재판 중이고, 퍼스트 레이디였던 김건희도 구속중이다.
윤과 함께 계엄을 ‘모의’한 사람들도 수갑을 차고 재판 받고 있다. 그 이상 뭘 해야 내란 청산이냐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때 정부 요직에 있었다는 이유로 ‘내란 공범’으로 몰아가며 처단해야 한다는 것이 내란 청산이라면 언제 끝날지 모를 ‘청산’ ‘극복’에 국민들은 무한 인내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라는 이름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내란청산 TF가 24일 활동을 시작했다.
정부 각 기관에 설치돼 소속 공무원들의 내란 관여자를 색출해 인사에 반영하거나 처벌한다는 것이다.
무섭다. 익명 투서(신고)를 받는다고 한다. 관가에 ‘투서 포비아’가 덮쳤다. 밀고(密告) 사회를 정부 스스로 조장하는 셈이다.
익명 투서, 신고 권장해선 안돼
동료를 신고하라는 의미고, 그 와중에서 음해성 투서 신고가 난무하지 말라는 법 없다.
조직의 신뢰가 와해 될 우려가 높다. 공직 사회에 무사안일 복지부동 현상이 다시 극성부릴 공산이 크다.
익명 투서나 신고는 바람직한 일도 아니고, 권장해선 안된다. 비겁한 사람이 뒤에서 밀고하는 행위다.
정정당당하게 신고할 건 하면 된다. 그럴 용기가 없으면 참아야 한다. 어찌 정부가 익명 신고, 밀고를 권장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사실 계엄령은 선포된 지 6시간쯤 지나 국회 의결로 끝났다. 그 사이에 극히 일부 고위층 말고 어느 공직자가 내란에 간여했을까 싶은데도 전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내란 공조자 색출’을 벌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선 이 작업(내란청산 TF)의 의도에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공직자 길들이기, 내 편 만들기 등등...
국민의 힘도 한심하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 행위가 뭘 잘했다고 그와의 절연(絶緣)을 꺼려하는가.
당시 집권당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했던 과오를 왜 국민 앞에 진솔하게 사과하지 못하는지 답답하다.
민생 뒷전인 민망스런 일들
성남시 대형 부동산 개발사업에서 천문학적인 부당 이익을 얻었다는 이른바 대장동 사건 재판에서 검찰의 항소 포기 사건은 향후 두고 두고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항소 포기로 7000억원 이상의 국고 환수가 어려워 졌다는 점은 국민 공분(公憤)을 사기에 충분하다.
만의 하나 항소포기 의도가 옳다 하더라도 2심 3심을 거치며 충분한 법적 절차를 거쳐 판가름이 나야 하는데도 석연 찮은 이유로 그 기회를 박탈함으로서 언젠가는 엄중한 다툼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이재명 대통령 사법리스크와의 연관성은 없는지도 두고 두고 논쟁 꺼리일 것이다.
국민들에게 민망스럽고 짜증나는 일이 또 있다. 이른바 론스타 소송에서 승소한 일을 놓고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이 정부의 공으로 큰 국고 손실을 막았다는 공치사를 했다.
이에 한동훈 전 법무장관은 자신의 재임 중 공이며, 소송 제기 당시 민주당은 반대였다고 반발한다.
코미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행태를 현직 국무총리와 전직 법무장관이 벌이고 있으니 국민들은 쓴 웃음만 지을 뿐이다.
윤석열의 집무실 용산 이전, 이재명 정부의 청와대 복귀로 인해 국고 1300억원이 들어간다니 억장 무너진다.
국민들 뼈 빠지게 일해 낸 천문학적인 금액의 혈세(血稅)를 대통령 집무실 옮기고, 다시 원위치로 옮기는데 낭비하고 있다.
검소한 사무실에서 오로지 국민 삶 개선하는 일에 힘 쓰면 될 것을 집무실 이전- 또 이전으로 이런 거액을 써야하는가.
국민은 외롭다, 청춘은 그냥 쉰다
20,30대 청년 중 구직활동도 안하고 ‘그냥 쉬었다’는 사람이 62만8000여명이다(국가데이터처 조사).
경기 침체 등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아예 취업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아도 너무 많은 서글픈 현실이다.
국민 73%는 ‘심각한 정신 문제를 경험’했다. 40,50대는 직장이나 사업에서 실적 압박에 잠을 설쳤다. 경제적 이유로 부부 갈등을 겪기도 했다.
20,30대는 취업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직장생활에 애로가 많다는 통계다(국립정신건강센터)
집값은 천정부지다. 정부가 발표한 10.15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집값은 7년만에 최대 폭 올랐다.
서울에서 내 집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안쓰고 14년을 모아야 가능하다. 이는 한해 전보다 1년 사이에 한해가 늘었다.
젊은이들은 집 사기도 어렵고, 신분 계층 상승이 불가능해 져 가고 있다. 이른바 계층 사다리가 사라져가고 있다.
이처럼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고되다. 여의도와 용산은 이를 알고나 있는지 불만이 많다.
물론 가끔 대책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체감과는 거리가 멀다. 온갖 저급한 언어로 싸우고, 권력 다툼에 눈이 멀어 정쟁에 몰두하는 우리네 정치 ‘지도자’(사실 지도자란 단어를 쓰기 싫다)에게 뭘 기대해야 할지 난감하다.
일반 서민들은 당신들이 그처럼 목메는 내란 청산에 큰 관심 없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여의도에서 온갖 상스럽고 저급한 말로 싸우지만 말고, 선거 때처럼 시장을 찾으세요.
서민의 애환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보살피려는 정치인이 진정한 정치 ‘지도자’입니다.
외롭고 고달픈 국민, 일자리 못 구해 그냥 쉰다는 우리네 청춘의 마음을 1000분의1, 10000분의1 만이라도 헤아려 주는 정치를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