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빗나간 취재·특종 경쟁에 취재원 신변 위협 다반사

사례 1.
서울중구의회 김연선 의원은 최근 언론 기피증을 겪고 있다.

김 의원은 황학동 재개발 건과 관련해 중구의회에 접수된 민원을 처리하는 와중에, 중구청, 롯데건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의원들과 힘겹게 싸워오던 중, 결국 지난달 29일 회의석상에서 최근 심상문 보건위 위원장과 서로 유리를 깨고 의사봉을 던지고 손으로 밀치는 등 싸우게 된 것.

그런데 이날 회의 장면(더 정확히는 싸우는 장면)을 담은 녹화테이프가 서울방송(SBS) 전파를 탔다. 방송을 본 김 의원은 기가 막혔다. 2시간에 이르는 사건당일 회의 녹화분 중에 방송에 나간 분량은 극히 일부분. 그나마 자신이 싸우게 된 황학동 재개발과 그로 인한 구민들의 피해 등 전반적 문제와 동떨어진, 지방의회 수준이 의심스럽다는 투로 '따다 붙인' 방송이 나간 것이다.

김 의원도 물론 당일 자기가 지나쳤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방송국의 왜곡된 방송태도로 잘못 이상으로 매도되고 있다는 볼멘 소리다. 김 의원은 그간 구민을 위해 노력해왔다는 자기 자부심은 송두리째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 방송국을 상대로 강력항의할 생각이다.

사례 2.
선행으로 유명해진 '목도리녀' 김지은 양(홍익대 경영학과 4학년)은 요새 몹시 언짢다. 목도리녀 찾기 열풍이야 그렇다 치고, 언론이 후속 보도까지 해 가며 자신을 괴롭힌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모 기업에서 자신을 특채하기로 했다고 대서특필한 모 신문사의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을 써 대는 언론, 특히 기사화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걸 묵살하고 기사를 써대는 기자들의 태도에 김 양이 받은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사례 3.
대형인명사고였던 서해페리호 전복 사건 때 이 배의 선장이던 모 씨가 살아서 도망을 쳤다는 기사가 여러 언론에 나갔다. 발빠른 어느 언론사에서 모 선장과 닮은 사람이 인근 섬에서 걸어가는 장면을 봤다는 어느 주민의 증언을 확보하고 치고 나가자, 다른 언론사들도 우르르 따라간 것.

선장은 후에 배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제서야 언론은 다시 그를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배를 끝까지 지킨 선장으로 추켜세웠지만, 이미 유가족들의 가슴에 남은 상처는 넓고도 깊었다.

위들 사례에서 느낄수 있듯이 '사회의 목탁'이라 일컬어지는 언론, 언론사와 기자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무척 크다.

숨겨진 진실을 찾아 널리 알리고 때로 비리를 저지르는 개인, 기관, 회사에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때로는 비리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사건에 접근했다가 그게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사실은 이렇다고 억울함을 신원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언론 본연의 역할론은 현장에서 가끔 무너지기도 한다. 저널리즘의 이론과 실무 관행 사이에 괴리가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장을 모르는 말씀…”이라는 한 줄로 경계선을 쉽게 넘어버리는 걸 용인해 주면 결국 경계선 자체가 희미해지다가 없어져 버리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런 지경을 용인하기엔 사회와 국가가 입을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게 문제다.

자신의 기사가 몇 건이나 선택될 것인지, 몇 건이나 킬(kill)될 것인지 항상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기자들, 항상 현장에서 속보를 따라 달리면 어떻게든 빨리, 자극적인 기사를 잡아 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안 들기도 한다. 그렇다 보면 취재원의 인권이나, 신변보호 문제, 여러 가지 언론 윤리 문제는 도외시되기도 한다.

윤리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경우는 우선 유도 심문 문제. 취재원이 말하는 그대로를 청취해 기사화하기보다는 자신이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아 놓고 그럴 만한 발언을 해 줄 사람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원하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 말을 유도하기도 한다.

위에서 말한 김연선 서울 중구 의회 의원의 경우는 아예 원하는 기삿거리에 적당한 그림을 구하다가, 마침 눈에 띈 전혀 생뚱맞은 사건에서 적당한(?) 부분을 따서 쓴 경우.

이런 경우 기자들은 이런 항변을 한다. 기사는 써야 하는데 기껏 취재원 앞에 앉아 한참을 듣고 보니, 시간 낭비를 한 것으로 판명되면 '대략 난감'하다는 것.

이러니 어느 정도 밑그림을 그리고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이야기하는 기자들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진실과 이미 상당히 동떨어진 경우엔 기사라고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지양되어야 할 취재 태도임은 분명해 보인다.

두 번째 취재 윤리 위반은 취재원 윽박지르기. MBC PD수첩 관계자들이 김선종 연구원을 따라가 “조사하면 다 나와”하고 윽박지른 일화는 유명하다. 어느 정도 톤이 높아지는 건 인지상정이겠지만 도가 지나치면 역시 문제라는 것이 언론계 중진이나 신문방송학 교수들의 지적이다.

아울러, 이 대목에서 취재원의 인권 침해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특종을 하겠다는 생각만으로 가득차 취재원을 도구 바라보듯 하는 기자들이 의외로 많다.

가까운 예로는 가수 시야의 콘서트 현장 가슴 노출 사건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내보낸 어느 언론사의 태도를 들 수 있다. 문제의 가수는 공인이기 이전에 20대 초반의 가녀린 여성인데, 그녀가 어린 마음에 입은 상처를 어떻게 책임일 건지 해당 기자의 소양이 의심되는 사건이었다.

망신이나 상처 정도로 끝나지 않고 신변의 위협을 취재원에게 선물하는 기자들도 있다. 위험한 사건을 제보한 취재원의 신원을 노출하는 단서를 기사 속에 부주의하게 남기는 것. 이런 경우 기자는 몰라도 취재원은 생사를 넘나들게 된다.

특종 경쟁도 언론계를 좀먹는 요소 중 하나다. 특종에 목말라 하다 보면 언론인들이 항상 금과옥조로 여겨야 할 크로스 체킹은 한낱 쓸모없는 잔소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전혀 엉뚱한 기사가 한참을 전파와 지면을 장식하기도 하는 것.

주간지의 어느 간부는 이런 언론계의 해묵은 문제들에 대해 “현장에서 그저 부지런히 뛰어야지 좀 편하려고 머리를 굴리면 안 된다”라고 지적한다. 기사를 '찾아다녀야' 하는 것이지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소리다.

또 모 언론사의 간부로 재직하는 한 K모기자는 “기자는 자영업자다”라는 말을 후배들에게 즐겨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고거리' 같은 겉만 번지르르한 기사를 만들지 말고, 기사 하나하나에 내 가게의 위신과 밥줄이 걸려있다는 자영업자 마인드로 생각하면 부실하거나 남에게 원성듣는 기사는 쓸 수 없다는 취지에서 나온 말이다.

촌지와 접대에 길든 기자들, 마감시간에 쫓긴다는 핑계로 유도심문과 '워딩' 따다 붙이기(인용구 짜맞추기)를 합리화하는 기자들이 쓰는 기사가 과연 사회에 무슨 득이 될지 생각해 볼 문제다.

결국 편하게 기사를 써 할당량만 채우려는, 혹은 상부의 잔소리만 어떻게든 일단 모면해 보려는 '회사원스러운' 마인드로 취재원과 사회를 바라본다면 증권가에 돌아다니는 '찌라시'와 정론지의 구분이 과연 무엇인지 모호해질 것이 분명하다.

정권의 탄압에 굴종하느니 차라리 광고 없이 배고픈 신문을 만들겠다는 동아일보 사태 당시의 정신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경위서를 작성할 지언정, 적어도 특종을 찾아 달리다가 엉뚱한 피해자를 양산하지는 않겠다는 '느림의 미학'과 거대한 언론사의 보호벽 속에 안주하며 엉뚱한 기사를 쓰느니 차라리 펜 한 자루만 들고 '유목민 마인드'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고참 기자들은 후배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결국 답은 “기자는 신문사의 월급쟁이가 아니라 (진실을 찾아 시민사회라는 시장에 공급하는) 자영업자다”라는 말 한 줄로 정리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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