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희 칼럼]

[투데이코리아=한윤희 칼럼] 서민 중산층을 위한 정치를 외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다. 저마다 입만 열면 '서민 중산층'이다. 때로는 '가짜 서민정책' 따위를 들먹이며 상대측을 헐뜯기도 한다.

누가 더 낫고 못하고를 떠나 '서민정치' 경쟁은 공해 수준에 가깝다. 오래, 귀가 따갑도록 들어와서다. 도대체 부유층 특권층을 위해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일찍이 있었다는 말인가.

서민 중산층의 사전적 의미는 대략 이렇다. 서민= 아무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일반사람,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평범한 사람, 보통사람. 중산층=사회적으로 중간층에 분류되는 계층,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보면 프롤레타리아계급으로 보기에는 사유재산이 있고 자본가에는 못 미치는 계층, 화이트 칼라. 이럴 진대 원래 관직에 있었거나 선출직 공무원으로 출세한 사람 치고 서민 중산층은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노무현 정권 때의 재정경제부 통계자료 하나를 잠시 보자. 2005년 소득 기준으로 당시 재경부는 우리사회 구성원을 상류층 21.8%, 중산층 51.2%, 중하층 빈곤층 27%로 분류했다. 노 정권 출범 후 3년간 상류층 중산층은 각각 3% 줄었고 중하층은 2% 정도 늘었다는 내용도 거기 들어있었다.

지금 중산층과 중하층 빈곤층은 더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2 대 8 이론, 즉 상류층 20% 중산층을 포함한 나머지 상대적 빈곤층 80%의 인구분포는 잘해야 그대로거나 불균형 정도가 심화됐을 것이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서민 중산층을 끔찍히 챙기는 속셈은 물어보나마나다. 왜 그토록 집요하게 서민 중산층을 껴안으려는지는 굳이 정치인이 아니어도 IQ 두 자릿수만 넘어도 다 안다. 바꿔 말해 선거 때의 표에 집착하면 서민 중산층만 국민으로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민 중산층을 유별나게 들먹인 원조격 정치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지 싶다. 그는 오랜 야당 대표 시절부터 줄창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정치'를 역설했다. 우리 정치사에서 그의 공과를 보편타당한 관점에서 분석한 평가는 없어 보인다. '출중한 지도자'에서 '숨쉬는 것만 빼놓고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모두 거짓말'이라는 혹평에 이르기까지 아직은 편차가 심하다.

정신 바짝 안 차리면 또 코 베인다

한동안 좌파 집권을 반겼던 서민 중산층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이야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결코 적지 않은 유권자는 지금까지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김 전 대통령 퇴임과 더불어 그의 자택이 지하1층 지상2층(연면적 199평) 방8개 욕실 7개 거실 3개 창고 5개, 엘리베이터, 실내정원을 갖춘 저택으로 신축된 것에 박수치는 사람이 있을까. 충격적인 죽음의 방식에 영향받아 다소 누그러졌을 수 있겠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저택도 경우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선거에서 서민 중산층 표심을 잡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임은 상식이다. 그것이 정치에 뛰어든 사람마다 '서민 중산층 대변자'를 자처하는 배경이다. 그럴 때 부자들을 싸잡아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도 공식처럼 굳어졌다. 밑천 안들이고 민심을 쉬 들끓게 만드는 데 그만큼 매력적인 '정치명품'이 없기 때문이다.

남에게 돌을 던질 유자격자가 몇이나 될까만 '서민 중산층 정치'에서 문제는 시쳇말로 진정성이다. 대다수 유권자는 오래 전부터 서민 중산층을 향한 저질 정치쇼에 반복적으로 속아왔다. 유감스럽게도 유권자들은 '백성을 하늘처럼 모신다'는 거짓 선전선동을 경계하기보다 여전히 그런 데에 턱없이 쉽게 흥분하고 휘말려든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6년 봄 청와대 홈페이지에 '양극화 시한폭탄'이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글 한 편이 실린 적이 있다. 글은 정권 핵심부가 민심을 다독이며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감성을 극도로 자극해 계급투쟁을 조장했다. “소수의 승자만 존재하고 다수의 패자는 존재할 수 없는 비정한 카지노경제” “아프리카 밀림의 사자는 배가 부르면 더 사냥을 하지 않지만 승자독식의 카지노경제에서는 강자의 탐욕에 끝이 없다”…

정부 여당은 포퓰리즘정치 극복을

완장 차고 순결과 도덕을 독점한 것처럼 설치며 '살맛나는 세상'을 부르짖던 좌파 깔끔쟁이들이 타락한 상류층과 공생한 것은 참으로 경악할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과도 무관하지 않은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 스캔들에 이은, C&그룹 임병석 회장 수사과정을 조금이라도 눈여겨 보라. 의인인 줄 알았던 세도가들이 기업인과 유착해 검은돈 거래를 일삼았던 음흉한 뒷태가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두 사람의 경우는 시쳇말로 호박씨를 너무 까댄 위선의 새로운 일부일 뿐이다.

유권자가 현명하게 지켜볼 것은 또 있다. 돈 덜내게 하고 복지를 향상시키겠다거나 국방예산 군복무기간을 줄이면서 국방력은 강화하겠다는 식의 포퓰리즘정치는 다 함께 가난해지자는, 궁극적으로 나라를 거덜내자는 것과 다름없다. 분배정의를 모르거나 싫어할 사람이 세상에 있는가.

'서민 중산층 장사'에 정부 여당까지 뛰어든 현실은 딱하다. 지금의 주요 야당이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한지는 이전의 좌파 집권 10년 동안 체득하지 않았는가. 제대로 깨어있지 않으면 또 다시 낭패가 도둑같이 들이닥치기 마련이다.

모름지기 여권은 저급한 정치쇼에 같이 함몰돼 도토리 키재기를 할 것이 아니라 위대한 국민을 원숙하게 설복하는 데서 지지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품성, 고도의 전문성 도덕성이 그 필요충분조건임을 두 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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