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기주의 편승한 정치와 언론이 ‘주범’

[투데이코리아=한윤희 칼럼]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을 둘러싸고 영남지역에서 벌어지는 집단 패싸움이 가관이다. 민주적 담론, 이성적 판단 따위는 자취를 감췄다. 세계경영을 염두에 두고 함께 지혜를 짜내도 부족할 판에 뻔한 사리사욕들이 뒤엉켜 끝 모를 위세를 떨치고 있으니 보통 낭패가 아니다. 입만 열면 저마다 정의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행패 수준이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보다 더한 국력 낭비가 또 있을까.

일이 이렇게 꼬인 것은 일차적으로 지역민들의 이기주의에 기인한다. 누구에게든 초대형 국책사업에 대한 나름의 기대가 아주 없기야 하겠는가. 문제는 맹목적, 일방적, 무조건적이어서는 생산적 논의를 거쳐 합당한 결론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절충점을 찾으라는 권고가 아니다. 이번 일만큼은 철저한 검증을 거쳐 명료하게 매듭지으라는 것이다. 이것이 최상임은 지금의 뻘구덩이 싸움을 봐도 그렇다.

일반 주민들의 열정은 순수하고 일정 부분 자연발생적인 측면이 있다. 이번에도 논쟁의 한복판에는 정치와 언론이 똬리를 틀고 앉았다. 이것이 영남에만 있는 현상은 물론 아니다. 신공항 건설 문제를 원시적 내전상태로 몰아가는 주연급 인물은 국회의원과 선출직 고위공직자들이다. 한탕주의, 공명심, 선거…, 대개 이런 것이 그들을 끝없는 탐욕과 무책임, 후안무치로 끌어들인다.

대형 국책사업에 으례 정치가 끼어드는 것은 수없이 목도해온 대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논리가 우선할 수도 있는 만큼 그런 일에 정치인과 정치세력이 관심을 갖는 자체를 문제삼을 것은 아니다. 현재 기준으로 최소한 10조원 이상의 국가예산을 들여야 할 동남권 신공항 건설사업이 특정 개인 또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발목 잡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되고마는 현실을 경계하는 것이다.

이럴 때 언론의 책무가 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몇몇 지방언론은 갈등을 여과 조정하기는커녕 갈등을 부채질하는 데 정신이 팔려있다. 그들의 저급한 장삿속은 극단적 지역이기주의와 합세해 춤을 추기 바쁘다. 중앙언론도 나을 게 별로 없다. 역풍이 무서워 침묵 아니면 비겁한 양시양비로 면피하는 데 급급한다. 이 모든 것은 저널리즘 타락이다.

경우가 좀 다르지만 잠시 뒤를 돌아보자. 5공화국 때 그 지역 출신 세도가의 입김으로 만들었다는 데서 '유학성 공항'으로 불렸던 경북 예천공항은 수요가 없어 6년여 전 폐쇄됐다. 김대중 정권 때 그 비슷한 배경에서 착공했던 전남 무안의 '한화갑 공항'은 3년 전 문을 연 이래 이용률이 2%대다. 같은 시기에 계획이 확정됐던 경북 울진 '김중권 공항'은 1200억원이 투입된 공정률 85% 단계에서 2004년 공사가 중단됐다.

신공항 입지 선정을 앞두고 동남권의 지자체에서 벌이는 각축은 어지럽다. 가관 중의 가관은 대구 경북과 경남, 울산이 의기투합한 것이다. 대구 경북은 그들 지역에 신공항이 들어서기를 주장하면 설득력이 없음을 스스로 안다. 그래서 발을 뻗은 곳이 경남(밀양)이다. 인접한 밀양에 공항이 건설되면 실질적인 성공으로 여길, 뻔한 셈법이다. 울산 역시 부산(가덕도)보다는 밀양이 가깝다는 데 착안했고, 경남으로서는 인구 및 정치공학 측면에서 대구 경북 울산을 업고 밀양공항을 성사시킴으로써 떡고물(공항세수)을 챙기겠다는 계산이다.

대구 경북 경남 울산 연합세력과 부산이 내세우는 논리는 나올 만큼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완력으로 굳히기 하려는 데로까지 발전했다. 보도, 광고, 시위, 집회 등의 실력행사가 본격화된 것은 지난해 가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 봄 입지선정이 임박하자 고삐를 죄는 것이다. 정부를 압박하는 정도를 넘어 협박 수준에 이르렀다.

열쇠는 '진리'다. 궁극적으로 갈등을 잠재울 비책은 이것뿐이다. 신공항 입지 선정에서 진리란 과학적 객관적 타당성이다. 원칙에 충실하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자연스럽게 보장되는 법이다. 세계적 허브로서의 신공항 건설에 적용할 몇 가지 원칙은 이미 있다. 24시간 안전 이착륙 여부, 건설비, 확장 여건, 생태계 보호, 배후 연계 물류시스템, 미래 교통망, 모범사례 등이 그것이다.

큰 목청과 꽹과리 소리에 흔들리면 망하게 돼 있다. 이게 신공항에서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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