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입맛 담보로 10년간 분유 독점 공급
매일유업 이유식, 사카자키균 검출 사실 은폐

분유 회사들이 산부인과 병원에 자기 회사 분유를 독점 공급하려고 병원과 거래를 해 온 사실이 적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남양유업과 매일유업 등은 신생아들의 한 번 길들여진 입맛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산부인과 병원에 자사 분유를 독점 공급하는 대가로 10년간이나 낮은 금리에 돈을 빌려준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상 병원과 분유회사의 뒷거래로 아기의 분유를 선택할 수 있는 산모의 권리는 처음부터 박탈된 셈이다.
지난 17일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권오승)에 따르면 이들 2개사는 지난해 8월까지 전국 143개 산부인과 병원을 대상으로 연평균 3.32%의 대여금을 지원하는 대신 분유를 독점 공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타사제품 사용시 위약금까지 물게 해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이 산부인과 병원에 꿔준 돈은 병원당 4000만원에서 15억원으로 남양유업은 85개 병원에 338억원, 매일유업은 58개 병원에 278억원을 각각 빌려줬다. 같은 기간 금융권의 가계대출 평균금리는 연 6.37% 수준이었다. 돈을 빌려 쓴 병원들은 분유회사의 돈으로 병원 운영이나 건물 증축 등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병원들은 대여금 제공을 조건으로 해당 병원에 남양유업이 12억5900만원(97.1t), 매일유업은 11억400만원(87.5t)의 분유를 독점 공급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목동의 한 산부인과 병원은 지난 2003년부터 신생아들에게 남양분유만 먹이는 대가로 제조사인 남양유업에게 당시 시중금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의 금리로 7억 원을 빌렸다.
또 다른 산부인과는 매일유업에게 8억원을 5%의 금리로 빌렸다. 이 병원의 원장은 “병원을 오픈하면서 은행대출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돈을 빌리게 됐다”고 밝혔다.
이들 분유제조사들은 병원에 신생아가 많을수록 이자도 덜 받아 10억원을 무이자로 빌린 병원도 있었다.
분유 제조사들은 병원들이 약속을 어기고 만약 다른 회사 제품을 사용할 경우에는 그동안 받지 않았던 시중 금리와의 차액에 대해서도 추가로 계산해 위약금을 배상하도록 했다.

신생아들 입맛 담보로 검은 '사채놀이'

두 회사가 이처럼 비정상적인 거래를 해온 것은 신생아들이 병원에서 처음 먹은 분유에 입맛이 길들여져 해당 분유만을 먹는다는 조제분유의 소비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분유 회사가 산부인과에 지원한 돈은 모두 분유값에 포함된다. 결국 고스란히 고객 부담으로 돌아오는 셈이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분유를 먹일 땐 젖병으로 수유를 해야 되기 때문에 모유수유를 하게 되면 유두혼동으로 엄마젖을 거절하는 그런 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에 시정명령(행위중지)과 함께 남양유업에 1억2000만원, 매일유업에 1억800만원의 과징금을 각각 부과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상 문제의 산부인과병원들은 불공정거래의 주체가 아니므로 별도의 제재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들 2개 분유업체가 적용했던 금리와 시중 평균금리 차이를 감안하면 남양유업은 39억2100만원, 매일유업은 26억8800만원에 달하는 손실을 감수하면서 자금을 지원해 분유납품가액보다도 많은 금액을 병원에 쏟아 부은 셈이다.
이 같은 조건의 거래로 인해 결과적으로 남양유업은 26억6200만원, 매일유업은 15억8400만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됐다.

매일유업 '사카자키균' 검출, 식약청 은폐 의혹

특히 매일유업의 경우는 이번 사건과 함께 영유아에게는 치명적인 사카자키균 검출 사실을 은폐 시킨 의혹도 받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올 초 유아용 이유식에서 '사카자키균'이 검출된 사실을 알고도 1개월 이상 발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매일유업의 '3년 정성 유기농 쌀이유식'에서 '엔테로박터사카자키균'이 검출되었다는 사실을 식품의약품안전청 위해관리팀장, 위해기준팀장에게 통보했지만 식약청은 이를 거의 한달간 발표하지 않아 그동안 사카자키균에 노출된 이유식이 버젓이 유통돼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했다.

사카자키균은 특히 1세 미만의 영아의 경우 감염시 뇌수막염, 패혈증 등으로 사망할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식약청이 검출된 사실을 알았다면 즉시 판매를 중지하고, 업체에서도 검출 사실에 대하여 국민들에게 알리고 사과했어야 했음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소식을 접한 김유경(여·33)씨는 “분유회사의 비도덕성에 할 말을 잃었다”며 “신생아들이 먹는 이유식을 가지고 뒷 거래한 이들 병원들과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지 않고 기업편만드는 관계기관에 대해서는 보다 엄정한 처벌이 따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매일유업측은 사카자키균 검출과 관련해 “작년 11월 이후 6개월 이하 영유아용 이유식 생산을 중단했으며 이미 유통분 전량을 자진회수했으며, 이번에 발표된 내용은 지난해 조사 당시 미처 수거하지 못한 물량에서 검출된 것이며 뒤 늦게 소비자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당 산부인과 처벌할 관련 규정 없어

이에 대해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은 “병원을 세울 때 분유업체가 대출금 등을 지원하던 관행이 남아 있던 것”이라며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의 국내 조제분유 시장점유율은 작년 8월 현재 각각 45.3%, 32.9%다.

공정위는 “저리의 대여금이 해소되면 다른 분유회사들과의 경쟁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산모의 모유 수유를 권장하는 계기도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에 동의한 병원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으며 두 회사가 구역을 나눠서 담합한 흔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김원준 공정위 시장감시본부장은 “신생아의 절반에 육박하는 46.3%가 병원에서 먹던 분유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먹는 것으로 분석된 분유업계의 조사 때문에 이같은 비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져 온 것”이라면서 “시정조치로 해당 산부인과 병원들은 돈을 갚고 다양한 분유제품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 조제분유시장의 점유율은 작년 8월말 현재 남양유업이 절반에 육박하는 45.3%를 차지했으며 이어 매일유업 32.9%, 일동후디스 16.6%, 파스퇴르 3.5%, 한국애보트 1.6%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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