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희 칼럼] 검찰 말마따나 수사로 말하라


[투데이코리아=한윤희 칼럼] 대검찰청 이인규 전 중앙수사부장은 최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차명계좌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심할 만한 계좌는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책임자였던 그는 지난 9월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는 야당 유력 정치인 두 사람을 거명한 뒤 그 부분 수사도 노 전 대통령 자살로 종결됐다고 전했다.

석달 전쯤 '노무현 차명계좌' 논란이 불거졌을 때 대검은 (노무현 관련 사건) 재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내사종결한 사건이고, 재수사에 나설 방침도 없다는 이야기였다. 문제의 차명계좌 발언으로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전후해 곤욕을 치렀던 시기의 일이다. 당시의 차명계좌 주장에 대해 검찰은 “사실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었다.

이달 중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의 노 전 대통령 묘에 인분을 갖다부은 정 모씨(62세)가 구속됐다. 범행사실이 무겁고 재범 우려가 높다는 것이 구속 사유였다. 범인은 경찰 조사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관련 재수사를 검찰총장에게 촉구하기 위해 구속을 각오했다고 진술했다.

그가 만들어 뿌린 '노무현, 그대 무덤에 똥물을 부으며' 제하의 유인물에는 이런 내용도 들어 있었다. “전교조, 전공노, 민주노총 같은 좌파세력들을 도와 청소년들을 세뇌시키고 국가 정체성을 혼돈에 빠뜨렸으며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

전직 대통령 묘 오물 투척이 놀랄 만한 사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극단적인 행위와 그 파장을 우려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그럼에도 당사자를 구속수사까지 할 사안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망자에게 거의 무조건 관대한 것이 국민정서이고, 바로 이 점을 의식해 입바른 말들을 하고 나서지 않아서이지 정씨의 분노에 심정적으로 공감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쿨하게' 말하면, 정씨의 범행에 박수 칠 것은 아니되 그의 생각과 말까지 도매금으로 매도할 일은 못된다. 10년 좌파통치에 대한 비분강개는 정씨 혼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좌파세력이 이념적으로 국가를 큰 혼란에 빠뜨렸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행위 자체를 두둔하지 않을 뿐이지 정씨의 충정만큼은 백번 이해하고 경의를 표하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을 게 분명하다.

그 같은 인식을 토대로 노무현 정권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망국을 우려한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좌파통치가 5년 더 연장되면 잘못된 역사의 수레바퀴를 영원히 되돌리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들이었다.

좌파 정권의 우선적 적폐는 인분을 투척한 정씨도 지적했듯이 이념‧ 정체성 혼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여파로 수많은 젊은이가 (짝퉁)진보 내지 좌파적 사고에 대해 여전히 허황된 우월의식을 갖고 있는 현실은 비극 중 비극이다. 일종의 지적 사치라고 할 이 불행은 다 함께 비상한 치유노력을 기울여도 오래 '현재진행형'이 계속될 것이다.

2007년 대선 참패로 좌파정권이 퇴진한 것은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간 '완장세력'을 준엄하게 심판한 결과였다. 불행하게도 많은 유권자는 분노에 가까운 투표권 행사로 좌파정권의 악몽을 청산했던 그 순간을 거의 까맣게 잊어버렸다. 좌파 정치권이 절치부심 '정권 탈환'을 염치없이 외치는 것은 바로 이 건망, 변덕을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진보‧좌파의 이른바 도덕적 우월성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그 허구가 입증됐다. 첫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여타 '조공'은 별개로 하고 현찰 4억5000만 달러를 몰래 갖다바친 것, 대통령 가족과 측근들의 줄이은 독직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IMF사태' 공과와 노벨평화상 수상과정도 재평가가 필요한 대목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가 국민장으로 치러지고 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경위도 그렇다.

노 전 대통령의 공과 또한 엄정하게 분별하는 것이 옳다. 일체의 감성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보면, 노 전 대통령 서거는 지극히 인간적인 죽음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죽어 사는 길을 선택했고, 방식까지 충격적인 자살을 택했던 것이다. 추종자들의 면밀한 주도와 냄비언론들의 저질 상업주의가 그때 온 나라를 감성과잉에 빠뜨렸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노 전 대통령 묘 역시 “작은 비석 하나 세워라”고 했던 유언과는 많이 차이난다.

노무현 수사 종결 후 보수 성향의 원로학자 한 분은 “범죄 용의자가 자살한 뒤 영웅으로 추앙받는 나라가 도대체 있느냐”고 비판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지만 그는 정신병자 취급 당하며 몰매를 맞았다.

노 전 대통령 묘 인분투척 사건 얼마 뒤 정치인 후원금 의혹 관련 압수수색 와중에서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검찰권력으로 이명박이 노무현을 죽였다. 이명박의 손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손이 됐다.”
노무현 생전 열린우리당 와해 무렵 한나라당을 탈당했던 그는 노 전 대통령과 '식물대통령' '보따리장수'로 서로를 험담했던 사이다.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으로 태풍을 몰고왔던 조현오 경찰청장은 인사청문회에서 “물의를 일으켜 송구하다” “그런 말을 다시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는 말만 동문서답하듯 되풀이했다. 정작 차명계좌 유무에 관해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사과방문차 11월 중 봉하마을을 찾을 계획이었으나 그쪽 반응이 시덥잖아 불발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노무현 차명계좌'의 진위는 고사하고 경찰청장이 자신의 발설 근거라도 댈 가능성조차 현재로서는 제로다. 어쨌거나 총수에까지 오른 경찰 최고위급 간부가 아무 근거도 없이 말을 지어내 헛소리를 했을 턱은 없다.

끝도 없이, 걸핏하면 공방이 벌어질 차명계좌 의혹을 명쾌하게 매듭짓는 것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 현명하지 않겠는가. 검찰은 수사로 말한다는 '법어'를 더 들먹일 필요가 없다. 좌고우면할 것 없이 냉철하게 재수사에 나서라는 주문이다. 차명계좌 소문에 펄쩍 뛰는 쪽에서 수사를 자청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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