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약한 지식인 이미지…최와 '진흙탕싸움' 체력될까

[투데이코리아=임요산 칼럼] 엄기영 전 MBC 사장이 2일 강원도지사 출마를 선언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작년부터 예상됐던 일이어서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는 일인 건 분명하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를 선동한 MBC의 사장이 누구였나. 바로 엄기영이다. 엄 사장은 보도의 공정성을 체크해야 할 공영방송 책임자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않았다. 법원이 'PD수첩'의 왜곡·허위·과장 보도를 인정했음에도 PD들을 옹호했다.

엄기영 사장 시대의 MBC는 PD수첩뿐 아니라 뉴스와 다른 시사프로그램으로 갓 출범한 이명박 정권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그를 사장으로 낙점한 이 대통령은 보기 좋게 배신당한 꼴이 됐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 엄기영을 후보로 내세우려 하고 있다. 이 역시 MBC 사장 임명 때처럼 이 대통령 뜻이라고 한다. 이것도 중도실용인가.

경선이야 치르겠지만 형식에 불과하리라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작년 도지사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계진 전 의원은 그 같은 기류를 알아채고 일찌감치 출마포기를 선언했다.

한나라당은 엄기영 영입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훼손했다. 그런데 엄기영의 정체성은 한나라당보다 문제가 더 크다.

노무현 정권의 청와대에서 실세로 통한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엄기영의 엽관운동을 폭로했다.

이에 따르면 엄기영은 노 정권 말기 MBC 사장에 응모해 '나는 진보적인 사람인데 사람들이 몰라 준다', '양정철 비서관이 저를 안 좋게 본다는데 방어좀 해 달라'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에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이라는 말이 있다. 양정철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노무현 정권에 줄을 서고, 이명박 정권에서 발탁된 엄기영의 처세는 정치인을 뺨 칠 정도 아닌가.

엄기영이 한나라당 후보가 된다면 이길 수 있을까.

경쟁자가 될 게 확실시되는 게 최문순 전 민주당 의원이다. 그는 엄기영보다 며칠 앞서 비례대표 의원직을 내던지고 강원도지사 출마 선언을 한 것은 승산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일개 부장에서 사장으로 발탁된 최문순은 MBC를 노동조합이 좌지우지하도록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다. 그의 후임자 엄기영은 최문순이 만들어 놓은 노조 우위 시스템에 순응했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가 엄기영을 MBC 사장으로 임명하자 노조가 반대하지 않은 것은 그를 만만한 상대로 봤기 때문이라는 말이 돌았다.

MBC 사장 자리를 인수인계한 두 사람의 대결은 적어도 흥행성은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파이팅이 다르다.

MBC 사장 때나 한나라당 입당에서 보듯 엄기영은 누가 밥상을 차려주길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최문순은 MBC 노조위원장과 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을 지냈다. 2009년 방송법 개정에 반대해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거리로 뛰어나갔다가 몇 달 뒤 슬그머니 복귀했다. 투쟁에 능수능란하다.

엄기영은 최문순에 대해 “아주 사랑하고 좋아하는 후배” “정치적인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낭만적이다.
반면 최문순은 엄기영의 한나라당 입당을 “야합과 기회주의의 전형”이라며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했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는 손가락을 잘라 군대를 면제받은 민주당 이광재 후보의 약점을 공격하지 않았다. 이계진은 인간적 성숙함을 선택한 대가로 선거에서 졌다.
엄기영의 인상은 유약한 지식인 이미지다. 그런 그가 선거에서 꽃가마만 타고 흙탕물을 밟지 않으려 한다면 4·27 보궐선거 결과는 작년 지방선거의 재판이 되기 쉽다.

지금 시점에서 여론조사에 앞선다고 해서 승리를 낙관할 일이 아니다. 아침과 저녁이 다른 게 민심이다. 한나라당이 좀 더 전투적인 후보를 물색할 시간은 아직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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