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인 의원들 조직력 탄탄…'한미FTA 군단' 격퇴할까

한덕수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는 한 총리지명자(현 총리)의 한미 FTA 소신을 둘러싼 입씨름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이 치열한 설전 뒤에는 흥미로운 움직임이 하나 더 있었다. 이른바 '한미FTA 졸속타결에 반대하는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이하 국회 비상시국회의)'가 조직적 움직임을 시작한 것.

그전부터 이번 FTA는 문제있다고 불만을 표시해 온 의원은 많았다. 그러나 당론 등을 무시할 수 없는 국회의원이라는 자리의 특성상, 자신의 소신을 쉽게 드러낼 수 있겠느냐는 전망이 많았다. 결국 일부 '강골 의원' 외에는 관망 내지는 당론에 따를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3월 초반까지는 시민운동단체인 '한미FTA반대 범국민운동본부'에 일부 의원들(그것도 주로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이 힘실어주기 차원에서 참가하는 외에 의원들이 전면에 나서는 일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 말만 무성했던 한미FTA반대파 의원들이 드디어 국회 비상시국회의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 뭉쳤다는 자체가 정가에서는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욱이 제법 몸집이 되는 것으로 드러나자 놀라움은 더 컸다는 것.

3일 현재 51명이나 되는 규모의 이 단체는 각당을 망라하는 넓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혹시 유명무실한 친목회가 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상황. 이를 예상한 국회 비상시국회의는 한 총리 청문회 개시 전날까지 모든 방어책을 마련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즉, 7인의 공동대표단을 구성하키로 하고 우선 권오을<사진> 한나라당 의원, 김효석 민주당 원내대표,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김낙성 국민중심당 의원, 유선호 민생정치 모임 의원 등 4명의 대표를 선출, 사령탑 역을 부여했다(열린우리당과 통합신당준비모임은 이 모임 참여에 소극적이어서 대표까지는 두지 않았다는 게 시국회의 관계정치인의 이야기다).

더욱이 공동간사로 홍문표 한나라당 의원과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김태홍 민생정치모임 의원을 선임, 이들이 연락책과 조율을 맡아 현장을 책임지게 했다.

이런 시스템을 시험해 볼 첫무대는 전술한 한 총리 청문회. 이 청문회에서 날선 공격을 퍼부은 강기갑 의원, 신중식 의원이 알고 보면 바로 이 국회 비상시국회의에 가담한 인물들이었다.

비록 인준을 막지는 못했지만 청문회장을 총리 청문회를 FTA 청문회로 만들어 버린 것은 분명 성공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 아울러, 총리 인준안에서 51표의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자신들의 결집도를 충분히 과시했다.

첫 행동에서 이런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은 국회 비상시국회의 소속 의원들은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국회 비준을 기다리는 한미 FTA와 정식으로 대결하여야 할 차례라는 생각에 전방위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현재 가시화된 움직임만 해도, 청문회 및 국정조사, 아울러 이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자체 전문가 초청 토론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시민사회단체 및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수렴 체계화 및 민간자문단을 구성하는 등 실로 다채롭다.

심상정 의원의 측근은 이와 관련 "농해수위(위원장 권오을), 보건복지위(김태홍), 문광위(조배숙)는 시국회의 소속 의원이 상임위원장이고 평위원 중에도 (우리편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청문회 개최가 수월할 것으로 본다"라고 전망했다.

민노당의 모 의원은 "국정조사(영국에서 기원한 제도로 국정운영에 불미스런 일이 있을 때 국회가 조사에 착수하는 것.

정기적으로 정부 업무 전반을 검사하는 '국정감사'와는 구분된다) 발동조건인 국회의원 75명(4분의1)의 찬성 요건을 갖추기 위해 각 당과 정치세력별로 참여의원 확대에 집중할 것"이라며 "모든 정당에서 많은 수의 의원들이 시국회의 참가를 타진하고 있어 발의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상당한 규모의 의원들이 4월 임시국회 무렵 이들과 손을 잡을 것이라는 루머가 국회의원회관 주변에 돌고 있어, 청문회나 국정조사 등은 실제 열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총리 인사 청문회를 성토장으로 만든 국회 비상시국회의가 이렇게 4월 임시국회를 청문회, 국정조사 마당으로 끌고 갈 속내를 내비치자, 미국 대표단과 협상안을 끌어낸 정부 당국으로서는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기껏 마련한 협상안이 여의도에서 휴지조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긴장감을 느끼고 있는 것.

그러나 이런 국회 비상시국회의의 저력이 과연 얼마나 더 갈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 넓은 스펙트럼 때문에 한 번 전열이 흐트러지면 조직 붕괴는 초읽기가 될 수 있다는 비관론이 그것이다.

현재는 똘똘 뭉쳐 적극적으로 타결을 추진하는 정부와 찬성당론인 한나라당, 열린우리당의 합동공세를 무력화시키고 있지만, 이 결집력이 얼마나 더 갈지 자신있게 답할 사람은 없다.

실제로 한나라당 소속 모 의원은 "정파를 초월해 결집하는 데 어려움은 없느냐"는 본지의 질문에 간접적으로 애로사항이 있음을 수긍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문제는 4월 임시국회라는 작은 전투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의 능력이 아니라 이후 닥쳐올 '비준' 자체를 어떻게 막아내는가 하는 장기전 능력 여부다. 그리고 이 장기전 능력은 이탈을 어떻게 막느냐가 될 것이라는 게 여의도 주변에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다.

이제까지의 국회 비상시국회의의 선방과 앞으로의 고민은 근래 인기를 끌고 있는 '300'이라는 영화를 연상하게 한다. 페르시아 전쟁 당시, 300명의 스파르타 결사대가 특유의 전법과 길목을 잘 골라 틀어막은 안목으로 수십만 명의 페르시아 육군을 막으며 상당 기간 선방했지만, 결국 내부 분열로 조금 더 버틸 수 있는 상황에서 무너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이들의 현재와 미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국 국회 비상시국회의가 '국민여론'이라는 우군이 도착할 때까지 얼마나 '내부 단속'을 잘 하는가에 따라 국회 비상시국회의의 앞날은 결론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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