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희칼럼]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13일 오전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투데이코리아=한윤희 칼럼] 한나라당의 새해 예산안 강행처리 후 정치가 한층 거칠어졌다. 하긴 국민 편에서 우리 정치가 딱히 탐탁했던 적은 없다. 생업에 바쁜 대다수 국민은 이번에도 별무관심이다. 정말이지 시거든 떫지나 말아야지, 오래 일상사처럼 봐온 '그들만의 잔치'를 시니컬하게 구경하고 있을 뿐이다.

민주당이 서울광장에서 시작한 '날치기 원천무효 비상시국대회'는 비장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 이름하여 '100시간 농성'이 끝나면 14일 인천을 시작으로 전국 주요지역을 순회하며 '규탄대회'를 이어간다는 이야기다. '비상시국 장외투쟁'에는 민주노동당을 비롯해 몇몇 다른 야당도 가세해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그들은 국회와 야당, 국민을 협박하고 공포정치를 하려는 게 '날치기 예산통과'의 진짜 의도라고 목청을 높인다. 모든 것은 오직 '네 탓'이다. 물맷돌 셋으로 단숨에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의 기개까지 자못 충만하다. 그러면서 2012년 총선거와 대통령선거 승리를 다짐하고 '국민 여러분'의 아낌없는 지지를 호소한다. 당장 같아서는 이를 과욕이라고만 평가절하할 일이 아닌 듯도 하다.

스스로에 한없이 관대한 여권의 무신경

이렇게 된 데는 제 몸과 집구석부터 가다듬지 못한 여권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이른바 템플스테이 예산을 빼먹어 불교계의 반발을 자초한 것은 졸속 처리의 대표사례다. 아이들 급식비와 보육비가 '형님예산' '김윤옥 예산' 때문에 날라갔다는 식의 덤터기를 뒤집어쓴 것도 맥락이 같다. 이런 판에 “왜곡하지 말라”는 해명이 힘을 받을 턱이 없다.

우리 정치현실에서 예산안 강행처리를 꼭 악으로만 치부할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생각해 볼 여지가 없지 않다.
바꿔 말해, 허술한 과정이 문제이지 국정을 책임진 쪽 입장에서는 단호한 일처리가 때때로 박수 받을 수 있다. 지금도 그렇거니와, 민주주의와 법치를 외쳐댄 무리일수록 더 악질적으로 반민주, 탈법에 앞장섰던 예는 비일비재하다.

이명박 정권의 경우 10년 좌파집권기를 거쳐 출범했으니 풍파가 더할 법하다.
좌파통치 잔재를 뿌리째 청산하는 데는 몇 십년이 걸리지 않겠느냐는 말들은 진작부터 있어온 터다. 그들을 답습해 거의 매사를 포퓰리즘으로 풀어가면 잠시 태평성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것이 정답이 아님은 10년만의 좌파시대 폐막이 말없이 설명해준다.

딱하게도, 이명박 정권은 부지런히 일을 하면서도 국정수행이 정교하지 못한 게 문제다.
한 방에 털어먹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출범 무렵부터 스스로 파행을 불러들인 인사 난맥은 어지간한 일이 생길 때마다 공든 탑을 깡그리 무너뜨렸다.
이를테면 병역과 빈부에 관한 국민정서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현역 미필자와 부자 등용을 절제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작금의 상황은 여권이 스스로에 대해 왜 한없이 엄격해야 하는지 다시 말해주고 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의 행태 또한 뻑하면 들먹이는 국민의 뜻이 제대로 결집된 것은 물론 아니다. 엄동설한에 자청해서 벌이는 그들의 고행이 무릇 애국, 우국충정에서일 것이라는 시각은 단언컨대 많지 않다. 그것은 또다른 그들만의 잔치다.

또다른 '그들만의 잔치' 야권 장외투쟁

낯이 있어야지,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라의 근간까지 뒤흔들어 국난을 몰고왔던 집단이 그들 말고 있는가.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열린우리당에 기대어 한껏 권세를 누리고서 열린당을 박차고 나와 신분세탁을 거듭했던 자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열린당을 만든 노무현을 비열하게 배반하고서 그의 죽음에 경쟁적으로 편승했던 정치패륜아들은 또 어디 가 있는가.

그즈음 자신을 한나라당 자체라고까지 큰 소리쳤던 손학규는 여태 변절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 이래서는 제아무리 풍찬노숙이 고단한들 진정한 감동을 주지 못한다. 더불어, 그렇고 그런 서울광장 비상투쟁에 수두룩하게 합류한 좌파시대의 부패정치 전과자, 정책실패 책임자들도 정말 염치 없기는 한 가지다.

국민에게 위안을 주기보다 정치혐오, 정치피로증을 가중시키는 쇼는 애국이라고 할 수 없다. 진정한 애국은 따로 있다. 연평도 피격 후 오히려 늘어난 해병대 자원입대가 우선 그렇다. 그리고 엄동설한에 핏발 선 눈으로 밤낮을 잊고 일하는 사람과 노심초사 그들의 생계를 책임진 사람들을 따라갈 애국자는 없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국토방위에 진력하는 장병들, 연평도 피격 이후 국가안보의 중요성과 북한 통치집단을 냉철하게 인식하기 시작한 청년들의 눈빛을 통해서도 새로운 희망을 본다. 민족이니 국민이니 민주니 평화니 하는 말을 그들은 결코 허접스레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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