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중국을 방문한 어떤 선비가 아주 이상한 벌레를 보고 붓대롱속에 넣어 귀국하게 됐다.그는 국경검문소에서 한 병사가 그 붓대에 대해 물어보자, 그 선비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대(빈대롱)요"라고 말하면서 그 벌레 이름이 빈대로 붙여졌다는 일화가 내려오고 있다.

빈대는 낮엔 숨어있다가 밤에만 나타나 사람의 피를 빠는 흡혈곤충으로 예전 사람들에겐 참으로 골치아픈 존재였다. 오죽했으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현상이 나왔다. 폭행 근절(?)이라는 빈대를 잡기위해 대기업 집단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쯤이면 어떤 사건을 말하는지 금방 알리라. 한화 김승연 회장이 남대문 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된지 열흘이 지났다.필자는 한화 김승연 회장을 옹호하려는게 아니다. 분명 폭행 부분에 대해선 드러난 만큼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사회 지도층 인사로서 섣불리 폭행한 것에 대해 비난받아도 김회장은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다만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김회장의 잘잘못을 따지자는게 아니다. 사안에 비해 과도한 언론의 대응과 이로 인해 정상참작 여지가 거의 없이 형량이 뻔한 판결로 몰아가고 있는 사실상의 인민재판을 거론하고 싶은 것이다.

일단 가장 큰 문제점은 김회장의 폭행은 아들의 눈주위가 10여바늘 꿰맬 정도로 크게 다쳐서 들어온데 대한 우발적 사건이었는데도 언론들의 집중포화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게다가 상대는 사실상 조폭에 가까운 유흥업소 종업원들로 드러나고 있는데도 말이다.즉 김회장의 행동은 형사소송법에서 말하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는 사건이며 오죽했으면 김성호 법무부 장관이 지난 15일 이화여대 강연에서 "부정(父情)을 봤을때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다"고 말했을까.

또 하나는 김회장의 폭행이 형법상 특수폭행죄에 해당돼 합의를 해도 소 취하가 안되지만 한국의 법현실에선 서로 합의하면 '없었던 일'로 되는 현실에서 언론의 집중보도로 인해 김회장은 이러한 가능성을 봉쇄당했다는 것이다. 이래서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이 사실상 재판을 해버렸다는 얘기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상 피의자의 권리를 철저히 배제하는 결과가 됐다는 것이다.김회장의 구속은 재계순위 10위권의 한화그룹을 위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어려움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최고경영자의 갑작스러운 공백은 필연적으로 비즈니스 일정상 많은 문제점이 야기될 것이며 이는 곧 기업 생존의 밑바탕인 신뢰를 잃게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화그룹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대형 글로벌 사업에 비상이 걸렸다. 이달 말 김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현지 업체와의 석유화학공장 합작 건설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사업 차질 또는 사업 취소 가능성이 높아졌다.대외적으로 신뢰를 잃은 기업은 아름아름 무너져갈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익형량을 따졌을때 김회장의 구속은 법의 현실에선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지만 언론의 재판에 의해 경찰과 검찰은 꼭두각시처럼 일을 처리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지난 92년 살인범 김부민도 21년전 성폭행이라는 정상참작 사유로 인해 집행유예로 풀려났던게 법의 현실인데도 김회장은 옴짝달싹도 할수 없게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권력형 부패나 분식회계가 아닌, 사인간 폭행사건에서 김회장은 父情으로 인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제대로 못한 대가를 너무도 혹독히 치르고 있다.불법행위에 대한 유야무야는 절대 안되지만 재벌총수라고 해서 법의 한도를 넘는 처벌 역시 곤란하다는 것이다.

임경오 / 투데이코리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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