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장애인 미디어축제 준비 현장을 가다

▴ 15일 부산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회의가 한창인 <청춘은 있다> 제작진
[코리아 투데이=정자연 기자] “솔직히 영상 전공자도 아니고 한계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못할 거냐. 그건 아니다. 얼마나 열정이 있느냐가 중요한 거다. 열정만 있으면 반쯤 성공한 거다.”

넓은 회의실에서 열띤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영화 제작 이야기, 라디오 기획회의가 이어진다. 얼핏 들으면 방송사의 제작회의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토론자들은 모두 휠체어를 타고 있다. 각자의 사연으로 장애를 안고 휠체어를 타게 된 장애인들이다. 하지만 영상을 만드는 이들의 열의는 장애도 막을 수 없었다. 6월 24일부터 26일까지 부산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리는 제5회 장애인미디어축제를 앞두고 영화제작에 한창인 이들을 15일 찾아갔다.

“사회대상자이지만, 우리가 나서서 주체가 되어 만들어보자”는 윤한민(51)씨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제5회 장애인미디어축제의 폐막일에 상영될 단편영화를 제작 중이다. 올해 5회째인 부산장애인미디어축제에 빠짐없이 작품을 낸 베테랑 감독 윤한민(51)씨와 부산시민영상제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는 조연출 김승일(31)씨, 공동작품 참여가 이번이 두 번째라는 이영호(41)씨와 김영호(42)씨는 <청춘은 있다>라는 제목의 단편영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장애인 인권을 주제로 '하나원'이라는 가상의 장애인 시설에 사는 몽상가의 상상 사랑이 현실로 바뀌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생활시설 장애인들의 실상을 드러내는 등 주제 의식도 뚜렷하다. 빠듯한 스케줄 탓에 2일 만에 촬영을 끝냈지만, 아직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부산 시청자미디어센터의 장애인영상제작단 소속인 이들은 영상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프로'는 아직 아닐지 몰라도 영상에 대한 열정만큼은 아마추어를 넘어섰다.

▴ 촬영 영상을 편집하고 있는 윤한민 감독

<청춘은 있다>에서 감독과 시나리오를 맡은 윤한민씨는 그동안 만든 작품만 해도 12편이 넘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상에 대한 동경이 있었지만 사고로 장애를 입고 꿈을 접었다. 직장생활과 사업 등 생계활동을 하다가 2005년 7월부터 꿈이 되살아났다. 영상제작 교육을 받으면서 '이 길이 내 길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제1회 장애인영화제(현재 '장애인미디어축제'로 명칭 변경)부터 작품을 꾸준히 올리면서 활동을 하다 보니 영상에 몸담은 세월만 해도 벌써 6년째다. 그가 앞으로 만들고 싶은 작품은 인간의 비참함을 담은 영화다. 그의 꿈은 “이창동 감독처럼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나만의 감각으로 작품을 담는 것” 이다.

▴ 보조연출을 맡고 있는 김승일씨
보조연출을 맡은 김승일(31)씨는 장애인영상제작단에서 5년째 활동을 하다가 작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영상 제작에 참여했다. 그동안 만든 작품은 7편으로, 장애인 활동보조인서비스에 대한 문제점을 파헤친 처녀작 <탁상공론>을 부산시민영상제에 출품해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6삭 동이로 태어나 면역성 없이 가성 콜레라에 걸렸다. 이후부터 동작 느려지고 고개 가누지 못하게 되었다. 진단은 뇌성마비였다. 김승일씨는 <청춘은 있다>작품을 만든 장애인 중 가장 불편한 몸으로 참여했다. 그래서일까. 어떻게 영상 제작에 참여하게 됐는지 그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영화 만들면서 힘든 점은?
-사람 섭외가 제일 힘들다. 장애인에 대한 영상을 만들려면 그 대상자를 찾아야 하는데 장애인들이 카메라 공포증이 좀 있다. 스케줄 조절하기도 힘들고.

▴촬영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감독들은 원하는 각도와 포커스가 있다. 그러나 직접 촬영을 할 수 없어 남한테 부탁해 일일이 설명을 해서 찍는다. 원하는 포커스와 장면이 나오지 않는 게 가장 아쉽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처녀작인 <탁상공론>이다. 장애인활동보조인 서비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다큐가 하나도 없었다. 그걸 처음 건드렸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 다른 장애인들도 불편하겠구나 싶어 다큐로 담아냈다. 또 <장애인부부가 사는 법>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장애인 기초수급권자에 대한 어려움을 담은 작품인데 결국 세상은 두 사람의 사랑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구나 하고 느꼈다. 나도 빨리 사랑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웃음)

▴영상 만들기 전 과거에는 무슨 일을 했나?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장애인 운동권 활동을 했다.

▴영상을 언제부터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나?
-2004년 우연히 후배의 권유로 장애인미디어교육을 수업을 들었는데, 호기심 반 기대 반이었다. 방송매체 배우고 싶었는데 정보도 없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몰라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이 길로 들어선 거다.

▴항상 마음에 새기는 다짐 같은 건 있나?
-KBS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 김국진씨가 한 강의 내용이 인상 깊었다. '인생은 롤러코스터와 같다. 두려워말고, 도전하라' 이 말을 되새긴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평가 해달라.
-100점 만점에 20점. 아무래도 한계가 있으니까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다. 아무리 열심히, 잘 만든다 해도 내 영상은 50점 이상은 안 될 거다. '장애인이니까 이정도면 잘했어. 100점.' 이런 평가는 싫다. 장애인이 만든 것이 아닌 영상 그 자체로 평가 받고 싶다.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불리고 싶은지?
-영상 만드는 일이 내 길인 것 같다. 항상 취재의 대상만 되다가 내가 직접 내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게 참 좋다. 피사체가 아닌 직접 주체가 되는 거니까. 꿈은 장애인 영상·미디어 아카데미를 만드는 것이다. 장애인들에게 기술을 배우는 과정은 많이 마련이 되어 있지만 미디어 배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장애인들이 미디어에서도 많이 소외되어 있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상은?
-장애인이라고 해서 꼭 장애인 내용만 다루고 싶지는 않다. 문화, 예술,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를 담고 싶고, 이주노동자와 새터민 등 약자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담은 영상을 만들고 싶다.

▴굳이 장애인 감독 필요한가?
-앞으로 사회는 넓어질 것이다. 결국 다같이 어울려 살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장애인들의 영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다양한 시선을 담아내는 미디어가 존재해야 그 사회도 다양해진다.

▴사회에 적극 나서기보다 집에서 계시는 장애인분들이 아직 많다. 그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겁내면 아무것도 못한다. 장애인이라서 못한다는 말은 핑계다. 안 하거는 거다. 죽을 때 까지 그렇게 살 것인가. 내가 떨리는 손이라도 카메라를 잡듯, 용기를 내야 한다. 용기를 내시라.

작년 제4회 장애인영화제에 참석했다가 영상제작단에 발을 내디뎌 이번 작품에 참여하게 된 주인공 역할에 이영호씨와 김영호씨는 “모르는 것이 많지만 나태한 생활에 활력소가 되는 영상제작에 한번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며 '신입'의 의지를 드러냈다.

장애인들은 미디어의 영역에서 많이 소외되어 있다. 이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을 때는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이야기꺼리'가 필요할 때뿐이다. 이런 사회의 시선을 거부하고 자신들이 직접 제작자가 되어 만들어내는 이들의 영상은 카메라의 흔들림이 있을 수도 있고 섬세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대상자로 미디어의 인터뷰 대상이나 취재 대상이 아닌, 본인들이 직접 영상을 만드는 그 자체로 이들은 이미 한계를 넘어선 것이 아닐까. 과연 이들이 빚어낸 작품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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