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돌아온 탕아(?)', 민주당 이인제 의원

대선을 앞두고 각 당마다 탈당을 염두에 두고 있는 주자들에게 반면교사로 떠올리는 말이 있다.

소위 '이인제 학습효과' 다. 어쩌면 이 '이인제 학습효과'로 인해 이번 한나라당 경선룰을 둘러싸고 이명박-박근혜 두 유력주자가 그렇게 으르렁거렸으면서도 한 사람이 당을 깨고 나가는 최악의 경우만큼은 비껴간 게 아닌가 하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다.

하지만 정작 '이인제 학습 효과'의 주인공 이인제 의원은 이런 호사가들의 입담에 개의치 않고 국회에 처음 입성하던 초심으로 진지하게 정치를 바라보고 있다.

한 때 '대세론'으로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그가 지난 5년간 차가운 살얼음 판을 넘나드는 정치 역정을 거치고 다시 민주당으로 복당했다. 복잡한 범여권 통합 마당에서 어떤 역할을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향후 어떤 꿈을 안고 정치를 할지 들어봤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최근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당적을 자주 바꾼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내가 당적을 여덟 번 바꿨다는 얘기가 있는데 한번 따져보자. 통일민주당으로 처음 정치에 입문했고 이후 3당합당으로 민자당에 합류됐다. 그때 탈당하지 않은 것을 비난한다면 감수하겠다.

그러나 그것을 당적을 바꾼 것으로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아닌가? 그리고 민자당이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고 이후 한나라당으로 바꿨다. 이때까지 당적을 바꾼 것은 없지 않은가?

이후에 국민신당을 창당해서 나갔고 국민신당과 새천년민주당이 완전히 통합이 된 것이다. 이때까지는 당적을 바꾼 것이 없다. 민주당을 탈당해서 자민련으로 간 것은 당적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국중당에서 다시 민주당으로 복당한 것인데 어떻게 당적을 8번이나 바꿨다는 논리로 나를 몰아가는지 언론의 횡포라고 밖에 할 수 없다.

특히 민주당은 중도개혁주의를 표방한 최초 정당이었다. 여기에 창당 주역으로 참여했다. 내가 선대위원장으로 일할 때 전국정당으로 성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나라당과 양당 체제였다. 그러나 노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당이 분열하고 열린우리당이 창당했지만 지금은 정치적으로 파산했다.

민주당도 원내 교섭단체 조차 구성 못하는 상황이 됐다. 2002년에 노무현의 반미주의 급진좌파 노선을 추종할 수 없어 민주당을 떠났다. 당시 민주당이 표방하는 중도개혁주의에 반대해서 떠났던 게 아니다.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노선을 추종할 수 없어서 떠났던 것이다. 지금 다시 원점에 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갈라졌을 때 왜 곧바로 입당하지 않았나.

▲다시 돌아가는 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 (웃음) 한나라당의 일당독주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중도개혁 세력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위축됐지만 민주당이 중도개혁세력의 본산으로 중도개혁의 결집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국민중심당은 왜 나온 것인가?

▲국중당은 지역정당을 고수하며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겠다고 한다. 난 그러한 노선과 전략에 반대해 왔다. 사실 노선으로만 보면 국민중심당도 중도실용을 표방한다. 따라서 중도개혁 통합신당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순리다. 크게 보면 우리나라 정치가 양당체제로 안정적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국중당이 아직 여기에 동의하지 않아서 내가 먼저 참여한 것이다. 국중당도 언젠가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줄 것이라고 본다.

-심대평 대표가 충청 지역의 맹주로 지난 재보선에서 당당히 승리하기도 했다. 혹 국중당 내부에서 심 대표와의 경쟁관계 때문에 탈당한 것은 아닌가?

▲심대평 대표는 나의 경쟁 상대가 아니다. 더구나 요즘은 지역 맹주라는 개념이 없으니 그가 나와 경쟁상대라는 것은 더 말이 안 된다. 3김 시대에야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 지역 패권을 획득하고 맹주로 군림했던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3김의 마지막 작품 아닌가.

-당시 이 의원이 신한국당을 탈당하면서 지금의 한나라당의 정권창출이 실패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후 이른바 '이인제 학습효과'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지 않았나.

▲한나라당이 스스로 변명하기 위해, 정권 창출에 실패한 것을 자위하기 위해 나온 얘기다. 그것을 영남 패권 매체들이 그대로 전파한 것이다. 요즘 한나라당에서 경선룰을 가지고 시비하는데, 난 97년과 2002년에도 경선룰을 가지고 당에 시비한 적이 없다. 난 두 번 모두 깨끗이 승복한 사람이다.

내가 당시 이회창 후보보다 국민의 지지가 2배나 높았다. 그러나 당시 후진적 경선룰 때문에 당심을 잡은 이회창 후보가 됐다. 그러다가 일주일 만에 두 아들 때문에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했다. 그 사이 국민들로부터 (당에서) 나오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래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정말 맨주먹으로 탈당했다.

탈당한 뒤에도 내 지지율이 여전히 1위를 기록했다. 누군가 내 아내가 당시 YS 영부인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퍼뜨렸다. 그것이 바로 조중동을 비롯한 당시 언론이었다. 그 책임은 언젠가 반드시 심판 받게 될 것이다.

-대선 출마의사가 있나?

▲드디어 돌아올 곳을 찾아왔다. 2002년 불가피하게 민주당과 생이별 했고, 잠시 자민련에 몸을 담았고, 국민중심당 창당에 참여했다. 이제는 중도개혁 노선에 참여해야 할 시점이다. 건강한 양당제를 이룩하는 것이 대의라고 본다. 그것이 나의 정치적 목적이고 보람이기도 하다. 앞으로 중도주의 개혁노선이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며, 당원과 국민이 맡겨준다면 역할을 할 것이다.

-범여권 통합논의가 한창이다. 열린우리당과의 통합에 대한 생각은.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은 탈당해서 신당 만들고 있다. 그분들은 자연스럽게 민주당과 중도개혁세력 통합을 위해 얘기를 나눌 것이다.

그러나 당이 단위가 돼서 새로운 당을 건설하겠다는 것은 올바른 접근 아니다. 실패한 우리당 노선을 버리고 새로운 중도개혁 노선을 건설하고자 한다면 과감하게 당을 떠나서 새로운 통합정당에 참여해야 한다고 본다. 탈당하신 분들이 과도적인 결사체를 결성해 참여하는 것 까지야 어떻게 막겠나.

-정동영 전 의장이 민주당과의 통합을 타진해 온다면 받아주겠는가?

▲열린우리당의 연장으로 비춰지면 국민의 지지를 받기 힘들다. 특정인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서로 잘 조율하면 돌파구가 생길 것으로 본다. 과오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당론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칙은 그렇다.

-당에서 어떤 역할을 할 생각인가?

▲상임고문을 맡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면 무엇이든 열심히 찾아서 하려고 한다.

-이 의원의 경제관이 외부에 뚜렷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사실 97년에 나올 때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내 캐치프레이즈였다. 2002년에는 '일자리 만드는 대통령'이었다. 지금 일자리 만드는 대통령 뽑지 않고, 오히려 내쫓는 대통령을 뽑아서 요즘 일자리 없다.

-지역민들이 이 의원의 복당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나.

▲복당 자체에 대해서는 조용하다. 큰 바다로 나가서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는 것 같다.

-정계은퇴를 고려해 본 적은 없었는가?

▲그런 일은 없었다. 이루어야할 꿈이 있고, 힘이 있는 한 헌신할 것이다.

-조중동 언론에서 왜 이 의원을 비난한다고 보는가.

▲그들은 아직 권위주의 영남패권 시대에 얻은 기득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비록 나의 도전은 실패했지만,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당시 기득권에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괴로웠겠지만 언론은 지성이다. 그러면 안 된다. 이인제 때문에 호남정권, 김대중 좌파정권이 들어섰으니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하는가. 그렇다면 지금도 계속 영남 후예들이 (국가를) 경영해야 한다는 말이냐.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정상에서 갑자기 추락했다. 소회가 있다면.

▲'대세론'이라는 정상에서 옥살이라는 그야말로 바닥까지 쳐 봤다. 탄탄대로는 없더라.

-살면서 가장 기뻤던 일은 무엇인가.

▲나와 꼭 닮은 첫 딸이 태어났을 때 제일 기뻤다. 그리고 나는 매사에 긍정적으로 살고 있다. 매 순간이 기쁘고 보람있었다.

-정치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게 됐나.

▲어릴때부터 이 길로 자연스럽게 온 것 같다. 초등학교때 선생님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중학교 때는 군인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고등학교 때는 법률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법대를 지원했다. 그 때부터 정치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존경하는 정치인은 누구인가.

▲우리나라 정치의 역사가 얼마 안 되지만 난 늘 김구 선생을 정치적 사표로 삼고 있다. 그의 순수한 민족주의가 좋다.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3김을 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박 전 대통령은) 혁명적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 부작용으로 생긴 독재의 어두운 그림자를 민주주의 광명으로 바꾸는 일에 DJ YS 가 몸을 바쳤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처럼 성공적으로 성취한 나라가 어디 있는가. 그런 차원에서 그분들을 높이 평가한다. 물론 그 이면의 여러 가지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민주당으로 복당한 것이 이 의원의 정치적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가.

▲한나라당은 순도 높은 보수 정당으로 진화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정당은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중도주의 정당이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도 미국의 양당제처럼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정치로 진입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해 평가해 달라.

▲궁극적으로 우리 국민은 미래를 향해 더 선명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를 향해 개혁과 변화를 해 나가는 데 더 많은 지지를 보낸다고 생각한다. 중도개혁 정당이 꼭 승리할 것이다. 일반적 호감도 조사를 하면 한나라당 후보가 우세하지만, 그것은 이쪽이 공백상태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나라당은 건강한 혁신 정당으로 진화하지 못한 것이 최대 약점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런 약점은 선명히 드러날 것이다.

-문국현 사장은 어떻게 보나?

▲유한킴벌리 제품은 많이 쓰지만 그분은 잘 모른다. 전체적으로 보면 지금 자꾸 새 인물을 찾아 나서는 게 잘못된 접근 방법이다. 지금은 국민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인물을 못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당이라는 집권당이 무너진 뒤로 새로운 정치 결사체가 태동하지 않아 문제인 것이다.

과거에는 지역 패권이나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정당이 된다. 지금은 어떤 방향으로 정책을 세워서 국민을 잘 살게 할 것이라는 노선과 비전이 중요해 졌다. 정당이 만들어지면 그 안에서 후보를 만드는 것은 순식간이다. 두 달이면 충분하다. 문국현 사장도 뜻이 있으면 링에 오르면 된다. 창당이 먼저이고, 후보는 나중이다. 어디서 구세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듯 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진 이상운 기자 photo98@todaykorea.co.kr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