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편향성 의식한듯 실용노선 무게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혼돈을 겪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구원투수'로 나선 김근태(金槿泰) 신임 의장이 11일 서민경제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첫 발을 내디뎠다.
김 의장은 이날 취임 기자회견에서 정국운용의 최우선 기조를 민생에 두고, 정계개편 등의 `과제'를 후순위로 미루는 등 창당이후 4번째로 구성된 비대위의 안정적인 출발에 초점을 맞췄다.
좌편향성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당내 비대위원장 인선과정에서 실용.중도진영으 로부터 극심한 견제를 받았던 김 의장은 일단 개혁색채를 드러내지 않은 채 민생우선을 강조함으로써 이념보다는 실용 쪽에 무게중심을 둔 것.
그가 "첫째도 서민경제, 둘째도 서민경제, 셋째도 서민경제"라고 강조한 대목은 지방선거 참패를 통해 드러난 민심이반을 심각히 받아들이고, 우리당의 지지층 회귀를 위해 서민경제 안정에 `올인'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자칫 `중단없는 개혁' 등의 구호를 전면에 내걸어 당내 노선투쟁을 촉발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고, 당을 민생경제 회복이라는 공통된 목표 아래 결속시킴으로써 안정된 스타트를 끊겠다는 복안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김 의장은 "대권을 위해 꼼수를 부리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 당의장 자리를 차기 대선을 위한 프리미엄으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차기 대선을 앞둔 당내 역학관계를 감안할 때 자칫 대권을 의식한 행보를 보일 경우,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이 야기될 수 있는 만큼 스스로 경계하겠다는 다짐으로도 들린다.
이런 연장선에서 김 의장은 자신이 지방선거 이전에 주장했던 `범여권 대연합론' 내지 `통합론'을 시급하지 않은 사안으로 규정했다. 민생회복에 총력을 경주하기 위해서는 선후관계가 분명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계개편론은 후순위에 둬야한다는 취지이다.
결국 김 의장은 자신이 주장해 왔던 범여권 대연합론 등을 밀어붙여 차기 대권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 할 것이라는 당내 `비(非) 김근태 진영'의 우려를 씻어내는데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후속 당직개편 문제에 대해서도 김 의장은 최소화 논리로 `정동영체제' 진용을 흔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의장은 이계안(李啓安) 비서실장과 박우섭(朴祐燮) 비서실 부실장 제외하고는 현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생각이다. 우상호(禹相虎) 대변인은 "본인이 지쳐서 못하겠다는 곳과 인사요인이 발생한 곳만 개편하고 주요 당직자를 거의 유임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이광재(李光宰) 기획위원장이 사의를 밝혔지만, 김 의장측이 설득에 들어간 상태라는 전언이다.
김 의장의 핵심측근은 "김 의장은 비대위가 들어서는 과정에서도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과 의견을 교환했고, 앞으로도 정 전 의장과 긴밀하게 협조하겠다는 생각"이라며 "정 전 의장이 임명한 당직자를 바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당초 비대위체제 출범 즉시 일정이 잡힐 것으로 예상됐던 의원워크숍도 최대한 늦출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선거 참패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의원워크숍을 소집할 경우 당의 노선 문제 등 `인화성'이 강한 이슈로 인해 당내 분열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한다.
대신 김 의장은 의원워크숍을 소집하기 전에 선수(選數)별, 지역별, 계파별로 소속 의원들을 접촉해 주요 이슈에 대한 의원들의 입장을 최대한 조율할 계획이라고 한 측근이 전했다.
당.정.청 정책갈등 문제도 적어도 취임회견에서 밝힌 김 의장의 입장만 놓고 볼 때는 당장 심각한 정책적 `엇박자'를 조정할 개연성은 적어 보인다.
김 의장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의 관계악화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친노(親盧) 세력을 의식한 듯 부동산.세제 정책기조 변화 여부에 대해 "참여정부의 정책기조와 방향은 옳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다만 김 의장은 "기조의 일관성과 타당성을 견지하되 이번 선거과정에서 일부 국민들이 문제를 제기한 내용에 대해 당 정책위에서 토론할 수 있다"고 언급, 경우에 따라서는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을 맞을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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