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단 희망봉, 모험가들의 뜨거운 숨결 느껴

▲한나라당 조해진 의원

투데이코리아] 지난 12월2일부터 6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장을 다녀왔다. 이틀을 비행기 안에서 지냈고, 이틀은 남아공 현지에서,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영국 런던에서 반나절을 보냈다.

출장의 주목적은 남아공에서 벌어지는 내년도 월드컵 최종 조추첨에 참석하고, 그 기회에 2022년 한국월드컵 유치활동을 펼치는 것이었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최고위원(FIFA 부회장 겸 집행위원, 축구협회 명예회장)을 수행해서 필자와 국회 문화체육방송통신관광위원회 나경원 간사가 동행했다.

지구는 작았다. 우리나라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프리카 최남단 남아공이라고 해서 출발할 때는 까마득하게 생각이 들었다(물론 비행기 시간만 24시간 정도 걸렸으니 멀기는 했다). 그러나 의외로 지루하지도 않았고, 멀다는 느낌도 안 들었다. '지구촌'(지구가 하나의 마을이라는 뜻)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갈 때는 두바이에 내려서 비행기를 갈아탔다. 두바이에서 세 시간 가량 머물면서 현지 사정을 살펴봤다. '사막의 기적'이라며 세상을 놀라게 하던 기세는 한 풀 꺾였지만, 국가부도사태니 두바이가 무너졌느니 하는 보도는 다소 과장된 것이었다. 남아공에 도착하니까 한여름이라는데 날씨가 쌀쌀했다. 여름옷만 준비해온 게 후회가 됐다.

남아공은 수도가 세 개다. 국회가 있는 케이프타운, 행정부가 있는 프레토리아, 사법부가 있는 블룸폰테인이다. 네 나라가 합치는 과정에서 서로 합의가 안 돼서 수도 세 개는 그대로 두고, 나머지 한 곳은 국가문서원을 설치하면서 재정적으로 보상을 해주는 조건으로 정리가 됐다. 프레토리아에 행정부가 있는 것과 별개로 케이프타운에 있는 국회의사당 옆에 대통령 관저와 행정부 청사가 별도 건물로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수도분할로 인한 국력낭비의 표본적 케이스였다.

필자는 남아공이 잘 사는 나라인 줄로 알았는데, 우리에 비해 소득 수준이 1/4밖에 안 됐다.

길거리에서 백인이 구걸하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제일 잘 살고 아프리카 전체 GDP의 25%를 생산하는 남아공이 이 정도니 나머지 나라들의 삶은 얼마나 팍팍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인국가에서 흑인국가로 넘어가면서 치안이 매우 불안해져서 월드컵 기간의 안전문제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흑백간의 격차는 말할 것도 없고, 흑인 사회에서도 신흥 부유층이 형성되면서 흑-흑간의 빈부격차가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월드컵 조추첨이 열린 케이프타운은 남아공에서도 상대적으로 살기가 좋은 도시였다. 이틀간의 FIFA 행사에서 필자는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세계적 축구영웅인 독일의 베켄바우어,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오, 프랑스의 미셀 플라티니와 제프 블라터 FIFA 회장 등 명사들을 매일 만나면서 함께 이야기 나누는 즐거움을 누렸다.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월드컵 조추첨 행사를 현장에서 직접 관람한 것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어떻게 하면 2022년 월드컵을 한국으로 유치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전략이 떠오르기도 했다.

일정이 잠시 비는 틈을 타서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Cape of Good Hope)에 다녀왔다. 대서양과 인도양에서 동시에 불어오는 대륙 끝의 바람을 온 몸으로 맞아보는 것도 감흥이 남달랐다. 그 거친 바다를 헤치고 희망봉을 돌아 인도까지 항로를 개척한 바르돌로뮤 디아즈와 다스코 다가마 같은 모험가들의 뜨거운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남반구 끝은 풀과 꽃, 바람과 파도, 돌과 나무까지 우리가 사는 북반구와는 확연히 다른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런던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다. 반나절 머무는 동안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를 방문해서 고든 브라운 총리를 만나 40여분 간 환담을 나누었다. 이틀 전에 연락했는데도 대영제국의 총리가 일정을 잡아주는 것을 보고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살감했다. 브라운 총리는 키 크고 잘 생기고, 깨끗하고 청렴한 인상을 주었다. 신념과 열정이 강한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우리나라가 G20 정상회의를 유치하도록 브라운 총리가 도와줘서 감사하고, 이명박 대통령께서 특별히 고맙게 생각한다는 말을 전했다.

영국은 2018년 월드컵 개최를 신청했는데, 한국과 영국이 서로 잘 되도록 돕자고 했다. 총리도 이명박 대통령께 각별한 안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브라운 총리는 부인까지 불러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관저 내에 있는 방들을 하나 하나 직접 안내하며 설명해주었다. 글래드스톤, 디즈레일리,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 등 명재상들의 체취가 고스란히 간직돼 있는 방들이었다. 관저를 나와서 런던시내를 통과하는데 버킹검 궁, 하이드파크, 템즈강 등 그림에서 보던 명소들이 창밖을 지나갔다. 일정 때문에 그냥 지나쳐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우리 대사관에 돌아와서 보수당 예비내각 문화체육장관 부부와 만나서 환담을 나눴다. 내년 초에 한국에서 다시 만날 기약을 했다.

영국축구협회의 특별 초청으로 우리 일행은 프리미어리그 상위팀인 아스날 구장에 가서 아스날-스토크 전을 관람했다. 런던시장과 아스날 구단주가 직접 나와서 영접을 해줬다. 모두가 2018년 월드컵 유치를 위한 그들 나름의 노력으로 보였다.

비행기 안에서 이틀, 빡빡한 일정에 잠도 충분히 못 잤지만,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값지고 보람있는 출장이었다.

한나라당 조해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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