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1=지난 13일 서울 안국동 아트선재센터에서 만난 작가 신현림)

시인이자 사진가로서의 경계를 허물며 전위예술의 한 축을 달리고 있는 작가 신현림(46)씨를 만난 건 기자에게도 행운이었다.

신씨는 '행복'의 화두를 솔직하고 유쾌하며 당당하게 다룰 줄 아는 솜씨 좋은 인생설계자였기 때문이다.혹자는 지난 2005년 에세이집 '싱글맘 스토리'(휴먼앤북스)를 펴내면서 '싱글맘'을 공표한 신씨에게는 합당치 않는 수식어라고 손사래를 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씨가 딸 서윤(6)에게 이해시켜야 했듯 “인생에는 이혼이라는 수술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함이 자기 인생 설계의 주춧돌 격이 되어야 함은 당연지사.

이달 들어서만 2권의 책을 묶어 낸 신씨는 자기 인생의 주춧돌 앞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매일 매일을 쉴 새 없이 뛰고 있었다.

◆ 당당한 母女의 '희망의 블루스'

지난 13일 저녁 서울 안국동 아트선재센터에서 만난 신씨는 이날도 그녀의 딸 서윤과 함께 였다. 신씨는 일주일에 4~5번은 이곳 갤러리 카페를 찾아 밤 10시정도 까지 글도 쓰고 딸의 일기도 봐주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수원에 살던 신씨가 종로구 체부동의 한옥에 자리잡은 건 지난해 4월경. 이후 체부동을 포함해 안국동과 삼청동까지 신씨와 딸 서윤이의 유쾌한 놀이터가 됐다.

(사진설명2=일기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는 신현림씨의 딸 서윤의 꿈은 "화가")

“30대에만 해도 7번 전세로 이사를 다녔었는데 어디를 살든 다 의미를 뒀어요. 다락방에 살았을 때는 언덕밭에 가을 쯤 하얀꽃이 폈는데 진짜 황홀했어요. 이런 아름다움 때문에 여기 살구나 싶었죠.

사실은 아트선재센터 주로 오는 이유가 98년 개관때 화가 바스키아 영화 상영에 감명 받아서였어요. 서울에 온다면 이쯤 와서 살고 싶었죠. '엄마가 어릴 적 미술관을 데리고 다녔대'라는 말도 좋잖아요. 놀 수 있는 장소라는 건 너무나 중요해요. 저도 어릴 때 의왕 부곡역 저수지에서 스키타고 컸는데, 자연 환경이 지금도 너무 선명해요.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좋은 추억을 주는 것 같아요. 엄마들이 똑같은 과외에 똑같은 학원 보내면 다 똑같은 얘들이 양산되지 않을까요?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최대한 재미있게 개성있게 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아트선재센터도 오면 기분 좋잖아요. 전에는 자전거 타고 다녔는데 요즘은 아이와 경보하면서 도보로 다녀요”

일기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린다는 서윤이에게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넌지시 묻자 “그림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단다. 서윤이의 일기장 표지에는 '신서윤'이라는 이름 석자가 아이의 필체로 또박또박 참하게 적혀 있었다.

사실 서윤이의 성씨는 내년 호주제가 전격 폐지되어야 합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설 터이다. 그러나 이들 모녀는 이미 '신현림'과 '신서윤'이라는 끈끈한 모녀지정으로 묶여 있었다.

이번에 출간한 동시집 '초코파이 자전거'(비룡소)와 시모음집 '이 세상 모든 사랑의 시'(갤리온) 또한 서윤이의 역할이 컸다. 신씨는 그간 시집, 에세이집, 사진집, 시선집, 번역작 등 두루 섭렵하면서 다작다역했지만, 동시집을 선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표지설명1=신현림씨의 첫 동시집 '초코파이 자전거'(비룡소))
“초등학생 글짓기를 십년 정도 지도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어요. 제 경우는 꿈을 꾼지 10~20년은 지나야 이뤄지는 것 같아요. 동심을 유지하면서 쓸 수 있는 때를 기다려 왔는데, 아이를 낳고도 한동안은 생존하느라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너무나 금싸라기 같은 질문들을 던지는 거예요. '엄마, 쓸 데 없다는 건 뭐야?'' 같이 근원적인 질문들. 아이가 던지는 말들이 너무 아까웠어요. 우리 딸 덕을 많이 봤죠”

생활전선에서 예쁜 서윤이와 함께 고군분투하는 신씨에게 슬몃 재혼 의향을 꺼내보았다. 신씨는 “재혼은 당연히 해야겠죠. 그런데 '싱글맘 스토리''를 펴내고 나서 재혼 자리가 안 들어오는 것 같아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주세요”라면서 소녀 같은 웃음을 던졌다.

◆ 도발이라고? 그건 기존 '틀 깨기'

작가 신현림의 작품들에는 '파격적이다''솔직담백하다''거침없다''도발적이다'라는 수식어들이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 붙는다.

신씨를 일약 작가 스타덤에 올려 준 지난 1996년작 '세기말 블루스'(창비)가 대표적이다. 시에 사진이 텍스트의 한 양식으로 버젓이 한 자리를 꿰 차고 들어와 있는 형식의 파괴는 지금도 놀라우며, 수록된 시 '창'에서 '마음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걷는다'라고 절절한 자기 고백을 한데 일종의 충격을 받아 당시 시단 또한 자기 고백에 돌입하기도 했다.

실제 이날 만난 신씨의 성격 또한 자기 포장이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담백해 강한 인상을 남겨줬다.

(표지설명2=신현림씨가 가려 뽑은 사랑시 모음집 '이 세상 모든 사랑의 시'(갤리온))
이번에 신씨가 여러 타국 시인들의 사랑시를 선별해 한 권의 시모음집으로 묶어 낸 '이 세상 모든 사랑의 시'도 역시 그녀의 소산물이었다. '예쁘고 곱고 순수하며 사랑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는 기존 사랑시 모음집들과는 달리, 신씨가 건넨 사랑시 모음집은 상당히 섹시하고 도발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penis from heaven' (고이케 마사요) 같은 시는 제목에서부터 한눈에 선정적(?)이랄 수도 있다. 소재뿐만 아니라 표현 양식에서도 신씨의 아방가르드한 선별 기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람들이 저더러 도발적이라고 평하는 건 정말 도발적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틀을 깨부숴야 한다'는 제 창작에 대한 의지를 그렇게 읽은 것 같아요. 창작의 힘은 새롭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이건 나이가 먹더라도 계속 추구해 나가야 할 부분이겠죠.

이번 시모음집도 차별화를 위해 새롭게 도서관을 뒤지고 서점을 뒤지고 기존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는 것을 찾아 보자 싶어 발품 많이 팔았어요. 스즈키 소유의 '노부코' 같은 시도 재미있잖아요?”

그랬다. 스즈키 소유는 '노부코'라는 여자의 이름을 48번 쓴 뒤에 '쓰면 쓸수록 슬퍼만 진다'고 덧붙이면서 시를 마무리했다.

이렇게 출판가를 종횡무진하는 신씨에게 소설 욕심은 나지 않냐고 묻자 “그건 노 코멘트예요”라면서도 인터뷰 말미에는 “사실 단편부터 쓸 생각”이라고 답했다.

이와 함께 신씨는 “계약된 것들만 마무리되면 에세이는 이제 그만 쓸 생각이에요. 문체에 굉장히 신경 썼음에도 어디까지나 비문학물로 분류되니까요. 사진이랑 시에 정말 집중하고 싶은데 먹고 사는 문제로 청탁이나 심사, 강연, 영상에세이 같은 것들을 하고 있지요"라면서 웃어 넘겼다.

◆ “올해와 내년이 전성기 될 것”

“글을 쓰다보면 사진이 고프고 사진을 찍다보면 글이 고프다”는 신씨는 이미 개인 사진전도 두번 가진 바 있다. 좋아하는 사진가로 '로버트 프랭크'를 첫 손에 꼽은 신씨는 벌써 사진전 컨셉만 3~4가지 정도 잡아 사진도 모였다면서 멀지 않아 후속 사진전시회를 열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설명3=신현림씨와 딸 서윤씨)
이같은 창작 작업 사이로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딸 서윤까지 돌보느라 정신 없는 신씨를 보면서 역시 모성에 기반한 여성의 힘이란 참 대단함을 새삼 돌아볼 수 있었다.

신씨 역시 글 쓰기의 원천으로 “우리 엄마 힘이 가장 컸어요”라고 꼽으면서 “제가 시인이 된 걸 너무나 자랑스러워 하셨던 분이죠. 약사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약업을 했는데 그 부지런함을 닮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 쓰러져 4달째 병원에 계세요”라면서 마음 아파했다.

곧 여름시즌을 겨냥해 나올 번역작이 엄마와 딸 이야기인데 내용이 참 충실하면서도 공감도가 높아 이 작품을 번역하면서 신씨는 어머니 생각에 눈물 마를 새 없이 울고 또 울었다고.

신씨는 이 번역작과 함께 치유성장 에세이집 또한 곧 선보일 예정이다. 20대 후반에 접어든 이들부터 공유할 수 있는 사랑과 행복에 대한 소재로 이뤄져 있다고 귀띔했다. “결혼하는 여성들에게 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게 돈에 매여 있으면 결코 행복하지 않아요. 육신도 영혼을 위해 있는 것 아닌가요? 인생의 사는 목표가 분명해 질 때 주변의 여러 상황들이 덜 흔들리는 법이죠”

다음에는 비좁고 누추할 수도 있지만 꼭 집으로 초대하겠다는 정 많은 작가 신현림은 올해와 내년 한해가 지금껏 활동기 가운데 가장 왕성할 것이라고 스스로 예정하고 있었다. '내 인생의 한권의 책'으로 칠레의 국민시인 '네루다'의 시집을 꼽은 신씨의 '1인 다역' 내일이 한층 기대되는 시점이다.

“네루다는 자기 시로 인생을 표현하는데 하나도 아쉬움이 없다고 했는데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저도 네루다처럼 스케일이 크고 멋진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세계에 내놔도 좋을 만한 시 그리고 세계적으로 뛰어난 사진작업을 하고 싶어요”

신현림 작가는... "늘 나의 내력을 이렇게 소개했다. 경기 의왕 출생. 아주대에서 문학을, 상명대 디자인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세 권의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와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을 냈으며, 그 외에 첫 사진전과 함께하는 산문집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과 미술에세이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 박물관기행 산문집 『시간창고로 가는 길』, 자전적 에세이 『싱글맘스토리』, 치유시 모음집 『외로워하지 마, 슬픔이 터져 빛이 될거야』등이 있다.

그동안 참으로 많던 괴로움과 슬픔도 신의 선물이라 생각한다. 그로인해 내 인생은 더 많이 사랑하고 더 깊어지고 남을 더 배려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어디에 머물든 자기만의 장소를 창조하고, 어떤 형태든 마음이든 조금씩 바꿔가면 삶의 그릇이 더 단단하고 향기로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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