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산 칼럼]

▲지난 8월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김효석 의원 출판기념회에 함께 참석한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투데이코리아=임요산 칼럼] 민주당에는 대표가 두 명이다. 손학규 당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지난 한 달 동안 손학규는 경선 승자가 누리는 컨벤션 효과(전당대회 후 지지율이 급상승 하는 현상)를 한껏 누렸다. 가파르게 올라간 지지율에 고무되어 정부에 대해 날 선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박지원은 지금 김대중 정권에서 '소통령'으로 군림하던 시절에 버금가는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정기국회에서 민주당 총사령관으로서 능란한 변설로 정국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두 사람의 시너지 효과로 민주당의 전투력은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이 같은 선순환이 오래도록 지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실질적인 민주당 리더 역할을 놓고 경쟁이 불가피하다. 국회 의석이 없는 손학규는 자칫 박지원의 화려한 개인기에 묻히기 십상이다.

손학규 대표가 계속하여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면 국회라는 정해진 틀을 뛰어 넘는 정치 의제를 계속하여 만들어내야 한다. 2년여의 시골 거사 생활을 끝내고 정계에 복귀하면서 손학규는 민주주의· 서민경제· 한반도평화를 정책 비전으로 들고 '소통과 공감의 리더십'을 제시했다.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의 눈으로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이념의 손학규, 실전의 박지원
대권을 지향하는 만큼 손학규의 스타일은 원론적이고 이념적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에서 호적을 파 온 그가 현실적으로 민주당에 뿌리내기기 위해서는 민주당의 종가라 할 호남의 도움이 절실하다. 손학규는 대표에 취임하자마자 노무현 전 대통령 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같은 무게의 정치적 상징을 호남에도 해야만 하는 게 그의 숙명이다.

박지원과의 관계 설정은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대권이 아니라 소권(小權)을 바라보는 박지원의 정치기술은 철저하게 실전적이다. 이념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서 김대중주의라는 신주(神主)만 쥐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는 민주당 내에서 권력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경험자다. 그의 정치목표는 야당의 킹 메이커가 되는 것이다. 호남의 영주라는 소권을 손에 쥐는 것이다.

깃발 든 손학규, 노련한 박지원
박지원은 중국 시진핑 국가 부주석이 이명박 정부를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으로 지목했다는 발언으로 궁지에 몰렸지만 끝내 굽히지 않았다. 곧바로 “6·25 참전은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시진핑의 황당 발언이 나왔다. 저런 말을 할 정도면 한반도 훼방꾼 발언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될 사람의 식견 부족과 함께 박지원의 저력이 인증된 장면이다.

반면 손학규는 정밀하지 못한 사실 인식과 세련되지 않은 언사로 몇 차례 약점을 드러냈다. 스마트하다는 인상을 주지 못했다. 4대강 사업과 관련된 발언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손학규는 배추값이 폭등하자 4대강 사업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변 배추 경작지가 4대강 사업 때문에 경작지가 사라져 배추 공급이 줄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가 강조하는 '국민의 눈'은 기후불순으로 고랭지 채소 작황이 나쁜 데 따른 일시적 가격 폭등임을 보았다.

당권 놓고 대결 피할 수 없어
또 “4대강 사업은 누가 봐도 대운하”라고 말했는데 "누가 봐도 대운하"는 아니다. “대운하 하지 않겠다”는 대통령 말을 믿는 사람이 더 많다. 다음 정권 때 갑문을 만들면 대운하가 된다는 주장은 물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 애써 만든 보를 헐고 갑문을 만들겠다는 걸 보고만 있겠는가. 한나라당이 재집권하더라도 후임자가 전임자의 치적으로 기록될 일에 팔을 걷을 리 없다.

'손학규는 과장법을 잘 쓰는 정치인'이라는 인상이 국민 속에 스며들고 있다. 이래서는 야전에 능한 박지원에게 허리 붙잡힐 틈을 주기 십상이다.

손학규의 대권 행보와 박지원의 소권 행보는 언젠가 서로 발등을 밟고 밟히는 일이 일어날 터다. 야당 정치인으로서 손학규의 정치적 운명은 박지원과의 치수 조정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손학규가 명실상부한 당 대표가 되려면 당 내부를 살피는 눈을 밝혀야 한다. 조직 장악력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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