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방출 설움 황덕균, 일본 독립리그 돌풍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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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장병문 기자]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았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에서 방출되고 일본 독립리그에서 재기를 꿈꾸는 황덕균(28)의 심정이 느껴졌다. 프로야구를 즐겨보는 팬들에게도 황덕균은 생소한 이름이다. 1군 무대에 단 한 번도 등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꺼져가는 듯한 촛불은 일본에서 다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한 황덕균은 일본 독립리그 스프링컵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해 낮은 곳에서 스파이크 끈을 다시 조여 맺다. 그리고 그 스타트가 좋았다. 정규리그 개막을 앞두고 지난 23일 동생의 결혼식을 위해 잠시 귀국한 황덕균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 스프링컵 MVP

황덕균은 지난 17일 일본 와카야마현 고보시민구장에서 열린 오사카 호크스드림과의 스프링컵 최종전에서 6⅓이닝을 5안타 2실점(1자책점)으로 막고 서울 해치의 5-2 승리를 이끌었다. 서울 해치는 4전 전승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며 황덕균은 MVP를 수상했다. 황덕균은 이번 대회에서 4경기 모두 출장해 2승 2세이브 평균자책점 0.67의 빼어난 성적표를 남겼다. 스프링컵 우승으로 서울 해치는 한신 타이거즈 2군과의 이벤트 매치권을 따냈다. 그리고 19일 나루오하마 구장에서 열린 한신 2군과의 경기에서 대등한 경기를 펼치면서 0-1로 아쉽게 패했다. 이날 황덕균은 이틀만의 투구로 몸이 완전하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역투를 펼쳤다.

"매 경기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던졌어요. 방출되고 군대를 다녀왔더니 나이가 28살이 됐습니다. 야구선수로서 남긴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 해치에서 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좋은 성적을 내서 국내무대에 복귀하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프링컵에서의 성적은 만족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하고 2002년 두산에 입단한 황덕균은 당시만 해도 유망주로 팀에서 주목을 받았다. 전 년도(2001년) 우승팀인 두산에서 자신의 이름을 전국에 알리겠다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더딘 성장 때문에 2년 뒤인 2004년 방출의 아픔을 겪었다. 어린 나이에 잠시 방황도 했다. 그 때 친구 고영민(28.두산)이 "넌 자질이 있는데 왜 포기하려 하냐. 다시 시작해라"라며 황덕균의 마음을 바로 잡아주었다.

황덕균과 고영민은 서울 도신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함께 시작한 절친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는 떨어져 있었지만 두 사람은 2002년 두산에 함께 입단했다. 황덕균은 "야구가 힘들고 지칠 때 고영민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됐어요. 고영민은 저의 정신적 지주입니다."라며 두터운 우정을 과시했다. 인터뷰를 하는 날에도 고영민은 황덕균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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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 이상훈과 전승남

두산에서 방출되면서 황덕균은 야구할 곳을 잃었다. 그 즈음 나라의 부름을 받아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시작했다. 경찰청 야구단이나 상무에 입단하지 못했지만 황덕균은 2년이라는 기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근무가 끝나면 인근 운동장을 찾아 공을 뿌렸다. 하지만 혼자 운동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던 중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지인의 소개를 통해 전설의 투수 이상훈(40)과 전승남(37)을 만나게 됐다. 1994년 LG 트윈스의 우승을 견인했던 이상훈 과 1990년대 후반 LG의 필승계투조에서 활약했던 전승남이 황덕균의 스승으로 자처하고 나섰다. 왼손 강속구 투수와 오른손 사이드암 투수가 우완 전통파 투수 황덕균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었을까.

황덕균은 "이상훈 선배님은 기술적인 부분들을 많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단조로웠던 구종을 다양하게 늘릴 수 있었어요. 슬라이더와 커브, 체인지업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이 때 컨트롤이 많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상훈 선배님은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셨어요. 제가 서울 해치에 오면서 일본타자들을 처음 상대해 봤습니다. 일본 타자들은 삼진을 당하지 않으려고 1번부터 9번까지 배트를 짧게 잡고 스윙을 합니다. 모든 타자들이 상대하기 힘들었습니다. 이상훈 선배님은 몸 쪽 공을 많이 던지라고 요구하셨어요. 일본 타자들에게 결정구로 몸 쪽 변화구를 던졌던 것이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이상훈 선배님은 기술적인 부분들뿐만 아니라 '배짱'을 키워주셨습니다"라며 고개를 여러 차례 숙였다. 또한 그는 "전승남 선배님은 멘탈적인 부분을 강조하셨어요. 부족했던 정신력과 끈기를 배웠습니다"라며 전승남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렇게 두 스승에게 1년의 가르침을 받은 황덕균은 팀이 필요했다. 아무리 연습을 열심히 해도 소속팀이 없고 기록을 남길 수 없다면 구단 스카우트들에게 지목을 받기 어렵다. 지난 2월 이상훈은 황덕균과 함께 서울 해치의 공개 입단테스트 현장을 찾았다. 이상훈은 황덕균을 서울 해치 관계자들에게 소개를 했고 테스트를 받았다. 당시 황덕균은 시속 143km의 묵직한 직구를 뿌리면서 서울 해치 팀의 일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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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해치와의 운명적인 만남

독립리그는 보통 프로구단에서 방출됐거나 프로에 입단하지 못한 선수들이 모여 프로 무대 복귀를 꿈꾸는 곳이다. 서울 해치의 전신 코리아 해치는 지난해부터 일본 간사이 리그의 참여했다. 당시 기아의 김진우와 한화의 손지환도 이 팀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현재는 황덕균을 비롯해 SK와 한화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외야수 양승학(27), 2006년 LG에 입단했던 우완 투수 신창호(24), SK에서 뛰었던 좌완 투수 최상인(27) 등이 이곳에서 재기를 위한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프로무대도 아닌데 일본에서 독립리그를 찾는 관중들은 꽤 많은 편이다. 서울 해치가 한신 2군과 대등한 경기를 펼칠 정도의 수준이면 관중들이 독립리그를 찾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수준은 높은 반면 선수들의 여건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독립리그에 속한 팀들은 보수가 따로 없다. 장비와 식비, 차비 등도 선수가 부담하는 실정이다.

그에 비하면 서울 해치는 나은 편이다. 서울 해치 관계자에 따르면 "독립리그 규정에 선수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때문에 서울 해치는 선수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합숙소와 연습시설, 항공권, 버스 등을 지원하고 있다. 선수들이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와 후원 계약을 채결하면서 선수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논의 중에 있다"고 전했다.

황덕균은 "저를 비롯해 이곳에 모인 선수들은 야구 아니면 안 되는 사람들 입니다. 오후 11시까지 손에서 공을 놓지 않고 훈련에 열중합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고 힘들어도 참고 버텨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프로구단들에게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야구에 대한 열의는 그 누구보다도 뜨겁습니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기회를 잡기 위해 모였습니다. 야구를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며 소속팀에 감사의 뜻을 내비쳤다.

# 에이스의 이름으로!

올 시즌 황덕균은 최상인, 신창호와 함께 서울 해치의 마운드를 끌고 가야 한다. 5월 2일부터 10월 중순까지 60경기를 치르게 된다. 한 주에 2경기에서 4경기를 가지는 독립리그지만 황덕균의 등판은 잦을 것으로 예상된다. 선수층이 얇기 때문이다. 이는 에이스가 짊어줘야 할 부분이다.

황덕균은 "개인 성적보다는 팀이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프로 진출을 위해 개인적인 욕심을 낼 법도 했지만 "서울 해치가 프로무대의 징검다리가 되는 팀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팀이 잘해야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개인 성적도 좋아지겠죠"라며 성숙한 답변을 내놓았다.

황덕균의 올 시즌 목표는 10승이다. 최재봉 서울 해치 감독 역시 "황덕균은 10승 이상 거둘 투수"라고 평가했다. 자칫 의욕이 앞서 부상의 염려도 있었다. 이에 대해 황덕균은 "코칭스태프에서 선수들의 건강과 안전에 대해 꼼꼼히 살펴봐 주시고 있어요. 경기도 중요하지만 선수들 몸 관리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계세요"라며 감사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이어 "올 해는 제게 가장 중요한 시즌 입니다. 부상 없이 좋은 모습을 보여 꼭 프로 무대에 가고 싶습니다"라며 다시 한 번 목표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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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황덕균의 친동생이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자신은 아직 미혼이다. 동생을 먼저 보낸 기분은 어떨까. 황덕균은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가 있지만 아직은 준비가 안됐다고 말한다. 그는 "프로에 입단하고 떳떳하게 프러포즈를 하고 싶습니다. 여자 친구도 가족들도 이해해 주고 있습니다"라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여자 친구와의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그의 올해 목표는 더 간절하게 전해졌다.

황덕균은 프로무대에서 한 차례 실패를 맛봤다. 프로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 흘렸던 땀보다 훨씬 많은 양을 흘렸고 흘리고 있다. 낯선 일본무대에서 성공적인 데뷔무대를 치르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부상 없이 꾸준한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면 그 동안 고생했던 노력에 대한 결실을 맺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과연, 황덕균이 확실한 부활찬가를 부를 수 있을까. 황덕균은 이번 시즌이 끝나고 프로 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다시 한 번 인터뷰하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이 꼭 지켜지길 바란다.

<사진=서울 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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