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간의 대열전! 한국 16강 진출-스페인 첫 우승

▲ 사진=국제축구연맹 홈페이지.
[투데이코리아=심재희 기자] 초여름 밤을 뜨겁게 달궜던 2010남아공월드컵이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한 달 동안 32개국의 대표 선수들이 조국의 명예를 걸고 멋진 대결을 펼쳐 보였다. 아프리카에서 열린 첫 월드컵이라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 속에 시작된 이번 대회는 운영이나 흥행 면에서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 하지만 판정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나오는 등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았다. '무적함대' 스페인의 사상 첫 우승으로 피날레를 장식한 2010남아공월드컵의 화제들을 키워드별로 정리해본다.

# 오심 퍼레이드

'오심월드컵'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분이다'라는 이야기를 하기에는 잘못된 판정이 너무나도 많이 나왔다. 브라질의 카카는 코트디부아르전에서 카데르 케이타의 리얼한 할리우드 액션으로 레드 카드를 받고 그라운드에서 쫓겨났고, 독일과 잉글랜드의 16강전에서는 골 라인을 한참 넘어간 프랭크 램파드의 슛이 골로 인정되지 않아 논란을 낳았다. 미국과 슬로베니아의 조별예선 경기에서는 모리스 에두의 극적인 역전골이 아무 이유없이 파울로 선언됐고,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16강전에서는 오프사이드 반칙을 범한 카를로스 테베스의 골이 그냥 인정됐다. 한국도 오심에 피해를 봤다. 아르헨티나와의 조별예선 2차전에서 1-2로 뒤지던 후반 중반 곤살로 이과인의 추가골 장면은 명백한 오프사이드 반칙이었다. 이 골을 내주지 않았더라면, 경기는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 자블라니

과학을 접목했다던 자블라니는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애초에 골키퍼에게 매우 불리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공격수에게도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강하게 차면 너무 높게 떠버리고, 스핀이 잘 걸리지 않아 정교한 킥이 먹혀들지 않았다. 프리킥 골이 눈에 띄게 많이 줄었고, 크로스의 정확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면서 중앙에서의 헤딩골도 많이 보이지 않았다. 조별예선 초반부에는 이런 현상이 극에 달해 공격수들이 적잖은 애를 먹었고, 경기평균 1점대 득점이 나오면서 골 가뭄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탄성이 좋고 흔들림이 심한 볼의 특성은 골키퍼에게도 영향을 줬다. 평범하게 보이는 슈팅이 눈 앞에서 흔들리는 마구로 변신하니 골키퍼로서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자블라니의 '변덕'에 경기력이 크게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부부젤라

개최국 남아공의 전통악기인 부부젤라. 나팔 모양의 이 악기는 60~150cm 정도의 길이에 120~140db의 소리를 낸다. 코끼리가 울부짖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하는 것이 소리의 특징. 경기 내내 울려퍼지는 부부젤라 소리는 선수들의 플레이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주심의 휘슬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고, 계속되는 소리에 집중력을 잃고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는 선수도 있었다. 브라질의 중앙 미드필더 펠리페 멜루는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부부젤라 소리 탓에 훌리우 세자르 골키퍼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결국 실책성 플레이로 동점골은 내준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또한, 부부젤라를 분다는 이유로 남아공 현지에서는 축구 경기 이후에 살인 사건이 벌어지도 했다.

# 유럽? 유럽!

유럽은 울다 웃었고, 남미는 웃다 울었다. 우선, 지난 대회 우승팀과 준우승팀이 체면을 구겼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조별예선에서 꼴찌로 처지면서 예선 탈락의 기구한 운명에 놓였다. 대체적으로 유럽 팀들이 고전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8강전부터는 힘을 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결승까지 오르면서 기세를 드높였고, 독일도 3위를 차지했다. 남미는 브라질, 칠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모두 16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남미 돌풍'을 일으켰다. 8강에도 브라질, 파라과이,아르헨티나, 우루과이가 진출하면서 강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8강전에서 '쌍두마차'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동반 탈락했고, 파라과이도 스페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우루과이가 살아 남았지만, 유럽세에 밀리면서 결국 4위에 그쳤다.

# 징크스

이번 대회에서는 여러 가지 징크스가 깨졌다. 우선, 남아공이 조별예선에서 탈락하면서 '개최국 16강 진출 100%' 공식이 깨졌다. 남아공은 조별예선에서 탈락한 첫 국가가 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스페인은 지긋지긋한 징크스를 모두 털어내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상하게 월드컵 무대에만 서면 작아지면서 시달려오던 '월드컵 징크스'를 시원하게 풀어냈고, 유럽 팀이 타 대륙에서 우승하지 못하는 징크스, 유럽-남미 지그재그 우승 징크스, 그리고 펠레의 저주까지 극복하면서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반면에, 결승전에서 스페인에 무릎을 꿇은 '오렌지군단' 네덜란드는 또 한 번 징크스에 울었다. 1974년과 1978년에 이어 세 번째 결승전에서 패하면서 '결승전 징크스'를 이어가게 됐다.

# 에이스 침묵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카카. 이번 월드컵을 빛낼 '4대 천왕'으로 각광을 받던 선수들이다. 하지만 모두 기대 이하의 모습으로 귀국길 보따리를 쌌다. 자타공인 최고의 선수인 메시는 조국 아르헨티나의 선봉장 역할을 잘 해냈지만, 8강전에서 독일에 덜미를 잡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압도적인 경기력을 발휘하고도 골대 불운 등이 겹치면서 무득점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최고 연봉을 자랑하는 호날두도 1득점에 그쳤다. 코트디부아르, 브라질, 스페인 등 강팀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포르투갈의 16강 탈락을 지켜봐야만 했다. 잉글랜드의 루니는 '득점왕 후보'라는 평가가 무색할 정도로 부진했다. 16강전까지 4경기에서 무득점. 몸도 무겁고 마음도 무거웠다. 브라질의 카카 역시 단 한 차례도 상대 골문을 열지 못했고, 네덜란드전 충격패를 막아내지 못했다.

# 신의 손

여러 선수들이 '신의 손'으로 등극했다. 첫번째 주자는 브라질의 스트라이커 루이스 파비아누. 파비아누는 코트디부아르와의 경기에서 절묘한 핸드볼 드리블로 상대 수비수들을 제쳐내고 멋진 골을 만들어냈다. 두 차례나 손에 볼이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진들이 이를 잡아내지 못해 '신의 손'에 의한 골이 터졌다. 다음으로 루이스 수아레스. 우루과이 골잡이인 그는 가나와의 8강전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신의 손'으로 막아냈다. 연장 후반 막판 가나의 헤딩슛을 손으로 쳐내면서 퇴장을 당했다. 수아레스의 핸드볼 파울로 우루과이는 페널티킥을 내줬으나, 가나의 키커 아사모아 기안의 슛이 크로스바를 때리면서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그리고 승부차기에서 우루과이는 5-3으로 승리하면서 준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스페인의 철벽 수문장 이케르 카시야스. 카시야스는 결승전까지 7경기에서 단 2실점만을 내주면서 조국에 월드컵 첫 우승의 영광을 안겼다. 파라과이와의 8강전에서 오스카 카르도소의 페널티킥을 선방하면서 스페인을 위기에서 구해냈고, 네덜란드와의 결승전에서는 아르옌 로벤의 1-1찬스를 두 차례나 막아내면서 승리의 주역이 됐다. 당연히 '야신상'은 카시야스의 몫.

# 문어 vs 펠레

독일의 '점쟁이 문어' 파울은 독일 경기를 비롯해 8번의 경기 결과를 모두 맞히면서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독일의 두 차례 패배까지 정확하게 짚어내면서 신통한 모습을 보였다. 독일과 스페인의 준결승전에서 파울의 예언이 적중하자, 독일 축구팬들은 분을 삭히지 못하고 "파울을 잡아먹자!"고 주장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스페인 측은 '파울 보호령'을 내리기도 했다고. 이에 비해 '축구황제' 펠레는 또 한 번 엉터리 예언으로 체면을 구겼다. 이른바 '펠레의 저주'가 이번에도 화제가 됐다. 펠레가 우승후보로 지목한 브라질, 아르헨티나, 독일은 모두 결승에 오르지 못하면서 펠레의 저주를 이겨내지 못했다. 스페인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펠레의 마지막 예언은 빗나가지 않았지만, 이번 대회에서도 그의 예언 적중률은 10% 미만으로 낙제점이었다.

# 뜨거운 눈물

사나이의 뜨거운 눈물도 큰 화제가 됐다. 44년 만에 본선에 오른 북한의 에이스 정대세는 조별예선 첫 경기 브라질전을 앞두고 눈물을 흘렸다. 북한 국가가 흘러나오던 순간 감격적인 눈물을 쏟아냈다.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 서는 감동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어우러지면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대한민국의 이영표는 나이지리아와의 경기가 끝난 후 눈물을 머금었다. 원정 월드컵 첫 16강행을 확정지은 감격을 눈물로써 표시했다.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 이상의 감동을 느낀 기쁨의 눈물이었다. 주장으로서 스페인의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끈 카시야스는 결승전이 끝나고 그라운드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그리고 눈물을 훔쳤다. 2002한일월드컵 이후 개인적으로 세번째 월드컵 도전. '월드컵 징크스'를 털어내면서 정상의 자리에서 뜨거운 눈물을 닦아냈다.

# 무적함대

'무적함대' 스페인이 월드컵 첫 우승을 차지했다. 출발은 좋지 않았다. '알프스 군단' 스위스에 덜미를 잡히면서 조별예선 탈락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쉽게 무너질 스페인이 아니었다. 이후 연전 연승을 거듭하면서 결국 첫 우승을 일궈냈다. 정교한 패스워크를 바탕으로 중원에서부터 점유율을 높여나가는 축구를 구사하면서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쳤다. 토너먼트에서 모두 1-0승리를 거두면서 승부처에서 약했던 모습을 완전히 벗어냈다. 유로 2008에 이어 2010남아공월드컵까지 제패.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팀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실력뿐만 아니라 매너에서도 최고를 자랑했다. 페어플레이상 부분에서 한국을 제치고 2006독일월드컵에 이어 2연패를 달성했다.

# 태극전사

'아시아의 호랑이' 대한민국이 원정 월드컵 첫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허정무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대업을 달성했다. 한국은 첫 경기에서 유로 2004 챔피언인 그리스를 2-0으로 완파하면서 좋은 출발을 보였다. 아르헨티나와의 2차전에서 1-4로 대패하면서 주춤했지만,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2-2무승부를 거두면서 B조 2위로 16강 고지에 태극기를 꽂았다. 허정무 감독은 16강전을 앞두고 "갈 데까지 가보겠다"면서 도전의식을 드러냈다. 하지만 우루과이의 벽에 막히면서 8강에는 오르지 못했다. 시종일관 앞서는 경기를 펼치고도 수비불안과 골 결정력 부족으로 분루를 삼켰다. 8강 진출에 아쉽게 실패했지만, 오늘보다 밝은 내일을 기약한 태극전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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