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에서 보행자와 운전자가 지켜야 할 것이 있듯이, 학교 공원 대중교통 정부기관 등 우리사회 내 공공시설에는 다양한 규칙(제도)이 존재한다.

보행자와 운전자가 신호체계를 무시하고 마음먹은 대로 판단하고 움직이면 도로 질서가 무너지는 등 규칙의 부재는 공동체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다면 공동체의 안녕(安寧)을 담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규칙을 만들고 바꾸기만 하면 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정말 그럴까? 현실은 어떤가. 규칙이 있어도 편·불법 등이 판을 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지 않았나.

공동체를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하긴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민주사회에서 구축된 규칙에는 반드시 사회적 '권위'가 녹아 있어야 하고 유지돼야 한다.

정부의 정책이 있으면 국민에게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중국 속담 처럼 사회적 권위 없는 규칙은 실효성이 낮아져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며칠 전 몰상식한 정치인들로 인해 우리 국회가 처참하게 유린됐다. 유독 올 해만 그렇지 않았다. 매년 반복되는 폭력 행태가 누적되다보니 이제는 현상의 진단을 사회적 수준으로 넓혀야 되지 않을까 싶다.

민의(民意)의 전당(全黨)이라 불리는 국회는 어떤 곳인가? 국민(유권자)의 총제적 뜻이 모여 만들어진 가장 권위있는 국가 기관이자 국민을 대변하는 기관이요 국민의 물질적 도움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다. 따라서 이것에 소유권은 국민에게 있다.

국회가 유린됐다고 하는 것은 국민의 권위와 권리가 침해된 것과 다름 아니다. 그런데 국민은 분노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되찾아와 권위를 세우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다만 소극적으로 냉소적 반응만 보여 왔을 뿐이다. 국민의 국회가 권위가 없으니 정치인들이 난동을 벌이는 것은 필연적 결과다.

이번 폭력 사태에 각 정당 초선의원들이 앞장 섰다고 하는데, 2012년 총선 때 공천을 받으려면 지도부에 눈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라는 일각의 시각은 일리있는 분석이다.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오만한 생각으로 읽히지만, 한편으로는 국민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깃발만 꽃고 감언이설(甘言利說)로 당선 되는 사례가 비일비재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민(유권자)에게 있다. 국민의 권위가 제대로 서게돼 감시의 눈초리가 매서워 지게 되면 공천을 받기 위한 지도부에 대한 정치꾼들의 애정공세는 물론 국회 출입도 차단할 수 있다. 2012년 총선이 1년4개월여 남았다. 각성을 통한 사회적 울림이 그 어느떄보다 절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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