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보청기로 난청노인과 청각장애인에 희망주는 청년기업

[투데이코리아=나지혜 기자] 대다수 대학생들이 영어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스펙쌓기'에 열중 하고 있는 요즘 좁은 사무실에 모여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땀흘리고 있는 젊은이들이 있다. 최근 저가형 보청기를 생산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사회적 기업 '딜라이트' 의 청년들을 만나봤다.

"우리 이렇게 해서 모이게 됐어요"

김정현씨(25ㆍ카톨릭대 경영학4)는 3년전 독거노인 목욕봉사를 하면서 보청기 없이 8년 동안이나 세상과 단절된 채 사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 후 김정현씨는 한달에 1,000만원 가까이 벌던 사업을 그만 두고 '돈이 없어 듣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 을 만들겠다는 포부 아래 고등학교 친구 유병곤씨(25ㆍ경희대 경영학4)와 함께 회사 창업을 계획했다. 2009년 6월 서울시 창업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1200만원을 지원받았고 마음이 맞는 대학생들과 함께 딜라이트라는 회사를 차릴 수 있게 되었다.

두명의 대표 아래 관리팀 기획팀으로 나누고 그 아래 PM( Project manager)을 두어 운영하는 시스템이다.관리팀장인 원준호씨(25ㆍ연세대 경영학 4)는 의무 소방관 시절에 노인분들의 자살을 여러번 보았다. 어느날 찾아간 사고 현장, 거실에 볼륨이 100으로 올려진 TV를 보다가 숨을 거둔 할아버지의 싸늘한 주검을 마주 했다. 소리를 높여도 높여도 들리지 않던 어둠 속에서 외롭게 생을 마친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기획팀장인 김남욱씨(23ㆍ카이스트 경영과학2)는 어머니가 실제로 청각장애가 있어 누구보다 관심이 있었다. PM으로 활동하는 오주현씨(21ㆍ한양대 신문방송학 2)는 자신이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상빈씨(21ㆍUC버클리 경제학2)는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학풍을 이어받았다. 이런 이유들을 가지고 한자리에 모였고 김정현씨의 학교인 카톨릭대 창업 보육 센터에 둥지를 틀었다.

보청기 가격, 34만원의 의미

현재 정부에서는 청각장애가 있는 노인과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디지털 보청기를 본인 부담금 없이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최대 34만원을 지원한다. 그러나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보청기의 가격은 150~200만원 사이로 34만원을 지원받아도 엄두를 낼 수 없다. 그래서 딜라이트는 보청기 가격을 34만원으로 책정했다. 현재 청각장애인인 동시에 기초 수급자인 사람에게는 34만원, 기초 수급자에 해당하지 않는 청각장애인에게는 27만2천원이 정부에서 지원된다. 때문에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딜라이트 보청기를 무료로 구입할 수 있고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6만 8천원만 부담하면 된다.

인식의 변화 필요

우리나라에 보청기가 처음 시중에 유통될 당시에는 한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없어 100% 수입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보청기는 비싼다는 인식이 팽배해 졌고 대부분 그 틀을 벗어 나지 않고 보청기는 당연히 100만원을 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딜라이트는 이 점을 공략했다.쓸데 없는 에디션 코스트를 줄이고 온라인 판매(www.delightproject.org)를 통해 대리점 마진을 줄였다. 일일이 개인 귓속 모양을 본떠 맞춤형으로 제작하던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한국인 평균 귓속 모양을 데이터로 분석해 같은 사이즈로 50~60대씩 대량 생산하는 방법으로 비용을 크게 줄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34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을 만들었지만 처음엔 100만원을 호가하던 보청기가 이렇게 저렴하게 유통 된다는 사실에 보청기 시장의 구매자들은 반신반의 하는 분위기였다. 혹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다.

딜라이트는 정당하고 똑똑한 방법으로 얻어낸 쾌거였지만 보청기 시장의 많은 구매자가 노인들이다 보니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인식체계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나 대학생들이 하는 것이라는 사실 하나로 신뢰를 주는 노인들이 생겨나고 서울시에서 인증을 받은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작은 변화는 딜라이트의 시작이었다.

"나는 젊으니까, 대학생이니까"

딜라이트의 구성원들은 휴학한 원준호씨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학교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김남욱씨의 경우는 카이스트가 대전에 위치하고 있어 화,수,목에는 학교에가서 수업을 듣고 금,토,일,월에는 부천으로 와서 회사 일을 본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지 않느냐 그만두고 싶은적은 없었냐는 물음에 "나는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고 말했다. 성인이고 사회적 기업의 한 구성원으로써 서울시에서 지원받은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딜라이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난청 노인이나 청각장애인을 떠올리면 김남욱씨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휴학을 하고 좀 더 편하게 회사활동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딜라이트에 적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예전에는 목적의식없이 들었던 수업들이지만 지금은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혹시 딜라이트를 운영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김남욱씨외에 다른 직원들 역시 같은 마음으로 일과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딜라이트는 보청기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딜라이트는 보청기 사업이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지게 되면 임플란트 쪽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임플란트 역시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유명한 것이기에 딜라이트의 타깃이 되었다. 딜라이트의 취지가 '돈이 없어 OO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세상만들기' 기 때문에 계속 사업을 확장할 것이고 그 대상은 늘 현재 시장에서 고객이 되지 못하고 사회에서 배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 좋은 기업,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포부가 한없이 멋지게 느껴진다.

그들이 말하는 돈이 없어 듣지 못하는 외로운 사람이 없는 세상이 오는 것이 언제쯤 가능할까. 당장 눈앞에는 어렵겠지만 오늘도 그 세상을 위해 땀흘리는 이 여섯 젊은이들이 있기에 희망을 가진다. 문의 : 02-336-7767. 한국기자아카데미(www.kj- academy.com)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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