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국희도 칼럼] '거짓말의 발명(The Invention of Lying)'이라는 영국 영화(2009년 제작)가 있다.
우주 반대편에 우리와 똑같은 지구가 존재하는데 한가지만 다르다. 즉 그곳 사람들은 거짓말을 전혀 할 줄 모른다.

가령 펩시콜라 광고도 지나치게 솔직하다.
'코카콜라보다는 못하지만 코카 대용품으론 마실 만해요.'

어느날 은행에 간 주인공 마크는 얼떨결에 거짓말을 해서, 잔고에도 없는 거액을 인출하게 된다. 거짓말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마크는 자신이 발명해 낸 '거짓말'로 점차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된다…

최근 별세한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비서는 북한에서 망명한 최고위급 인사로 1997년 망명 당시 '주체사상의 망명'이라는 보도처럼 북한의 사상적 토대인 주체사상을 완성한 철학자다.

그는 김일성 주석의 손자 김정은의 3대 세습이 공식적으로 선포된 날 안가 욕조 안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다.

황 선생은 일제의 36년 압제에서 해방된 '공화국'이 다시는 외세의 침범을 받지 않고, 또 강대국의 눈치나 보던 '조선 관료들의 사대주의' 망령에서 깨어나게 해 줄 완벽한 시스템으로 주체사상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주체철학이 공산주의의 글로벌 표준인 막스-레닌주의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끔찍했다.
주체사상은 사회를 끌어가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졌지만, 김일성은 스스로 '시스템'이 됐다. 인간과 민족이 주체가 되는 완벽한 이데올로기가 오히려 김일성 개인 숭배와 독재, 그 일가의 세습 도구로 변질된 것이다.

그의 주체철학으로 북한 주민들을 주체적 삶과 각성은커녕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망극한 성은과 교지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현대판 노예들로 전락하고 말았다.

말로만 하자면 공산주의는 더할 나위없이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만큼만 재화를 생산하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배급한다. 그러면 과잉 생산도, 환경 파괴도, 물가 폭락도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생산 규모를 오차없이 계획하고, 사람들의 탐욕을 통제하고, 자원의 낭비를 감시해 줄 사심 없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누가 감시와 통제를 할 것인가? 결국 막스-레닌주의나 주체사상이나 출발부터 독재자의 탄생이 불가피한 시스템이었다.

일제의 핍박을 거쳐 해방된 북녘땅을 김일성 일파는 말로는 '민주주의 공화국'을 외치며, 실제로는 '김일성 수령'을 새 주군으로 모시는 시대착오적 왕조국가로 회귀시켜 버렸다.

주인공 마크는 직장에서, 친구들에게 수없이 거짓말을 해댄다.
“나, 실은 백인이 아니고 검둥이야.”
“그래? 어쩐지…피부가 하얀 흑인이라…자네 정말 멋진 걸…”
“나, 실은 에스키모인이야.”
“와, 흰 피부의 흑인 에스키모라니! 난 자네를 친구로 둔 게 정말 자랑스러워!”

거짓말이라는 개념조차 모르는 그들은 마크가 되는대로 지껄이는 말을 전부 진실이라고 믿으며, 심지어 그의 고백이 경이롭고, 신기하기만 하다.

김정은이 주체 시스템의 3대 계승자로 등장하면서 27살짜리 예비 독재자를 신격화하기 위한 거짓말들이 마구잡이로 '발명'되고 있다.

"김정은 청년대장 동지는 세 살 때 수령님이 간자(簡字)로 쓴 한문 시조 '광명성찬가'를 정자로 바꿔 척척 써내려 갔대.“
”그래? 역시 어릴 때부터 대단한 분이셨구먼.“
“게다가 영어와 독어, 불어, 이태리어를 숙달한 천재래. 곧 일어, 중국어, 노어까지 7개를 마스터해 사용할 거라더군.”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의 친손자니까 그 정도는 당연하겠지?”

우리에게는 어이 없고 황당하기만 얘기들이지만 과연 북한 주민들에게도 그럴까?
말로야 들었겠지만, 그들은 직접 투표로 국가 지도자를 뽑아서 4~5년간 사용하고 용도 폐기한 후 새로 뽑는 진짜 민주주의 공화국을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때문에 그들은 일제 강점으로 사라진 조선 왕조의 법통을 이은 김씨 왕조가 계속되고 있다고 무의식중에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런 황당 거짓말들을 의심하기보다 믿어보는 게 공화국 인민으로 살아가기에 훨씬 편하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는 건지도.

황 선생은 자신이 설계한 주체 시스템의 끔찍한 왜곡과 세습독재의 폭압성을 고발하고, 그 괴물 정권을 함께 무너뜨리자고 끝없이 호소했다.

완벽한 생명체를 창조하려다 끔찍한 괴물을 만들고 만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마을사람들에게 괴물을 죽이는 일에 동참을 호소했던 심정이 꼭 이랬을 것이다.

하지만 망명 후 들어선 2개의 친북 정권과 좌파세력들로부터 '권력욕에 망령난 늙은이'라는 돌팔매를 맞으며, 안가에 숨어 살아야 했던 황장엽.

“아무 것도 한 거 없는 늙은이에게 웬 훈장이냐”는 좌파들에게 묻는다. 늬들이 황 선생의 입과 다리를 꽁꽁 묶어놓지 않았느냐고.

우리 정부가 그의 영전에 바친 국민훈장 무궁화장은 좌파들의 입방아에 못이겨 그의 호소를 애써 외면하려 했던 보수세력의 마지막 사죄의 표현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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