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심판-교수로 맹활약! '빙상의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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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심재희 기자] 지난해 겨울. 100년이 조금 넘는 대한민국 스피드 스케이팅이 동계올림픽에서 새 역사를 창조했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최초로 금맥을 터뜨리면서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저력을 세계 만방에 떨쳤다. 당시 현지에서 해설위원으로 후배들의 선전에 '대~한민국'을 힘차게 외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인물이 이번 레전드인터뷰의 초대손님이다. 1990년대 한국 빙속의 간판스타였던 제갈성렬 춘천시청 감독이 흔쾌히 레전드인터뷰에 응했다. "빙상으로 시작해 빙상으로 살고 있고 빙상으로 생을 마감하겠다"며 빙상 사랑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는 그를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에서 만났다. 유쾌 상쾌 통쾌한 이야기로 인터뷰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어졌다.

* 밴쿠버올림픽에 대한 추억

제갈성렬 감독에게 2010년 밴쿠버올림픽은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의미 있는 대회다. 자신에게도 후배들에게도 그리고 대한민국 빙상 전체에게도 큰 의미를 지니는 대회였다는 것이 그가 한 첫 말이었다. "지옥과 천당을 오갔죠"라는 의미심장한 말에서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해설위원으로서 큰 인기를 누렸지만, 대회 중반에 여러 가지 악재를 겪으면서 맘 고생이 심했었기에 다시 꺼내고 싶지는 않은 기억일 것이라는 생각도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아픈 기억도 지나면 다 추억이 된다고 했던가?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난 2010년의 밴쿠버올림픽에 대한 추억. 제갈성렬 감독은 밴쿠버올림픽 이야기를 꺼내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해설위원으로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현지에서도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제갈성렬 감독은 우선 시청자들에게 좋은 정보와 생생한 순간을 하나라도 더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해설위원으로 많은 힘을 기울였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자기 스스로를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평생을 빙상 계에 몸담으면서 얻었던 지식들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해설에 임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어 문제가 됐던 상황들에 대해서 고개를 숙이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저의 미숙한 부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났다는 것에 대해 인정합니다. 당시 방송을 다시 보면서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방송을 하는 사람으로서 경험이 부족했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많은 비판을 받았을 때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 때의 어려움이) 더 큰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갈성렬 감독은 밴쿠버올림픽 당시 스타 해설위원으로 떠올랐다. 선수 출신답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을 곁들였고, '샤우팅 해설'이라는 이야기 나올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진행을 이어가면서 대한민국의 승승장구 분위기를 더욱 끌어올렸다. 하지만 종교적인 발언과 결정적인 상황 설명에서 한 박자 늦은 모습을 보이면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제갈성렬 감독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보탰다. "전문적인 부분과 재미를 동시에 잡기가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열심히 했는데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니 힘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렇기에 밴쿠버올림픽은 생생한 '좋은 추억'으로 머릿속에 저장이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기에 맘 고생이 심했던 게 사실이다. 당시 받은 충격으로 대회가 끝난 후 귀국한 뒤 일정 기간 동안 칩거를 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모두가 지나간 일. 제갈성렬 감독도 열심히 노력했고 적잖은 사람들이 기뻐했으며 후배들은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최고의 잔치 속에서 자신의 실수가 옥에 티가 되었지만, 그래도 밴쿠버올림픽은 제갈성렬 감독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 빙상 계의 팔방미인

제갈성렬 감독은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에이스 계보를 이은 선수였다. 이영하, 배기태에 이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세계적인 기량을 당당히 뽐냈던 인물이다. 1992년 알베르빌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첫 동계올림픽 메달을 따낸 김윤만과 함께 1990년대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저력을 세계 팬들에게 확실히 선보인 주인공이다. 알베르빌올림픽을 비롯해 1994년 릴레함메르올림픽과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했고, 1997년 세계월드컵 500미터와 1000미터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세계랭킹 3위, 월드컵랭킹 1위에 오를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단거리 스프린터가 바로 선수 제갈성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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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현재 춘천시청 감독을 맡고 있다. 그 동안 지도자로서 '될성부른 떡잎'들을 잘 키워내는 재주를 수 차례 선보였다. 한국 빙속의 살아있는 전설인 이규혁과 밴쿠버올림픽 여자 500미터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상화 등을 조련해내면서 남다른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해설위원으로 밴쿠버올림픽의 생생한 소식을 시청자들에게 전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고, 평창올림픽 자문위원과 대학교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지난 해 7월에는 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 스케이팅 부문 국제심판 자격 획득의 쾌거를 이뤄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렇다 보니, '1인 다역 빙상인', '빙상 계의 팔방미인' 등으로 제갈성렬 감독을 부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러 가지 일에 대한 부담은 없느냐"라는 다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곧바로 현답이 돌아 왔다. "감독, 해설위원, 교수, 심판 등 모든 일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대한민국 빙상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죠." 제갈성렬 감독은 이어 자신의 빙상 철학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선수로서 정말 열심히 했고, 지도자로서도 항상 공부하면서 선수들과 함께 꿈을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해설위원과 심판으로서도 언제나 즐겁게 스케이트장을 찾았고, 또 찾고 있습니다. 빙상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기 때문에,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교수로서 해설위원으로서 심판으로서 모든 일 하나하나에 전혀 후회가 없었습니다. 즐거운 일을 하면 당연히 보람된 것 아니겠습니까(웃음)."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것 같은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일을 즐기는 모습. 그의 '빙상 사랑'이 한 겨울 추위 속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얼음판보다 훨씬 더 깊고 단단하게 느껴졌다.

* '세계 최강' 한국 빙상

대한민국 빙상은 밴쿠버올림픽에서 대업을 이뤄냈다. 전통적인 메달 밭이었던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행진을 이어갔고, 여자 피겨에서 김연아가 세계 최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는 '무서운 신예들'인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이 대형사고를 터뜨리면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서 애국가를 힘차게 불렀다.
빙상 세 종목인 쇼트트랙, 피겨,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빙상 트리플크라운’ 달성과 함께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세계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밴쿠버올림픽을 통해 대한민국 빙상의 저력이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사실, 스피드 스케이팅은 그 동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효자종목’ 쇼트트랙에 가려졌기 때문이다. 밴쿠버올림픽 이전까지 김윤만이 알베르빌올림픽에서 따낸 은메달이 유일했으니, 상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는 상황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랬던 스피드 스케이팅이 밴쿠버올림픽에서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를 따내면서 쇼트트랙(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3개)을 넘어섰다. 밴쿠버올림픽 성적 이야기를 하자 제갈성렬 감독은 싱글벙글 웃었다. 후배들이 이룩한 쾌거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거듭 이야기했다. "(후배들이) 그 정도로 잘 할지 몰랐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이 올림픽 금메달을 당당히 따내는 모습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사실, 저는 올림픽에 세 차례 나서 모두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습니다. 그 만큼 힘든 무대가 올림픽인데,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어린 후배들이 세계 정상에 연이어 올랐으니 어찌 안 기쁠 수가 있겠습니까?"

손에 땀을 쥐고 흥분하면서 말을 잇던 제갈성렬 감독에게 냉정한 질문을 하나 던졌다. "현재 우리나라 스피드 스케이팅의 수준과 세계 최강 전력을 갖춘 국가는 어디인가"라고 물으면서 전문가다운 냉정한 답변을 요구했다. 제갈성렬 감독은 자신감 넘치게 "현재 대한민국은 단거리와 장거리 모두 세계 최강 수준에 서 있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밴쿠버의 영웅들인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이 더욱 발전하고 있고, 이 세 선수를 보고 자라고 있는 주니어선수들의 기량도 매우 좋으며, 살아있는 신화인 이규혁과 이강석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그리고 이어 제갈성렬 감독은 "단거리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아시아 국가들이 라이벌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장거리에서는 네덜란드, 독일, 미국, 캐나다 등이 우리와 호각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변확대와 환경개선 등이 어우러진다면 우리 선수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 뒤질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라며 뼈 있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올림픽에서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만족하지 말고, 지속적인 투자와 관리를 통해 스피드 스케이팅 최강국들과의 선의의 경쟁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있는 뜻 깊은 이야기였다.

*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제갈성렬 감독은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 두 가지 대답을 내놓았다. 우선, 그 첫 번째 목표로 '평창올림픽 유치'를 꼽았다. 현재 자신이 가진 힘이 미약하지만,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일(오는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실시)에 맞춰 전국일주 등에 대한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라면서 의욕적인 자세까지 보였다. 평창올림픽이 유치되어야 동계스포츠가 전체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제갈성렬 감독이 거듭 강조하는 부분이다. 아울러 그는 평창올림픽 유치 가능성에 대해서 "현재 상황에서는 반반"이라는 냉정한 시각을 보였다.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놓고 독일 뮌헨과 프랑스 안시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요. 현재 우리가 우세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많은데, 저는 다르게 봅니다. 오히려 방심은 절대 금물이라는 생각이 앞섭니다. 지난 두 차례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에는 반드시 동계올림픽을 유치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긴장의 끈을 바짝 조여 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갈성렬 감독의 말처럼, 평창은 동계올림픽 유치 시도에서 이미 두 번이나 쓴 맛을 봤다. 밴쿠버(2010년)와 소치(2014년)에 연거푸 역전패를 당한 아픈 경험이 있다. 실사단 평가에서 최고 수준의 점수를 받았고 1차 투표에서도 1위를 차지하면서 기대치를 드높였으나, 정작 2차 투표에서 밀리면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때문에 최후의 순간에 '평창'이 외쳐질 때까지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한결 같은 목소리다. 제갈성렬 감독은 이에 대해 "뮌헨과 안시가 언제부터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스퍼트를 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일단, 우리 입장에서는 2월에 있을 실사단 평가를 잘 치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표심을 잡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최후에 웃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꼭 해야 합니다"라면서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였다.

제갈성렬 감독이 내세운 두 번째 목표는 '빙상은 내 운명'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다소 철학적인 말이라 부연 설명을 부탁했다. 그는 "7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이후에 항상 스케이트만을 생각해 왔습니다. 선수든 감독이든 해설위원이든 교수든 심판이든 저의 모든 생각과 행동들은 빙상과 맞물려 이루어져 왔습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뼈 속까지 완전한 빙상인이다'라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저에게는 참 기분 좋은 말입니다. 지금 제 능력이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 항상 빙상에서 호흡하고 삶은 설계해 나가는 것이 저의 최대 목표입니다. '빙상은 내 운명'이라는 말을 계속 실천하기 위해 언제나 얼음판 위에서 땀을 흘리려고 노력 중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주시고, 많은 응원과 격려 그리고 때로는 따가운 비판의 시선을 날려주시기 바랍니다(웃음)"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풀어 설명해줬다. 다시 한 번 '제갈성렬은 천상 빙상인'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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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갈성렬 감독을 인터뷰 하기 전에 망설여지는 질문도 여러 개 있었다. 특히, 밴쿠버올림픽 때의 아픈 기억을 들추어 내는 것이 실례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인터뷰어(interviewer)로서 인터뷰이(interviewee)에게 부담을 줘서는 곤란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꺼낸 질문에 환한 미소와 함께 솔직한 대답을 내놓는 그의 모습에 부담감은 사라지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선수 시절 성실함을 주무기로 힘차게 전진하던 모습과 해설위원으로서 마이크를 잡고 시청자들과 함께 경기를 즐기는 모습이 순간 떠오르면서 잔잔한 감동까지 느껴졌다. 오늘도 얼음판 위에서 그 누구보다 더 크게 목소리를 드높이면서 후배들과 '하나 둘 하나 둘'을 외치고, 짬 나는 시간에는 더 큰 지도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필수'라고 여기는 이론 공부 삼매경에 빠지는 제갈성렬 감독.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을 위한 제갈성렬 감독의 무한 질주가 그의 첫 번째 목표인 평창올림픽 유치와 더불어 그 빛을 더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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