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200.jpg[투데이코리아=한석동 칼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을 마감하면서 정치적으로 무얼 특별히 겨냥한 것 같지는 않다. 공식 발표된 유서내용은 그가 법리와 도덕적 순결 사이에서 수없이 번뇌하다 참담한 절망의 끝에서 비극적 최후를 결행한 것으로 읽힌다.

그 지경까지 간 데 대해서는 주장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검찰과 언론이 결과적으로 그를 벼랑 위로 내몰았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대체로 수긍한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과 주변 인물들의 비리혐의와 관련해 소극적 보도자세를 보이던 이른바 진보 친노매체들마저 어느 순간 매도 경쟁에 뛰어든 것에서도 깡그리 의욕을 상실했을지 모른다.

자살을 불사하기까지의 고독은 백번 이해되고 남는다. 오기와 자존심이 유별났던 터라 그의 앞날에 대해 솔직히 불길한 예감이 없지는 않았다. 설마 했던 최악의 상황을 현실로 망연하게 맞닥뜨린 것이다. 그의 생애에 비춰보면 어떤 의미에서 그는 죽음의 방식까지 가장 그답게 선택했다.

유서내용으로 봐 의도적이기까지는 않았을 그의 '마지막 승부수'는 극적인 대반전에 성공했다. 연인원 500만명이 참여했다는 전국 규모의 추모를 봐도 그렇다. 알려진 대로 그들 모두가 친노는 아니었다. 유례없는 추모 열기는 전직 대통령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예도 없거니와 그 자체가 엄청난 충격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을 떠난 이에게 본능적으로 관대한 우리 국민 심성, 죽은 자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관습도 추모의 큰 물결로 역할했다. 세계 경제위기 여파로 팍팍한 일상에 찌든 국민들의 집권세력에 대한 실망과 불만도 적잖이 겹쳤을 것이다.

소박한 부탁 몇 가지를 덧붙여 선 굵게,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인생을 함축해놓은 듯한 그의 유서는 감성의 심연을 흔들었다. 실패로 끝났지만 그가 추구했던 '모든 사람이 고루 잘 사는 사회'는 당위며 인류 보편의 가치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애통해하며 그를 배웅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이 전부는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노무현 자살은 지극히 사적 성격의 것이었다. 그 죽음의 방식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할 일은 더더욱 못된다. 필부필부도 그렇거늘 공인 중의 공인이었던 그에게야 더 말할 나위없다. 오죽해서였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그 엽기와 무책임성을 호되게 비판해도 뭐랄 일이 아니다.

추모 모드는 여전하다. 성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를 향해 그의 죽음을 갖고서 순국을 운위하는 사람은 없는지 모르겠다. 비리혐의로 수사를 받던 사람이 자살 후 성자가 되는 나라가 있느냐는 어느 학자의 글은 '변태' 취급을 받았지만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 글의 필자가 지칭한 대로 '방송무당들'은 노무현 영웅 만들기에 분별없이 골몰했다. 신문들도 그렇기는 한 가지였다.

압권은 이 와중에 재미 좀 보겠다고 추모 분위기에 편승한 저질 정치꾼들이다. 노무현 정권 임기 후반에 대통령을 사정없이 짓밟은 민주당 안팎의 수많은 얼굴은 쇠가죽보다 두꺼워 보인다. 상주를 자처하며 낡은 정치투쟁에 나선 그들은 늙은 아비를 오래 방치해 놓고 내왕을 끊었던 패륜아 같다. 지금 와서 '노무현 정신 계승'을 외치는 것은 그 아비가 죽자 유산에 눈이 뻘게져 대성통곡을 독점한 패역과 다르지 않다.

광란의 허깨비 촛불시위들도 여차하면 재연될 것이다. 여기에다 북한의 위험한 불장난까지, 그야말로 내우외환이다. 한 인물의 지극히 인간적인 죽음을 인질 잡고 이념 정치투쟁을 획책하는 친북 진보 좌파에 더는 관대할 이유가 없다. 이제 산 사람은 산 사람 일에 매달려야 한다.(2009.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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