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윤동영 특파원 = 한국과 미국간 자유무역협정(FTA) 1차 협상이 폐막을 하루 앞두고 17개 분과별로 양국의 공.수 입장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1차 협상은 일부 합의도 이뤘지만 이는 대부분 양국간 특별한 이견이 없는 기술적이거나 원칙론적인 부분이고, 양측 협정문 초안에서 드러났던 주요 쟁점들은 쟁점임을 양측이 '동의'하는 선에서 끝났다.
다만 양국 협상팀은 1차 협상이 열리기 전까지는 상대측이 협정문 초안에서 숨겨뒀던 돌발 요구를 내놓을 가능성 때문에 긴장했었으나, 협상 뚜껑을 열어보고는 대체로 예상했던 내용과 수준에 안도하는 표정이다.
이와 관련, 한국측 수석대표인 김종훈 대사는 의약품.의약기기 작업반 논의에 대해 "미측의 기왕의 입장에 비춰 협상이 경직될 것을 우려했었는데 정작 회의를 열어 보니 상당히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됐다"고 말하는 등 지난 나흘간의 브리핑에서 때때로 이러한 평가를 내비쳤다.
이는 한.미 양국이 협상 기세 싸움을 위해 협정문 초안을 공세적으로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상대를 놀래키는 협상보다는 진지한 타결 의지가 강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김 대표가 입장 차이가 큰 분과도 "대부분 우호적이고 건설적인 분위기"라고 자주 강조하는 것도 이 점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 정부 한 관계자는 한국측 협정문 초안이 공개되기 전에 이미 협상 기술상 초안을 일부러 최대치로만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성실신의의 원칙"에 따라 만들어 제시키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1차 협상에서 한미 양측이 밝힌 입장들이 예상했던 것들이라고해서 협상 타결을 낙관케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쟁점중 가장 정치성이 강한 개성공단 문제는 한.미 양국 정부의 대북정책 근간을 건드리는 정치성이 강한 쟁점이어서, 어느 한쪽이 기존 입장만 고수할 경우는 FTA 협상 전체를 무산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경고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다.
쌀시장 개방문제를 포함한 농업분야는, 한국의 경우는 국내정치적 폭발성이 강하고 미국의 경우는 협정 타결안에 대한 의회의 비준 여부와 직결되는 사안이어서 역시 해법이 쉽지 않은 문제다.
다만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 민간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 정부가 농업구조조정 측면에서 궁극적으로 시장 개방을 염두에 두고 농민들에 대한 직접 소득보전 방책을 강구하고 있는만큼 미국의 경트럭 고율관세 문제 등과 주고받기를 통한 단계적 개방에 합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양국 협상팀은 1차 협상에선 한국측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도입과 기존 저율관세할당수입제도(TRQ) 유지 입장을 놓고 현재로선 도저히 의견접근이 불가능하다는 데 '합의'하고 통합협정문 만들기를 포기함으로써 서로 자국 국내 여론을 향해 입장 관철 의지를 강조했다.
김종훈 대표는 "우리측이 특히 농업부문 민감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양측간 입장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수성 의지를 강조했다.
다만 2차 본협상때부터 양국이 양허안과 유보안을 교환하고 주고받기를 통한 타결이 시작되면, 이 협상 결과에 따라 협정문 본문상의 쟁점이 해소되는 길도 있다.
미국측이 상품무역 분과내에 별도 작업반을 만들어 사실상 별개 분과로 운영할 것을 요구했던 자동차, 의약품.의약기기 문제도 한국의 세제와 국민건강보험제도 자체를 건드리는 대형 쟁점이어서, 자동차의 경우 이틀 예정했던 회의를 하룻만에 끝내는 등 1차 협상에선 굳이 의견 접근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두 문제도 주요 쟁점인 것은 분명하지만, FTA 협상 자체를 위협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이 요구하는 자동차 세제 개편의 경우 한국측은 기존의 배기량 기준대신 가격기준 등의 대안에 특별한 거부감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수용 검토 관측을 낳았다.
농업, 자동차, 의약품.의약기기 등은 미국이 공세를 펴고 한국은 수세인 분과나 작업반이라면, 섬유, 무역구제 등은 한국측이 미국에 개방 공세를 펴고 미국이 민감성을 내세워 방어한 분과다.
무역구제의 경우 미국은 반덤핑과 상계관세 제도를 무기삼아 한국의 대미 수출품에 대해 1983년부터 2005년 사이에 총 373억 달러의 부과금을 매김으로써 대미 총 수출액의 7%를 차지할 정도여서, 한국은 제도의 오.남용에 따른 무역장애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김종훈 대표가 무역구제 분과에 직접 참석, 회의를 개막사를 통해 한국측의 개선 요구를 강하게 주장했고, 파트너인 웬디 커틀러 대표도 직접 방어에 나섰다.
의약품.의약기기의 경우 커틀러 대표가 먼저 직접 참석 의사를 밝히자 김 대표도 방어에 나서는 등 한.미 양국은 중점 분과에 대해선 대표가 직접 참석하는 방식으로 자국 입장을 강하게 주장했다.
금융, 서비스, 투자, 노동 등의 경우도 기본적으로 미국 시장이 한국 시장보다 더 개방돼 있는 점 때문에 한국이 수세적이긴 하지만, 한국도 시장개방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만큼 급속한 개방의 충격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타협점이 모색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상당수 분과에서 미국측이 "숨겨진 진짜 장벽"이라는 규제체제와 관행 철폐를 벼르고 있는 점은 한국의 국내법과 제도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협상기간 내내 '숨겨진' 쟁점이 될 전망이다.
다만 미국이 요구하는 경쟁 정책과 규제개혁은 한국 시장도 내부적으로 필요로 하는 부분과 일부 겹치는 대목이 있어, FTA를 계기로 국내 개혁을 촉진하는 면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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