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신기한 기자] 한국관광공사는 '삶의 현장에서 바다를 맛보는 포구여행'이라는 테마 하에 2010년 4월의 가볼만한 곳으로 '바다여행의 종합선물세트, 부안 격포항(전라북도 부안), '임금님 입맛을 사로잡은 강구항 영덕대게(경상북도 영덕), '푸른 바다가 활짝 열려 있는 삼척 임원항(강원도 삼척), '펄떡이는 바다에서 봄맛을 건지다(충청남도 서천), '사람냄새 짙게 배어 있는 남해의 보물, 미조항(경상남도 남해) 등 5곳을 각각 선정해 발표했다.

펄떡이는 바다에서 봄맛을 건지다

위치 : 충남 서천군 서면 도둔리 홍원항

충남 서천군 서면은 바다로 길게 둘러싸인 곳이다. 마량포구, 홍원항, 월하성, 춘장대 등 서천의 이름난 바다휴양지들도 모두 서면에 자리하고 있다. 그중 봄철 바다의 싱싱함을 만날 수 있는 곳은 홍원항이다. 이웃하고 있는 마량포구가 광어, 도미 등을 잡는 큰 어선들이 조업하는 곳이어서 5월이 되어서야 활기를 띄는 것과 다르게 홍원항은 사시사철 언제든 활기를 띄기 때문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그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지형적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홍원항의 하루는 무척이나 분주하다.

홍원항의 하루는 어민들의 차량이 하나둘 홍원파출소 앞으로 모여드는 새벽 3시부터 시작된다. 출항신고를 마치고 어장으로 나서는 것. 배에 달린 몇 개의 조명이 환하게 빛을 밝혀 어민들의 바다를 비춰줄 뿐 사위가 모두 어둠이지만 배들은 아랑곳 않고 바다위로 미끄러지듯 나선다. 제일먼저 항구를 떠나는 배는 안강망어업을 하는 7~8톤급 어선들이다. 미리 쳐놓은 그물을 걷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이 일 때면 바다로 나서는 마음이 더 급하다.

출렁이는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의 고달픔을 바다가 알아주기라도 하듯 커다란 연처럼 입을 벌린 안강망그물 안으로 꽤 많은 물고기들이 들었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바다가 잔잔한 날엔 고기가 많이 들지 않는다고. 항구를 출발한 배는 30~40여분을 달려 자신의 어장에 닿는다. 그물 하나를 거두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10분 남짓. 모두 13~15개를 거두어야 한다. 그물걷기는 부표줄을 장대로 끌어당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감아올리면 십여m가 넘는 그물이 감겨 올라온다. 그물 끝을 풀어 고기를 쏟아낸 후 종류별로 고기를 분류하고 나면 다시 그물을 바다에 넣고 출발한다. 그렇게 그물을 꺼내고 넣기를 십여 번. 그 때마다 그물이 쏟아내는 고기의 양에 따라 어민들의 얼굴엔 웃음이 피기도하고 슬픔이 피어나기도 한다. 그물을 모두 걷은 배들이 항구로 되돌아오는 때는 오전 7시경. 그 시각, 그들을 기다렸다는 듯 작은 어선들이 홍원항을 출발해 바다로 나선다. 임무교대인 셈이다.

배들이 항구로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홍원항 서부수협공판장도 활기를 띈다. 어민들이 싣고 들어오는 수산물이 주인을 찾아갈 시간이 된 것. 그런데 이즈음의 홍원항에서는 다른 항구에서처럼 활어경매를 보기가 쉽지 않다. 3~4월 홍원항의 주산물이 겨울 추위에 지친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는 주꾸미이기 때문이다. 주꾸미는 잡아오는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를 게 없는 수산물인지라 중도매인들끼리 수협사무실에 모여 그들만의 경매를 한다고.


그날의 가격과 낙찰자가 정해지면 낙찰자가 낸 주문량이 채워질 때가지 어민들이 가지고 오는 주꾸미는 모두 낙찰 중도매인에게 인계된다. 그 후 2차, 3차 낙찰자에게로 마라톤처럼 인계된다고. 활어가 아닌 조개류와 선어들은 서부수협공판장 옆에서 이루어진다. 홍원항을 찾은 관광객이 만날 수 있는 경매풍경은 이때부터다. 아침나절 나갔던 배가 점심 즈음 돌아와 쏟아놓는 수산물이 이곳에서 경매된다.

홍원항 주꾸미는 인근의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살짝 데친 주꾸미의 쫄깃하고 아삭한 식감과 향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샤브샤브가 제일 선호하는 메뉴이다. 이 주꾸미샤브샤브를 맛보기 위해 매년 봄철이면 홍원항을 찾는 단골손님들이 있을 정도. 서천사람들은 샤브샤브보다는 주꾸미를 양념해 이맘때 많이 나는 쪽파와 함께 볶아 먹는 주꾸미볶음을 더 즐겼다고 한다.

주꾸미를 살려 잡아오지 않던 시절의 요리법이기도 하지만 추억이 담겨있어 지금도 즐겨먹는 메뉴다. 그들의 추억 속에 남아있는 주꾸미 요리가 하나 더 있다. 꼬들꼬들 말려둔 주꾸미를 살짝 양념해 쪄먹었던 주꾸미찜이다. 지금도 결혼식이나 회갑연 같은 잔칫상에는 반드시 주꾸미찜이 올라온다.

홍원항에서 봄 바다를 맛본 후엔 꽃구경에 나서보자. 마량리 언덕위에 자리한 마량리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제169호)이 그곳. 한창 붉은 꽃이 탐스럽게 핀 이 숲의 동백나무들은 바닷바람을 맞고 큰 때문인지 높게 자라기보다 부챗살처럼 옆으로 벌어져 자란다. 다른 동백 숲처럼 나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없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매표소에서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이용하는 것보다 화력발전소 방향에서 올라오는 계단 쪽에서 꽃이 더 잘 보인다. 언덕 위 동백정에서 바라보는 오력도와 어우러진 일몰도 아름답다.

마량리에서 장항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며 서천의 갯벌을 누려보는 것도 좋다. 월하성, 선도리, 비인, 송석, 월포를 지나 장항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바다와 맞닿은 어촌이라면 어디에서나 갯벌체험을 할 수 있을 만큼 살아있는 갯벌로 가득하다. 이 길을 달리며 누려야 할 또 한 가지는 솔숲이다.

마량에서 장항까지 바닷가엔 어김없이 솔숲이 띠를 이루고 있지만 그 정점은 장항솔숲이다. 자동차가 오갈 수 있을 만큼 단단한 모래해변을 산책하는 것도 좋지만, 솔숲 안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걸으며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색다를 것이다. 모래찜질과 삼림욕을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흔치않은 장소다.

◇ 월포갯벌 ⓒ 한은희
서천을 찾아온 사람들이 잊지 않고 찾아가는 곳도 있다. 세모시로 유명한 한산면이다. 그곳에 백제 왕실에서 즐겨 마셨다는 우리 술 '소곡주'를 빚는 충남무형문화재 제3호인 우희열 씨의 소곡주제조장이 있다. 무형문화재복합전수관 뒤의 소곡주제조장을 찾으면 소곡주 시음도 하고, 술이 익어가는 항아리도 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항아리 바닥에 나무를 괴어 공간을 둔 것. 그 까닭은 100일이라는 긴 발효시간 때문. 바닥까지 공기가 통하지 않으면 제 맛을 낼 수 없다고 한다. 무형문화재복합전수관에서 소곡주 빚는 과정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한산시장 입구에 자리한 문화쉼터 '한다헌'에도 들러보자. 여행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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