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개혁 성향 초선 의원들의 모임인 '민본21'이 중심이 돼 재선, 3선 의원들이 함께 만든 '국회 바로세우기를 다짐하는 국회의원' 모임이 16일 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국회 정론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투데이코리아=임요산 칼럼]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 22명이 16일 “의원직을 걸고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예산안 강행처리에 동참해 국회를 폭력으로 얼룩지게 만든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음을 반성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는 2년2개월 남았고, 다음 총선은 1년4개월 뒤다. 민심이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수도권 지역 의원들이 많이 참여했다니 이들이 걱정하는 바를 알 만하다.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는 옛시조 한 구절이 떠오른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님을 잘 알 터이다.

다음 총선 의식한 포퓰리즘 의심

이들은 '국회 바로 세우기를 다짐하는 국회의원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성명을 냈는데 낯이 간지럽지 않은지 모르겠다. 지난 폭력국회 현장 사진을 보면 이들의 얼굴은 곳곳에 박혀 있다.

여야 모두 돌격대 역할은 초·재선의원들 몫이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지도부에 강한 인상을 남겨야 다음 공천을 받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해 몸을 사리지 않는다. 그러던 이들이 갑자기 간디의 제자가 된다?

민심은 처음에는 예산안 강행처리를 나무라는 게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폭력을 선도한 야당을 지탄하는 것이었다. 민주당이 거리로 뛰쳐나갔어도 행인 대부분이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그러나 예산안 처리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템플 스테이 예산, 영아 육아수당 등 인화물질에 불이 붙었다. 야당의 '형님 예산' 선전 공세는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소장파 의원들까지 철부지 집단행동을 벌이니 한나라당 1년 농사가 망가질 판이다.

밀가루 덮어 쓴다고 색깔 안 변해

폭력국회를 막으려면 폭력 발생의 원인부터 따져야 한다. 의회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 위에서 성립한다. 그러나 모든 걸 다수결로 풀 수는 없다. 대화와 타협이 우선이고 다수결은 최후의 방법으로 사용될 때 설득력을 갖는다.

다수가 소수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소수가 다수에 폭력으로 겁박하는 것은 더욱 안 된다. 야당은 4대강 사업이 이미 50% 이상 진척됐는데도 총사업비 9조6000억원의 70%나 되는 6조7000억원을 삭감하자고 주장했다. 정상적인 협상이 불가능한 억지다. 다수결 원칙은 이럴 때 필요하다.

야당은 다수결을 방해하려고 예산안 심의를 거부하고 폭력을 사용해 표결을 방해했다. 회기 내 예산안 처리는 국회의 의무다. 한나라당이 야당의 정치공세와 지연작전에 끌려 다녔더라면 여론의 질타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한나라당 소장파의 어설픈 양심선언은 여권 분열을 바라는 민주당의 기세만 올려주는 꼴이다.

소수의 억지 막는 다수결 원칙

성명 참여자 중 한 명인 남경필 의원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으로서 한·미 FTA와 관련해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비준동의안을 상정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설령 한·미 FTA가 상임위를 통과하더라도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171석 중 성명 참가자 23명이 빠지면 한나라당 단독 본회의를 열더라도 의결에 필요한 과반 150석에 이르지 못한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17일 한국과 미국 중국 EU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모두 발효될 경우 첫해 일본의 수출액이 112억 달러(13조원)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을 보도했다. 이렇게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FTA를 여당의원이 발목을 잡겠다니 이들이 한나라당 의원인가, 당(唐)나라당 의원인가.

고민 돼도 당론 따르는 게 정도

국회가 다수의 힘을 믿고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번 국회처럼 불가피하게 수긍해야 할 경우도 있는 법이다. 고고한 도덕론을 펴며 당론을 무시하고 개인 플레이를 하겠다는 건 야당의 박수는 받을 수 있겠지만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부족하다. 소신과 다르더라도 고뇌에 찬 표정으로 당론을 따르는 게 좀 더 정치인다워 보이고 보는 이에게 약간의 감동이라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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