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정신 이을 후계자 육성…재단 설립說도 솔솔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을 1년 남긴 가운데, "퇴임 이후 그는 과연 무엇을 할까?" 궁금해 하는 호사가들이 많다.

대통령 재임 중에도 '청문회 슈퍼스타 의원' 시절 못지 않은 워낙 많은 발언을 쏟아낸 대통령인지라, 임기 후엔 그야말로 본격적으로 '말,말,말'을 쏟아낼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다.

이런 여의도 주변의 루머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한국정치에 계속 조언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후진 양성을 위해 나설 것이라는 설이다.

아태재단을 만들어 대북 정책, 정치 관련 연구를 계속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예를 본떠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다듬고 이를 이을 조직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란 이야기다. 또 정식으로 대학원 인가를 받는 정도까지는 아니라 해도 어느 정도 커리큘럼과 시설을 갖추고 후진 양성을 할 거라는 얘기도 같이 들린다.

이에 대해 아직 공식적 확인을 해주는 노무현 측근 인사는 없다. "대통령의 퇴임 후 윤곽을 드러낼 노무현 재단이나 정치학교에 모 의원이 관여할 거라는 설이 있는데 확인해 달라"라는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다들 바로 손사래를 치기 바쁘다.

염동연 의원실, 유인태 의원실 등 노 대통령과 유대관계가 돈독했던 정치인들 주변을 탐문해도 "잘 모르는 문제"라는 답변 일색.

아직은 아무래도 실제 추진되고 있는지도 정확치 않은 구석이 많다. 만약 추진 중이라면 아직은 노 대통령의 친위 조직(비선 조직)에서 구도를 잡는 정도지, 의원들을 물밑접촉해 규합하는 등의 단계로는 들어간 게 아닌 것 같다는 잠정결론이 나온다.

◆실체는 없으나 정황은 충분???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그간 행보를 보면 이런 설이 나도는 것이 소설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 국회 출입기자들 사이의 이야기다.

노 대통령은 우리 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정책에 관한 소신이 강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로 흔히 기타치는 대통령후보 같은 일련의 감성자극, 웅변적 연설 태도 등을 꼽기도 하지만 행정수도 공약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점을 당선 요인으로 빼놓을 수 없다.

이후에도 그는 끊임없이 기존 정치계와 불협화음을 낼 만한 정책을 내 놓았다. 탄핵을 당했을 때 탐닉했던 '웨스트윙'의 미국대통령처럼 그는 끊임없이 참모진을 독려하고 토론하며 정책을 쏟아내도록 했다.

이정우, 정태인 등 우수브레인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가정교사 역을 했다. 천정배, 강금실, 문정인 같은 걸출한 인사들이 그 뒤를 받쳐 주었다. 문희상 같은 인재도 한몫했다. 이들은 노 대통령과 머리를 맞대고 부동산정책 등 보수정치인들과 격돌할 만한 이슈를 끊임없이 생산해 냈다.

한미FTA라는 큰 이슈도 외교통상부의 고위인사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노 대통령이 검토한 끝에 전격 수용한 케이스다.

후폭풍을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고 그간 우군이었던 진보세력들이 "대통령이 변했어"라고 비난하며 등을 돌렸지만, 한미 FTA야말로 제 3의 건국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청와대는 끈덕지게 밀어붙였다. 원포인트 개헌안도 지금은 다시 수면 아래로 들어갔지만,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그야말로 이번 대선의 변수 중 변수로 떠오를 문제다.

◆노대통령, 후계자도 조직도 없는 쓸쓸한 신세

그러나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던 이들은 노 대통령과 대화화는 상대 내지는 참모조직이었지, 노 대통령이 100% 자신의 소신을 정책으로 반영하는 데 칼같이 움직여줄 계선조직은 아니었다.

이정우 교수도 여러 가지 이유로 떠났고, 정태인 전 수석은 FTA 문제로 등을 돌렸다. 한때 자신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천정배 전 법무장관과의 관계는 지금 빙하기다.

그나마 노 대통령을 끝까지 보좌하려 남은 이들은 야당의 반대 혹은 여당의 견제로 대통령의 의중대로 자리 배치를 하지 못했다. 문재인 수석의 경우 노무현 정부의 법무장관으로 입각해 '노심'을 반영해 큰 일을 할 것으로 예측됐으나, 이런저런 견제로 결국 법무장관 임명에 차질이 생겨 검찰개혁의 꿈을 목전에서 접었다.

김두관 전 도지사 등 한때 리틀노무현이라 불리며 정치적 계승자로 꼽히던 이들도 '노무현 디스카운트'에 눌려 '리틀 노무현 소리는 빼달라'고 어느 정도 선을 그으려 들자 노 대통령은 더 쓸쓸함을 느낀 것 같다.

"퇴임 후에 기초의원에 도전하겠다" 등 뜬금없는 소리가 나왔던 것도 순전히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기엔 노 대통령이 아직 너무도 젊다'는 데 기인한다.

조용히 뒷방 영감으로 물러나 있기엔 미련과 이제 어느 정도 국정에 눈을 떠 100% 내 주관으로 구상하는 노무현식 정치를 어떻게든 표현해볼 생각이 없을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두루두루 사석에서 배출됐고 그걸 귀담아 들은 일부 측근이 학교 설립이라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단계로 볼 수 있다.

◆소수정예 후계자 기를 명분과 능력은 충분

일찍이 박정희 대통령을 연구해 온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이런 설명을 그의 글에서 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은 공화당을 통해 장기집권을 했지만 공화당을 '나의 당'이라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항상 공화당을 실질적으로 만든 김종필 씨가 공화당을 움직인다고 의심했다고 조 편집장은 분석했다. 그래서 공화당에 의외로 신경을 쓰지 않았고 애착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 사후에 그의 정치철학은 공화당을 통해 승계되지 못했다는 것이 조 편집장의 해설이다.

지금 노 대통령이 느끼는 감정은 바로 공화당을 바라보던 박정희 대통령의 그 심경과 대동소이할 듯 하다. 탈당 전에도 그에게 민주당은, 그리고 열린우리당은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가 대선 승리 직후 민주당이 아닌 개혁당을 먼저 찾았다는 점은 그가 '대체 그들이 내게 뭘 해 줬는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이후 민주당에서 일부가 떨어져 나와 열린우리당이 됐지만, 정동영과 김근태가 총선대승 이후 서로 통일부장관을 하겠다고 다투는 점이나 이후로도 은근히 지분싸움을 벌이는 모습에 적잖이 실망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내 마음대로 그려보는 정국 구상을 퇴임 이후에라도 그야말로 마음이 통하는 '소수정예군단'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없을 수 없다.

또 긴 시간 인권변호와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벗들을 만나고 배웠던 바를 정리해 이제 체화한 나름의 정치철학을 체계화하고 이를 신진기예한 정치인재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구상도 전혀 뜬구름잡는 것만은 아닌 터이다.

즉, 이런저런 정황과 소식통들로부터 나오는 정보 파편들은 그래서 우리 머릿속에 노무현 정치사관학교가 정말 생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봄아지랭이 피어오르듯 뭉게뭉게 일어나게 한다.

지금으로부터 1년 후, 여전히 젊고 패기에 찬 우리의 노무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라는 새 직함을 들고 과연 무슨 일을 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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