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난으로 인한 인민생활의 어려움 증대와 대중국 경제 예속화 심화

[투데이코리아=박대웅 기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28일 일본 도교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중국 남부의 한 도시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김정남은 "아버지(김정일)는 3대 세습을 반대했지만, 국가 체제 안정을 위해 어쩔수 없이 세습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정남은 "중국의 모택동 주석조차 세습하지 않았다"며 "사회주의에 어울리지 않고, 아버지(김정일)도 반대였다"고 전했다. 또한 김정남은 "(후계체제는) 국가 체제 안정을 위한 것으로 이해한다. 북한의 불안정은 주변의 불안으로 연결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에서 김정남은 "때때로 (아버지에게) 직접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며 "(김정일을 보좌하는 김경희나 장성택과도) 좋은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암살미수설, 망명설에 대해 "근거 없는 소문이다. 위협을 느낀적 없다"며 일축했다. 계속해서 북한 주민의 생활 실태에 대해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생활 수준이 향상됐으면 한다"며 "북이 안정되고 경제 회복이 달성되길 바란다. 동생(김정은)에 대한 순수한 바람이지 도전한다거나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북한에게 있어 2011년은 '2012 강성대국 대문을 여는 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한 매우 중요한 한해다. 하지만 북한은 내외적으로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내적으로는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이중권력 등장으로 인한 권력분점의 시대라는 것과 후계자 김정은의 정치 세력 및 인민의 지지가 강하지 못 하다는 점, 식량난 등 경제파탄 등을 들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경색된 남북관계와 전세계적 대북압박 기조 그리고 지나친 중국 예속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 이후 악화일로를 걷던 남북관계는 미중정상회담 이후 대화 국면으로 새로운 기로에 서있다. 또한 북한 내부적으로도 오는 2월16일 김정일 생일과 '태양절'이라 부르는 4월15일 김일성 생일 등 내부 결속을 다져야 할 행사들이 즐비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진 김정남 인터뷰는 눈여겨 볼 만하다. 중요한 시기에 터져나온 김정남의 인터뷰를 심층적으로 해부해 봤다.

# 김정일 정말 3대 세습을 반대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8년 8월, 와병 발생 전까지 크게 4가지의 이유로 3대 세습을 반대했다. 첫번째 이유는 북한이 처한 대내외 상황과 여건이 권력승계를 논할 적기가 아니다라는 인식이다. 북한은 경제와 인민생활, 대외관계 등 제반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렵고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후계자를 내세우면 인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두번째로 김정일 자신의 권력 누수를 우려해서다.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김정일로서는 그 누구보다 권력승계에 따른 파급효과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이복형제들 간의 갈등에 대한 염려이다. 김정남의 인터뷰가 심도있게 다뤄지는 것도 이 같은 현실적 우려에 기반하고 있다. 끝으로 후계자로 의중에 두었던 김정은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판단에서 김정일은 3대 세습을 반대해 왔다.

하지만 2008년 8월 발생한 뇌혈관 질환은 김정일로 하여금 후계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여기에 권력층도 김정일 건강이상이 체제와 자신들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조속한 후계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절감한 계기가 됐다. 이 같은 필요성에 의해 1958년, 1966년에 이어 44년 만인 2010년 9월28일 제3차 당대표자회의가 열렸다. 당대표자 회의를 통해 북한은 김정일 체제를 보다 더 공고히 하고, 이를 기반으로 김정은 후계체제를 공고히 해나가는 토대를 다졌다. 이날 이후 북한은 현대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3대 세습'을 완성했다.

# 북한주민 '쌀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 가능할까?

김정일-정은 부자는 3대세습체제 구축후 줄곧 '쌀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이라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바탕으로 인민생활 향상을 공언했다. 과연 가능할까? 한국농촌진흥청의 보고에 따르면 2009년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411만 톤으로 2008년에 비해 20만 톤 감소했다. 2010년에도 북한이 중국 등지에서 수입한 식량이 30만 톤 미만일 것으로 관측된다. 더욱이 한국을 비롯 국제사회의 식량 지원량 역시 10만톤 미만이어서 북한은 올해 지난해 최소 식량 소요량 522만 톤 기준 70~80만 톤의 식량 부족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단행한 화폐개혁으로 북한주민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내화와 외화를 상당 수준 몰수당하면서 소득이 대폭 감소했다. 여기에 물가와 환율 폭등은 민심 이반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가운데 지난해 11월 연평도 도발로 북한 내 전시 분위기 확산까지 겹쳐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비단 쌀값만 놓고 보면 2009년 11월과 연평도 도발을 자행한 2010년 11월말 쌀값은 신권 기준으로 30~40배 급등했다. 더욱이 2010년 홍수 피해와 그로인한 일조부족 등 기상악화 및 비료 부족 등 여러 악재들이 겹쳐 전년도 비해 올해 식량 생산량이 20~30만 톤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화폐개혁으로 상업유통부문 역시 침체할 것으로 보여 김정남의 기대와 달리 북한의 대내 경제는 침체 일로를 걸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북한의 대외 경제는 어떻까? 2010년 북한의 대외경제정책 기조는 신년공동사설에서 밝힌 바대로 "대외시장을 확대하고 대외무역 활동을 적극 벌여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이바지한다"였다. 남북교역은 수치상 꽤 증가했다. 2010년 1~11월중 남북교역 총액은 5.24조치(천안함 폭침으로 북한의 식량지원 등 대북지원을 전면 중단하는 조치)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의 생산증가로 13억2226만 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62.8% 증가했다. 반면 5.24조치 영향으로 위탁가공교역과 일반교역은 17.7%와 47.6% 감소했다. 한국 정부의 5.24조치로 북한의 외화수입은 직접적으로 2억5000만~3억 달러 손해를 입었다.

남북교역에 어려움을 느낀 북한은 북중교역으로 적자폭 회복에 나섰다. 북한이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적자폭을 얼마나 메웠는지 확실치 않다. 2010년 1~11월중 대중수출이 10억 5000만 달러로 전년동기에 비해 43% 증가했지만 남한으로부터의 현금수입 상실분(대략 3억 달러 미만)을 모두 다 보전했을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북중교역이 남북 경협 중단이 가져다줄 북한 경제의 충격을 완화해 준 것만은 사실이다. 북한은 최근 중국과 잇따라 국경지역 개발에 합의함으로써 대중국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김일성 탄생 100주년과 김정일 고희(70번째 생일)를 맞이하는 2012년,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북한은 김정남의 바람과 달리 '쌀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으로 대표되는 인민생활 증대는 식량난에 의해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외시장 확대는 점차 대중국 의존성 증가로 중국 경제에 종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남이 인터뷰를 통해 밝힌 '꿈'은 점점 묘연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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