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200.jpg2007년 12월로 예정됐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그 해 3월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한나라당을 전격 탈당했다. 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기였고 노무현 정권의 열린우리당 시대가 해체국면에 들어섰던 때였다.

지금의 민주당으로 재포장한 당시의 여권세력들은 ‘투항’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면서 각자 손익계산에 분주했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은 일거에 ‘보따리장수’로 폄하했고 손 전 지사는 ‘식물대통령 노무현’으로 대응했다. 그 해 민주당 대선후보경선에서 손학규의 꿈은 ‘흥행 불쏘시개’ 소임을 다한 것으로 끝났다.

탈당 이후 4년이 흘렀고 이제 그는 “노무현 정신 계승”을 외친다. 그리고 재보궐선거 야권후보 단일화를 도모한 뒤 민주당 대표로, 경기도 성남 분당을 국회의원 후보로 4.27 재보궐선거 현장을 뛰고 있다. 손 전 지사의 한나라당 탈당 직후인 2007년 3월22일에 썼던 칼럼을 전재한다. ‘거꾸로 달려간 세상’(도서출판 기파랑, 2010년 11월 발행)에서 발췌했다.


‘보따리장수’ 손학규의 눈물

[투데이코리아=한석동 칼럼]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새 길을 창조하겠다"며 한나라당 탈당을 결행했다. 대한민국을 등질 수 없어서 한나라당에 등을 돌렸다고 했고, 미래 평화 통합의 시대를 경영할 창조적 주도세력을 만드는 데 이비지하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그의 결연한 탈당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승산이 있었으면 탈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사람들은 유사한 일을 정치판에서 자주 봐왔다. 그들은 그렇고 그런 정치인 한 사람의 환상을 또 보고 있었던 셈이다. 그가 대선 불출마를 전제로 아주 진작에 탈당을 했으면 혹시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무능한 좌파 종식과 수구 청산'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다면 열광적 환호가 있었을 법도 하다. 물론 어림 반푼 어치 없는 상상이다.

예상대로 각 정파와 기회주의자들은 저마다 손학규 탈당 반사이익을 계산하느라 분주하다. 하긴 그들에게 이번 일을 능가할 행운이 쉽게 오겠는가. 민주당을 중심으로 벌이는 각양각색의 환영 속에 민주노동당 대변인 논평은 유일한 위안이다. "경선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외에 어떠한 합리적 기준도 발견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은 언제까지 철새의 도박을 지켜봐야 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혹평도 있었지만 거기엔 정교한 셈이 따로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짜일 올 연말 대선구도는 크게 세 가지다. 다자 대결, 범여권 후보-한나라당 후보-손학규 대결, 그리고 사실상 한나라당 후보-손학규 맞대결. 세 번째 것은 손씨가 자신의 말대로 '시베리아'를 통과하며 고만고만한 범여권 주자들을 평정하는 경우다. 한나라당 승리 만큼은 절대 못 봐주겠다는 집단 개인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이것이 적중할 수도 있다.

손 전 지사의 매력은 비교적 탄탄한 이력일 것이다. 바르게 성장해 제대로 학식과 인격을 갖췄고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청년기에는 민주화 운동을 통해 진보와 바닥인생을 치열하게 체험했다. 중년 무렵부터는 보수 쪽에서 3선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를 지내며 국정수행 역량을 쌓았다. 신뢰성과 도덕성도 별 흠잡을 데 없다. 그가 내세운 '본선 최고 경쟁력' '저평가 우량주'에 거부감이 덜했던 것과, 언론들이 그의 '민생투어 100일 대장정'을 "쇼일 지언정 많을 수록 좋겠다"고 호평했던 것도 그런 배경이 토대가 됐다.

손 전 지사를 여느 '보따리장수들'과는 달리 봤기에 주문할 것이 있다. 탈당 때의 언사와 이전의 언행이 어떻게 조화되는 지를 만인이 알아들을 수 있게, 절대 기만적이지 않게 설명해야 한다. 결단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서도 이는 필요하며, 자신을 열정적으로 성원했던 사람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탈당 직전까지 했던 숱한 장담, 그 불일치를 당장 어떻게 할 건가. "나는 한나라당을 자랑스럽고 꿋꿋하게 지켜온 주인이며 기둥이다, 나의 행적을 봐라, 의연한 자세로 걸어왔고 정도를 걸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내 목적이고 역할이다, 나는 한나라당 자체다"

또 하나, 배반의 명분과 합리화가 절실했기로서니 몸담았던 곳에 침은 뱆지 말아야 했다."지금의 한나라당은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이것은 저주에 가까운 악담이다. '죽는 길' '한 톨 밀알'을 선택했다는 자리에서 자책, 자성은 한 마디도 없었다. 그 흔해빠진 '부덕의 소치'조차 없었다. 14년 동안 한나라당 소속으로 누린 모든 영예를 반납한다던 순간 그의 뺨에 흘러내린 눈물에서도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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