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하지만 남자도 여자를 모르고 여자도 남자를 모른다.

이것은 성별이 달라 서로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어떤 것도 확신할 만큼 완벽한 모습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한 존재가 없듯 대상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분석 또한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잣대로 대상을 평가하고 이해하는 것은 그 존재의 색깔을 흐리는 것이 된다.

이외수의 신간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는 이에 착안한 책이다. 책 제목만 보고 '여자 보고서'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책은 여자뿐만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탐구를 하고 있고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 이외수 / 해냄 출판사/ 12,000원

이 책의 감성적인 글, 잔잔한 그림, 은은한 향기 뒤에는 각박한 이 시대와 변한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발생시킨 종교, 교육, 사회 제도에 대한 비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잔혹한 칼날로 꽂히지 않는다. 이는 이외수 작가의 필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밀화가 정태련의 그림 덕이 크다. 그의 그림이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에 손과 눈이 가도록 하게 한 일등공신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까. 야생화 전문화가 정태련의 그림은 책을 은은하게 만들어주고 향기까지 씌워줬다.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는 '모든 꽃들이 시가 되고 모든 여자들이 꽃이 된다'고 말한다. 모든 여자가 시가 된다고 한껏 띄워주던 이외수는 곧장 '모든 여자는 시가 될 수 있지만 정작 시가 되는 여자는 많지 않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하지만 오해하지는 말자.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변해버린 세상'이다. 세상이 여자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변하게 했다. 변해버린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알고 있었을까. 모든 여자가 시가 될 수 있음을.

'된장녀'라는 말이 온 세상을 덮었던 때가 있었다. 허영심에 가득 찬 여자들을 풍자하는 말로 이 시대 2~30대 여성들은 '된장녀'란 이름으로 뭇매를 맞았다.

이 책은 명품 소유욕과 허영으로 똘똘 뭉쳤다고 비난받는 것이 요즘 여자들이지만 그들 가슴속에는 美를 가질 수 없다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눈을 가진 여자들이지만 행여나 사랑받지 못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그녀들을 엄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참으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존재이다. 사랑에 목말라 누구나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사랑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남녀노소를 불문한 이치이다. 이 책은 여자의 그런 모습이 남자보다 좀 더 외면을 꾸미는데 치중하고 있을 뿐인 것을 깨우쳐준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여자뿐만이 아니라 사람과 삶에 대한 고찰이 드러나 있다. 삼십대 중반의 남자가 깨달음에 대한 질문을 하자 이외수가 '먼 산 조각구름은 거처가 없다네'라고 말한 것과 '세상에는 슬픔 없이 벙그는 꽃이 없고 아픔 없이 영그는 열매가 없다'는 말은 이외수의 생각을 잘 드러낸 말이다. 다소 난해하지만 인생에 대한 격외옹 이외수의 생각은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는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는 잊고 있었던 우리의 감성을 깨워준다. 이 책으로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따뜻함'과 '정신'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지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책이라기보다는 편지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 책은 너무 가볍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게 작가의 생각을 풀어 놓는다. 하지만 책 자체가 너무 잔잔한 나머지, 존재에 대한 거듭된 생각으로 소통하기를 바라는 그의 바람이 다소 약해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책장을 덮은 후에도 울림을 주는 것은 '멋'을 부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화려한 그림과 자극적인 글로 눈을 잡아두지 않고 정통성으로 승부하는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는 사람과 사회에 지친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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