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난 수준 지능형 범죄수법까지 등장도

절도에 대해서 엄격한 처벌을 했던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비난을 받지 않았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책'에 관해서였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을 봐도 책을 훔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관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책을 훔치는 행위는 절도행위다. '얼마나 책을 읽고 싶었으면 책을 훔쳤을까'라는 동정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명백한 범죄행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책 도둑'이 범죄자로 인식된 것은 자본주의라는 사회적 배경도 있지만, 책 도난 수준이 범죄수준까지 올라간 것이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훔치는 방법도 가지가지, 지능형 범죄 늘어

대형서점의 독점으로 서점계의 양극화가 극심한 요즘, 책 도둑은 중소서점을 두 번 죽이는 존재다. 책 한권을 팔았을 때 서점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30% 정도. 책 한권을 도난당했을 때 3~4권을 팔아 생기는 이익을 손해 보는 꼴이다. 중소서점의 경우 절도 현장을 잡는 것이 어렵고 재고량을 파악하지 않는 이상 손해액을 추산해볼 수 없기 때문에 그 피해액을 가늠할 수 없다.

책 도둑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옷이나 가방 따위에 책을 숨기는 경우다. 주로 감지센서가 없는 규모가 작은 서점에서 이용되는 방법으로, 직원 눈에 띄지 않으면 적발 위험이 거의 없다. 때문에 CCTV나 보안직원이 있지 않은 서점은 이런 방법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책 뒷면에 있는 바코드를 오려내 원문을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요즘 규모가 있는 대부분의 서점은 감시센서가 있기 때문에 옷과 가방에 책을 숨기는 방법은 적발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최근 책 도둑들은 바코드를 칼이나 가위 등으로 오려내 책을 훔치고 있다. 감시센서는 바코드로 도난 여부를 구별하기 때문에 바코드를 제거하면 센서가 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책을 훔치지 않더라도 PDA 등으로 원문을 그대로 찍거나, 필요한 부분을 찢는 경우도 절도행위에 속한다. 이런 방법은 주로 미술, 공학, 건축 등 전문 서적에서 많이 발생한다. 가격과 두께가 상당하다보니 책 자체를 훔치는 것보다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가져가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자 대부분의 서점에서는 표지를 비롯한 원문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책보고 싶어서'는 옛말, 책 훔쳐 돈 벌어

그들은 왜 이렇게 책을 훔치는 것일까? 책을 읽고 싶은데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훔치는 것일까?
대부분의 서점은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실제 책을 훔치다 적발된 사람을 수색하다보면 '상습적'인 경우가 상당하다는 것. 서점 관계자는 “우발적인 실수는 훈방으로 해결하지만 상습적인 범인이 상당하다. 상습범인 경우 형사 처벌을 하게 되는데 가택 수사를 하면 온 집안에 훔친 책으로 가득한 경우가 허다하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상습적으로 책을 훔쳐 적발된 40대의 남성은 3년간 1,500여 권 상당의 책을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현금으로 환산 시 약 2,500만원 상당의 금액으로, 훔친 책은 헌책방이나 다른 서점에 되판 것으로 밝혀졌다.

요즘은 개인 소장용으로 책을 훔치는 경우가 드물다. 정가의 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책을 되팔아 이익을 보고 있는 것. 훔친 책들은 비정상적인 경로로 유통업자들에게 넘겨지고 있다. 책 훔치는 것이 부업이나 전업으로 된 것이다.

◆정도 지키지 못한 서점, 손님 도둑으로 몰아

책 도둑이 끊이지 않다보니 서점 입장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들여 CCTV와 감시센서를 설치하고 보안직원을 별도로 채용하고 있다. 하지만 서점이 심증만으로 도둑 취급을 하고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민원이 증가하고 있다.

김 모 씨는 영풍문고에서 책을 구입하고 봉투를 구입하지 않아 낭패를 봤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책을 구입한 뒤 영수증 확인을 하고 있는 도중 보안직원이 와 가방을 수색하겠다고 한 것. 훔치지 않은 것이 확인되자 해당 직원은 사과를 하기는커녕 “'그럼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느냐' 라고 말해 어이가 없었다”라고 밝혔다.

교보문고에서 도둑 취급을 받은 대학생 이 모 씨도 억울함을 토로했다. “서점 안이 복잡해 좀 한가한 자리로 가 책을 읽은 다음 제자리에 놓은 다음 버스를 타려는데 서점 직원이 갑자기 가방을 낚아챘다”고 말했다. 이후 항의를 했지만 직원은 막무가내로 가방을 뒤졌고 가방 안에서 책이 발견되지 않자 직원은 “안 훔쳤으니 미안하다”라는 말만 남긴 채 사라졌다고 밝혔다.

수십 대의 CCTV가 있고 감시센서, 보안직원이 있지만 책 도둑을 잡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서점에서 도난과 분실로 인한 손해가 끊이지 않지만 해결을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점의 피해는 이해하지만 심증만으로 범인을 잡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책을 훔치는 범인과 그를 쫒는 서점의 관계를 끊기 위해서는 둘 모두 모두 양심을 가지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책을 훔치는 것은 명백한 범법행위인 것을 인식하고, 서점들도 명백한 근거가 있을 때 수색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마음의 양식인 책이 '만만한' 범죄 품목으로 굳혀지면서 범죄의 양식으로 변하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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