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정책과 포퓰리즘

[코리아투데이=국희도 칼럼] 오른쪽 왼쪽이라는 개념이 아직 확실하게 잡혀있지 않은 어린아이들은 좌우를 자주 헷갈린다.
그래서 어른들은 오른쪽은 '밥 먹는 손(이 있는 쪽)', 왼쪽은 '밥 안먹는 손'이라고 가르친다.
특히 왼손잡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좌우를 더 오래 헷갈리게 된다. 왜냐하면 '밥 먹는 손'을 기준하면 그 아이에겐 왼쪽은 오른쪽이고, 오른쪽은 왼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인들에게도 좌우 구분이 쉽지 않았던 사건이 있었다. 지난 봄 지방선거의 핫이슈였던 무상급식 문제가 그것이다. 급식비 못내는 아이들만 무상급식하자는 여당 주장에 “티가 나고 왕따를 당한다”며 “차라리 모두 공짜로 밥을 먹이자”고 치고 나오면서 야당이 톡톡히 재미를 본 선거공약이다.

그 '공짜로 밥먹이기' 선심공약의 폐해로 요즘 지자체와 교육청이 내년 예산 편성을 두고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 야당의원이 느닷없이 대정부질문에 나온 김황식 총리에게 “무상급식을 좌파정책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요즘 시끌시끌한 무상급식 예산 문제를 두고 지방선거 당시 여당 일부에서 야당의 무상급식을 '좌파정책'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던 일을 새 총리에게 환기시키려고 한 모양이다.

김 총리는 “좌파정책이라고는 보지 않지만, 포퓰리즘의 측면은 있다”며 “적어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무상으로 급식할 이유가 없다”고 답변했다. 김 총리는 '부자 노인 지하철 무료승차' 건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해왔다.

원론적으로 보자면 밥 먹는 문제야말로 좌우이데올로기를 가르는 분기점이다. 밥을 국가에서 먹여주느냐, 개인이 돈 주고 사먹어야 하느냐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갈라져 나왔다. 즉 밥으로 상징되는 각종 생필품을 국가로부터 배급받는 게 사회주의였고, 돈 없으면 굶어야 된다는 게 자본주의였다(과거형임을 주목하라).

하지만 사회주의와 계획경제는 비효율성으로 해서 인민들에게 나눠줄 밥이 모자라게 돼 모두 망했고(북한만 빼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이런 사회주의 철학의 장점을 일찍이 수용해서 밥 굶는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해 주는 수정전략으로 전 세계적 성공을 거두었다. 중국? 중국은 이제 껍데기만 사회주의(일당독재를 위해)고, 뼛속까지 자본주의 체제로 사상 전향했다는 건 잘 아시지 않는가!
그러니 "빈부 안 가리고" "무조건 다" "공평하게" "국가가 나서서" "공짜 밥 먹이자"는 게 좌빨식 정책이라고 지적하는 건 결코 틀린 주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전면 무상급식'을 두고 보수다, 진보다 하면서 이데올로기 따지기 전문가인 정치인들조차 이게 좌파정책인지, 우파정책인지, 밥 먹는 손인지, 밥 안 먹는 손인지 헷갈리게 만든 이슈였던 건 사실이다.
야당은 “부잣집 애들도 공짜로 먹여주겠다는데 무슨 좌빨이고 색깔론이냐? 그럼 부자나 가난한 집 애들이나 모두 돈 안내고 공짜로 초등학교 다니는 것도 좌빨 정책이냐?”라는 궤변으로 학부모들의 표를 쏠쏠하게 모은 것으로 안다.

요컨대 전면 무상급식은 복지의 문제이고, 자본주의 사회의 각종 복지제도는 본래가 좌파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즉 그동안 돈 주고 사먹어야 했던 일반적 재화인 '학교급식'을 가치재(merit goods: 모든 국민에게 일정 수준의 혜택이 돌아가게 정부가 직접 생산, 공급하는 재화)로 바꾸자는 전략이 야당의 '전면 무상급식' 공약이었다.

따지고 보면 '좌파적'이라고 무조건 나쁜 게 아니다. 어차피 자본주의가 꽃을 피워 부유한 선진국이 되면 시장경제 시스템 속에서 소외받는 빈곤층, 노동력이 상실된 노년층 등을 위해 각종 사회보장제도가 갖춰지게 마련이고, 이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는 가치재의 아이템도 하나둘씩 늘어나게 마련이다.

한데 우리 경제가 모든 아이들 공짜밥 먹이느라 돈을 써도 될 만큼 이미 선진국인가? 그건 절대 아니다. 결국 전면 무상급식 속칭 '부자급식'은 더 절실한 분야에 투자돼야 할 혈세와 교육 예산을 엉뚱한 데 쓰게 만든 '악성 좌파정책'이었으며, 지자체 일꾼과 교육감을 뽑는 선거 이슈를 온통 애들 밥 먹이는 문제로 단순화시켜 버린 원흉이었다.

솔직히 야당이 전면 무상급식을 들고 나오기 전까지 국가가 애들한테 점심을 공짜로 안 먹여줘서 우리 교육이 문제라고 생각한 학부모는 한명도 없었다. 과밀학급, 사교육비, 학교안전…이런 게 학부모들이 더 시급하게 개선을 요구해 온 우리 교육의 문제였다.

결국 문제는 좌파·우파 정책이냐가 아니다. 오히려 국가 경제의 생동감 또는 복지 실현을 위해 적절한 시기에 부자감세도, 학교 무상급식도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학부모들의 표좀 더 얻자고 국가의 복지 우선순위를 엉망진창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린 지난 봄선거의 '공짜밥 먹이기' 공약은 악성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이라는 김 총리의 비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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