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소련붕괴 정책, 전환점에 들어선 남북관계에 '강한 대한민국'이 답이다

▲ 美 우정국은 로널드 레이건 前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를 도안으로 한 '포에버(Forver)' 우표를 발행했다.

[투데이코리아=박대웅 기자] 지난 2월6일, 미국 전역은 가장 미국다운 두 가지 이벤트에 열광했다. 올해로 45번째를 맞이하는 미국 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과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 전역은 '강력한 미국' '1등 국가 미국'을 목청 높여 주창한 레이건 전 대통령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었다.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 마저도 '롤 모델'로 레이건 전 대통령을 꼽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휴가때 레이건 전기를 읽고 레이건 행정부 당시 백악관 참모를 만나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레이건은 취임 당시 12.5%의 인플레와 7.5%의 실업률 등을 물려받았다. 취임후 레이건은 널리 조언을 구하고 탁월한 참모들의 말을 존중하며 경제를 살려냈다. 또한 1933년 이후 지속돼온 정부 주도의 복지정책의 틀도 바꿔놨다.

또한 핵무기의 점진적 감축이 아닌 전면적 폐기를 밀어 붙이며 군축 레이스를 주도했다. 특히 소련과는 힘의 균형을 추구하는 대신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규정하고 지속적으로 압박해 냉전을 종식시켰다. 덕분에 레이건은 취임때보다 이임때 인기가 더 높은 대통령으로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에 이어 미국민의 뇌리에 각인됐다.

남북은 8일 오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남북 실무자 회담을 가졌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북한은 남측에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종용하고 있다.

남북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시작으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및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마침내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역사적 방북길에 올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6.15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하지만 10년여가 지나 북한은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연평도를 불바다로 만들며 남북 신뢰관계를 깨트렸다. 이런 상황에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소련 붕괴정책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볼만하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대 소련 정책의 기조로 공존이 아닌 붕괴를 선택했다. 레이건은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를 '악'으로 규정하고 군사력이라는 '방패'와 인권과 자유라는 '창'을 들고 공산주의 진영과의 타협을 일체 거부했다.

또한 공산주의자들과의 싸움을 선과 악의 싸움으로 규정하고 도덕적 우의에 바탕을 둔 이념으로 대소 붕괴정책에 합리성을 부여했다. 특히 레이건 행정부는 소련의 급소를 제대로 공격했다.

당시 소련의 급소는 폴란드였다. 미국은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긴밀하게 공조하며 폴란드 자유노조운동을 적극 지원함으로서 소련이 자유노조운동을 탄압하고 있다고 압박했다.

또한 레이건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잡고 1985년 가을 당시 배럴당 30달러 하던 기름값을 이듬해 4월 10달러까지 폭락시켰다. 1970년대 고유가의 득을 보며 경제체제 개혁 없이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 뛰어든 소련 경제는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됐다. 당시 기름값 폭락 공작을 이끌었던 CIA 윌리엄 캐시 부장은 "석유값이 배럴당 1달러 떨어지면 소련은 년간 10억달러 손해를 보았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 역시 인권탄압과 달러 의존 경제로 당시 소련과 흡사하다. 납북자, 탈북자, 국군포로, 강제수용소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또한 북한은 지난해 단행한 화폐개혁으로 자국 화폐보다 달러나 위안화 위주의 경제체제가 구축됐다. 여기에다 탈북자들의 북한 송금액이 연간 1000만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달러야말로 궁핍한 북한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젖줄인 것이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공산권 붕괴의 공을 레이건에게 돌렸다. 대처는 레이건 대통령이 우직하게 밀어 붙인 '별들의 전쟁 계획'(SDI :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이 소련제국의 붕괴를 가져온 결정적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SDI란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할 수 있는 기술과 방어망을 지칭하는 용어다. 레이건 행정부는 모든 기술력을 총동원해 미사일 방어망 구축으로 소련을 압박했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미사일 방어기술을 뚫을 수 있는 새 미사일을 배치해야 했지만 당시 기술력과 경제난으로는 그 같은 일을 감당할 수없는 여건이었다. 미국 과학자들 역시 레이건이 주창한 SDI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지만 소련의 약점을 안 레이건은 뚝심있게 SDI 정책을 밀고 나갔다.

동시에 레이건 행정부는 소련과의 군비경쟁에 몰두했다. 1979년 미국 국방예산은 1193억 달러였다. 레이건 집권 후인 1983년에는 2096억달러로 약 2배 증가했다. 소련 경제는 지나친 군비 경쟁으로 더욱 파탄으로 치달았다. 레이건은 자신의 강점으로 소련의 아킬레스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남한과 북한의 경제 규모 역시 단순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남한 정부 역시 경제적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향후 대북관계에서 강점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이 같은 전방위 압박은 북한을 자극해 북한의 핵개발을 가속화시킬 것이라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비난에 대한 해답 역시 레이건의 소련붕괴 정책 속에 있다.

레이건은 동구 공산국가에 중거리 핵탄두 미사일을 배치하는 소련을 향해 "미국도 서유럽 국가에 중거리 핵탄두 미사일 퍼싱-2형을 배치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 발언 이후 소련은 물론 미국 내 진보파 및 언론은 극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레이건은 독일 통일을 이끈 당시 헬무트 콜 총리와 대처 영국 수상을 설득해 1984년 퍼싱-2 미사일을 서유럽에 배치했다.

레이건은 소련을 향해 "동구 공산국가에 설치한 중거리 미사일을 철거하면 미국도 서유럽에 배치한 미사일을 철거하겠다"고 제안했다. 결국 소련은 1987년 모든 중거리 핵탄두 미사일을 전세계적으로 폐기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이 같은 논리는 북핵문제에도 적용 가능하다. 일단 미국에 전술적 핵무기 배치를 요구할 수 있다. 만약 미국이 거부하면 남한 역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통해 합법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방법이 있다. 다만 레이건과 같이 "핵무기로 공격 당하지 않는 이상 먼저 공격하지 않겠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남북한 핵무장은 물론 일본과 대만의 핵무장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동북아의 핵무장에 가장 큰 위협을 느낄 국가는 바로 중국이다. 상황 타계를 위해 중국은 앞장서서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나설 것이며 북한의 변화를 위한 의미있는 행동들을 이어질 갈 것으로 보인다.

필자 역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번영을 바란다. 하지만 한반도의 안보 상황과 남북관계는 북한의 진정성 없는 태도와 말장난으로 휴지조각이 되기 일쑤다. 분단 60여년을 맞이하는 현재, 6.25 이후 최대의 무력 도발인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 등 잇따른 북의 무력 도발과 '강력한 미국'을 주창했던 레이건에 대한 향수에 젖어든 미국. 레이건의 대 소련붕괴 정책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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