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 '원탁회의' 제3후보 정치참여 시금석 될 듯

최근 범여권의 제3후보들의 행보가 눈에 띈다. 특히 정운찬·문국현·박원순, 이른바 제3후보 '빅3'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비정치인으로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범여권에서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동안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정치 안해”를 공식화하고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두기를 해왔다. 이미 서울대 총장, 기업인, 사회운동가 등으로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를 자처하며 명망을 쌓은 이들이 거친 정치판에서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들의 마음에도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문국현·박원순, 한명숙과 만찬 회동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사진1>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사진2>는 25일 한명숙 전 총리와 서울의 한 호텔에서 2시간여 동안 만찬을 가졌다. 이날 식사자리에서는 민주개혁세력의 통합방법, 대선과 관련한 시민사회의 역할, 남북 및 북·미 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평화체제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이 자리가 '친선'의 목적임을 강조했지만 범여권 통합신당 논의가 대선의 핵으로 떠오른 지금 그들의 만남을 예사로 넘길 이는 없다.

한편 한 전 총리는 이날 한 유력일간지와 인터뷰 가졌다. 이번 인터뷰가 지난 7일 총리직을 퇴임한 뒤 처음 갖는 언론접촉이라는 점, 25일 만찬이 종교 원로들의 '대통합 원탁회의' 제의와 맞물려 있다는 점 등은 이 만찬이 다분히 정치적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음을 말해준다.

-한명숙, 제3후보 '통합' 나서나

한 전 총리는 인터뷰에서 “정치인의 목표를 흥행카드에 두는 사람은 없다”며 자신이 대선후보가 아닌 '여권의 경선 흥행카드'로 분류되는 데 대해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수사일 가능성이 크다. 설사 누군가 대선에서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고 해도 스스로를 '흥행카드'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 순간 흥행카드로서의 가치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대한 자신을 대선후보로 포장해 몸값을 높인 후 최후에 유력 후보를 미는 방안이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이다.

이번 만찬을 통해 한 전 총리는 제3세력으로 분류되는 두 사람에게 범여권 통합을 위한 '역할'을 제의했을 수 있다. 이 자리에서 크게는 두 가지 얘기가 오갔을 가능성이 크다. 하나는 제3후보의 범여권의 오픈프라이머리에 참여 여부다. 일각에서는 손학규 전 지사의 탈당으로 범여권의 통합이 '각개전투'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며 오픈프라이머리 성사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다. 현재 우리당은 통합시점으로 제시한 5~6월은 고사하고 10월 이전까지도 후보를 내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때 한 전 총리가 '총대'를 메고 이들의 오플프라이머리 참여를 성사시킨다면 우리당의 통합 논의도 가속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른 하나는 이날 종교계 원로들이 제안한 '대통합 원탁회의'에 관한 논의다. 원탁회의를 주도하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 협의회'의 이해학 목사는 26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과 관련해 “그 분들의 정치적 행보도 우리 정치지형을 바꾸는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원탁회의 초청 대상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 회의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범여권 대선주자들을 모두 아우르는 형태가 될 것으로 알려진다. 만일 제3후보들이 참가 의사를 타진해 온다면 이는 곧 대선출마를 공식화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범여권으로서는 가까운 미래에 이만한 흥행 기회를 다시 찾기는 어려울 듯하다. 한 전 총리가 이들에게 원탁회의 참여를 제안하고 이들이 한 전 총리의 손을 잡는다면, 이보다 더 자연스러운 '통합'의 그림은 없을 것이다.

문국현 사장은 우리당을 탈당한 의원들의 모임인 '민생정치'의 이계안 의원과도 친분이 있다. 이 의원은 앞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문 사장은) 정당중심이 아니라 시민사회, 경제사회 단체가 개혁세력이 다시 살아나기 위한 매개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그의 의중을 전한 바 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과 연대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번 원탁회의는 우리당에 속한 대선후보 뿐만이 아니라 우리당을 탈당한 세력과 시민사회단체에 까지 열려있다. 때문에 제3후보들로서는 특정 정치세력과 연대하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등 '부담'도 덜하다.

-정운찬 '특강정치' 두드러진 행보

정운찬 전 총장<사진3>은 현재 '빅3' 중 가장 두드러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 전 총장은 이른바 '특강' 정치를 통해 기존 정치권과 참여정부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지난 22일 서울대 특강에서는 “아직도 민주화 세력, 산업화 세력 운운하는 분들이 있지만 다 지나간 얘기”라며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또한 양극화 문제를 정치실패로 규정하는 등 한미 FTA 협상과 3불 정책을 비롯한 사회, 경제 현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결단)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그의 정치참여 결심이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정 전 총장이 출마를 결심할 경우 기존 정치권이 아닌 새로운 세력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그의 정치적 조력자로 알려진 민주당 김종인 의원은 “먼저 깃발을 들고 결단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결심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 역시 '5월 이전 정치 참여'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어, 정 전 총장의 범여권 원탁회의에 참석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당분간 종교계가 제안한 원탁회의가 범여권 제3후보들의 정치참여 여부를 점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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