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자핸드볼 미래, 진짜 도전은 지금부터!

[투데이코리아=박대웅 기자] 2010년 7월. 대한민국은 축구의 열기로 뜨거웠다.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과 20세 이하 여자월드컵 3위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생순'으로 감동을 안겨줬던 핸드볼에 대한 관심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 광주, 천안 등지에서 제 17회 세계 주니어 여자핸드볼 대회가 펼쳐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비록 안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 대표팀이 4위에 올랐고, 대회 최우수선수가 대한민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더욱 드물다. 162cm 단신에 빠른 스피드와 거침없는 몸싸움으로 상대 장신 수비 숲을 헤집고 다니는 태극소녀. 세계 주니어 여자핸드볼 대회 MVP에 오르며 한국 여자핸드볼의 미래로 평가 받고 있는 21살 이은비가 이번 샛별인터뷰의 초대손님이다.

# 핸드볼은 나의 힘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이시는데 괜찮나?" "(웃음)네. 괜찮아요." 사람들로 넘쳐나는 강남의 거리에서 이은비를 처음 만나 나눈 첫 대화였다. 이은비는 지난 7월 31일 세계 주니어 여자핸드볼 대회에서 부상을 당했다. 몬테네그로와의 3-4위전 경기 도중 왼쪽 무릎 십자인대와 내측인대가 부분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다. 전치 3개월. 기량이 절정으로 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당한 부상이라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이은비는 부산시설관리공단 소속이다. 이은비의 전력 이탈로 부산시설관리공단은 'SK 슈퍼리그 코리아'에서 6연패로 플레이오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자신도 그렇고 팀도 그렇고 가라앉을 법 한 상황이지만, 그는 밝은 모습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첫 인상부터 재기에 대한 자신감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핸드볼은 치열한 몸싸움과 빠른 스피드를 요구하는 '거친 운동'이다. 수 많은 운동 중 핸드볼을 택한 계기가 궁금해졌다. 삶은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순간에 전환점을 맞게 되기도 하는데 이은비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체육선생님이 공을 한 번 던져보라고 했어요. 그 이후에 핸드볼을 시작하게 됐어요." 체육선생님의 갑작스러운 테스트가 이은미의 핸드볼 재능을 밖으로 끄집어낸 것이다. 이은비는 이후 가파르게 성장했고, 지난 제 17회 세계주니어 여자핸드볼 대회에서 MVP에 오르면서 한국 여자핸드볼의 차세대 기둥으로 확실히 자리매김 했다.

"하루 8-9시간 연습해요. 특히 체력훈련이 최고로 힘들어요." 이은미는 훈련 강도에 대한 질문에 혀를 내두르는 모습을 먼저 보였다. 하지만 곧바로 "후회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결코 후회하지도 않을 거에요"라며 핸드볼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어 "오는 10월 전국체전에서 좋은 성적으로 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털고 싶어요. 아직 다른 건 생각 없고 전국체전에 몸 상태를 맞추고 있어요.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열심히 할 겁니다"라며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21살. 꿈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지만 이은비는 머리 속은 온통 핸드볼로 가득 차 있었다.

# 선수 이은비 vs 여자 이은비

여자로서 평상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평소에 어떤 옷을 많이 입나?"라고 물었다. 곧바로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트레이닝 복이요." 인생의 황금기에 예쁘고 아름다운 것에 탐닉할 나이지만 이은비는 의외로 털털한 모습을 내비쳤다. 혹시나 싶어 "치마나 다른 이쁜 옷 입고 싶지 않나?"라고 재차 물었다. 이은미는 "치마요? 절대 안 입어요. 다리가 못 생겨서 치마 입으면 큰 일 나요"라며 애교 섞인 반응을 보였다. 운동 선수에게는 훈장과도 같은 탄탄한 하체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당당한 모습을 내비치는 게 대견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어 "핸드볼이 체력 소모가 많은 운동인데 특별한 보양식은 있나?"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질문을 던졌다. 앞선 질문과는 달리 한참의 고민 끝에 이은미는 답했다. "밥이요. 머슴밥처럼 식판에 가득 쌓아 놓고 먹어요"라며 밥심이 강철 체력의 근원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경기에 앞서 부담감을 줄이는 자신만의 방법을 묻자 거침 없이 '음악'을 꼽았다. "세계 주니어 대회 당시 경기를 앞두고 라커룸에서 스피커 볼륨을 크게 틀고 노래를 들었어요. 당시 월드컵 응원가 '승리의 함성'을 들으며 부담감을 떨쳤죠. 평소에도 기분 좋을 때는 클럽 음악, 우울 할 때는 발라드 등을 듣고 긴장을 풀어요"라며 자신만의 노하우를 공개했다.

여자 이은비에 대한 질문과 선수 이은비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이은미의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세계 대회 MVP다운 당당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 자랑스럽기도 했고, 수줍게 이야기하는 모습에서는 영락없는 20대 초반 숙녀의 티가 묻어났다. 두 모습 모두에서 느껴지는 공통점은 역시 핸드볼과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핸드볼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20대 초반 숙녀 이은비가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 MVP의 이름으로!

이번 대회에서 이은비는 10경기에 출전했다. 58골을 넣어 득점랭킹 6위에 올랐고, 어시스트 13개를 기록해 12위에 랭크 됐다. 한국대표팀의 주축으로서 4강 진출에 가장 큰 공을 세웠다. 대회가 끝나고 시상식에서 이은미는 '예상 밖의 MVP'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맹활약을 펼쳤지만, 4위 팀에서 대회 MVP가 나오는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혹자는 개최국 프리미엄으로 대회 최우수선수의 영광을 차지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MVP'와 대회 '베스트 7'은 국제핸드볼연맹(IHF)가 선정하는 것으로 개최국 프리미엄과는 큰 상관이 없다.

MVP가 호명되는 순간을 되돌아 봤다. 이은비 자신도 '의외'였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경기 MVP 정도라면 예상했겠지만, 대회 MVP를 받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어요"라며 솔직한 대답을 내놓았다. 센터백으로 뛴 이은비는 "시상식에서 베스트 7에 노르웨이 센터백 선수가 호명되길래 (저의 수상은) 끝난 줄 알았어요"라며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실제로 당시 시상식에서 이은비가 MVP로 호명되자 이은비를 찾는 눈으로 장내는 순간 술렁였다. 하지만 이내 이은비를 알아본 참가국 선수들은 '아, 저 선수'라는 반응을 보였다. 4위 팀의 선수지만, MVP 자격이 충분하다는 그런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번 대회 우승팀인 노르웨이의 스벤덴 톰 모르텐 감독은 "마치 스포츠카 페라리 같다"며 이은비를 높게 평가했다. 또한, 이은비의 소속팀 부산시설관리공단 김갑수 감독은 "은비를 데려가고 싶은 해외 팀이 많이 생겼다. 올림픽 이후 해외진출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혀 달리진 위상을 실감하게 했다. MVP 수상 이후에 주가가 더욱 높아진 이은비다. 그렇다면 이은비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일까. 그는 '스텝'을 꼽았다. "어릴 적 부터 키가 작아 불리한 점이 많았어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텝연습을 많이 했죠. 그 결과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라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세계대회에서 받은 MVP. 하지만 이은비에게서 자만심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큰 상을 받았지만 오히려 더 큰 곳으로 올라서기 위해서 온통 '핸드볼 생각'으로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다. 주위의 기대도, 현재 처한 부상의 상황도 부담이 아닌 성장을 위한 자양분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아직 어리지만, 분명한 것은 핸드볼에 미쳐 있는 숙녀가 대한민국 여자핸드볼의 대들보가 될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대회 MVP의 이름으로 21살 이은비가 광저우아시안게임과 런던올림픽에 대한 꿈을 부풀리고 있다.

박대웅 기자 liebelya@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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