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파 짓는 나쁜 버릇 깨부술 날이 없구나
한 사람이 모함을 하면
뭇 입들이 차례로 전파하여
간사한 말들이 사실처럼 되거니
정직한 자 어느 곳에 둥지를 틀랴

지난주 동호인들과 다녀오는 여행길에 우연히 들른 다산 정약용 생가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비문에 새겨진 글이다.

200여 년전 다산 선생의 마음과 지금의 내 마음이 어쩌면 이리도 닮아있는지 한참을 그 비문 앞에 서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다. 어디를 가든 만나는 분들마다 요즘 왜 이렇게 조용히 있느냐고 물어보신다. 대통령이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는 것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솔직히 말하면 지쳤다.

'쇠귀에 경읽기' 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이 내가 건의 드린 대로 행동하리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그러나 마음 한 구석으로 작은 기적을 바래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노대통령은 자신과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질이 부족하거나 줏대가 없는 정치인으로 규정하고, '사람을 잘못 보았다'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자신이 임명했던 사람에 대해 잘못 보았다고 말하는 건 인사가 잘못되었다고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대통령만이 사람을 잘못 본 것은 아니다. 나와 우리 그리고 국민이 사람을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과장급이라고 말하는 대통령을 한때 세계적인 대통령으로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자신에게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만을 좋아하고 자신의 단점을 정확하게 꼬집어 말해주는 사람을 멀리하는 대통령이 세계적인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도 수백명의 아첨대군들을 거느린 왕보다, 죽음을 불사하고 간언(諫言)을 고하는 단 한사람의 충신을 가진 왕이 길이 성군으로 추앙받는 것이 아닌가?

또한 입으로는 지역주의를 비롯한 당파주의 등을 꼭 청산해야 할 구습이라고 말하면서, 그 '당파짓는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또 다른 당파인 참여정부 평가포럼에 열중하는 모습도 세계적인 대통령의 모습은 아니다.

대통령이 자신만을 신처럼 떠받드는 또 다른 당파적 조직에 의탁하여 참여정부의 공을 이야기하고, 열성 지지자들의 환호에 도취되어 남을 비방하는 것은 매우 편협하고 이기주의적인 언행이 아닐 수 없다.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국민들과 역사의 몫이다. 참여정부 평가포럼이 대통령을 세상사를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장님으로, 또한 민중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노대통령이 스스로를 과장급 대통령이라고 말했을 때 그 앞에서 웃고박수친 그 사람들이 노대통령을 과장급 대통령으로 만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노대통령을 과장급 대통령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도 다산 선생의 '옛 뜻'을 깊이 있게 되새기어, 비록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 되지는 못했지만, 국민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제 우리에겐 세계적인 대통령이 절실하다. 국민소득 2만불의 수준에 맞는 편안한 정치를 할 수 있고, 갈기갈기 찢어진 국민의 마음을 통합시킬 수 있는 여유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선진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나가고, 평화와 번영을 이끌 수 있는 세계적인 역량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살아있는 민중의 소리를 듣기 위해 과감하게 민생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대통령, 비판의 목소리도 겸허하게 수용할 줄 아는 대통령, 말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그런 대통령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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