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의 전설과 축구에 대해 이야기 하다!

[투데이코리아=심재희 기자] 올해 초. '왕의 귀환'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51년 만에 아시아 정상 탈환에 나섰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쉽게 정상 문턱에서 패배의 쓴 잔을 들었다. 2011년 카타르아시안컵에 출전한 대한민국은 준결승전에서 일본에 덜미를 잡히면서 우승에 한 걸음이 모자랐다. '아시안컵 징크스'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다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쉬움만큼 희망적인 부분도 많이 발견했다. 젊은 피들이 좋은 역할을 해내면서 오늘보다 더 밝은 내일을 내비치며 자신감을 확실히 얻었다. 이번 레전드인터뷰의 초대손님은 과거 한국축구를 대표했던 인물이다. 카타르아시안컵을 바라보면서 후배들의 성장에 뿌듯한 미소를 지은 대선배 '적토마' 고정운이 그 주인공이다. 현재 풍생고등학교 지휘봉을 잡고 어린 후배들과 한국축구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고 있는 고정운 감독을 만나 축구에 대한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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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쉽지만 희망을 봤다!

아쉽게 우승을 놓친 카타르아시안컵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열었다. 고정운 감독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희망을 봤다"는 대답을 먼저 내놓았다. 2007년 대회와 같은 3위를 기록했지만, 경기 내용이 훨씬 더 좋았고 선수들의 가능성도 확실히 봤다는 부분을 의미 있게 평가했다. "전체적으로 경기력이 좋았다. 일본에 패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우승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만족스러운 3위라고 평가하고 싶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내용 면에서는 4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이어서 고정운 감독은 젊은 피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강조했다. 조광래 감독이 선호하는 빠르고 세밀한 패스워크를 바탕으로 하는 축구 스타일에 젊은 선수들이 잘 적응했기에 더욱 고무적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선수들이 한층 나아진 기술력에 체력과 경험을 덧칠했다고 덧붙였다. "어린 선수들이 이번 대회를 통해서 좋은 경험을 얻었다.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젊은 피의 기술력이 조광래 감독의 축구색깔과 잘 맞아떨어졌기에 희망의 빛이 보였다"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고정운 감독의 말처럼, 이번 대회를 통해서 신예스타들이 대거 떠올랐다. 대회 득점왕을 차지한 구자철을 비롯해, 손흥민, 지동원, 윤빛가람 등이 성인대표팀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고정운 감독은 "축구협회가 심혈을 기울였던 유망주 유학 프로그램이 결실을 거둔 것이다"라면서 새로운 얼굴이 대표팀에 등장한 것에 다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어 "이번 대회를 통해서 유망주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선수를 발굴하기 위해서 유소년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뼈 있는 말을 건넸다. 고정운 감독의 머릿속에는 아시안컵에 대한 아쉬움보다 한국축구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 적토마, 일화 천마, 그리고 미국월드컵

고정운 감독은 선수 시절 K-리그 최고의 스타였다. 1989년 일화 천마에서 프로에 데뷔해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일화가 K-리그 3연패를 이룩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1994년에는 K-리그 MVP까지 수상했다. 그를 향해 축구팬들은 '적토마', '코뿔소' 등의 별명을 붙여줬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경기 내내 상대 진영을 헤집는 모습에서 그런 별명들이 나왔다. 이에 대해 고정운 감독은 "선수 시절 경기 스타일만 놓고 본다면 잘 지은 별명 아닌가?"라면서 미소를 지었다.

흔한 말로 가장 잘 나가던 축구스타였던 고정운 감독은 1989년 5월 싱가포르와의 경기를 통해 A매치에 데뷔했다. 그리고 1998년까지 총 75번의 A매치를 소화하면서 9골을 잡아냈다. 하지만 모든 축구선수들의 꿈인 월드컵과는 큰 인연이 없었다. 1994미국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것이 전부였다. 1990이탈리아월드컵과 1998프랑스월드컵 때도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 나섰지만, 아쉽게도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선배에 밀리고 후배에 양보하면서 아쉬움을 곱씹었다. 이에 대해 고정운 감독은 "개인적으로 월드컵에 대한 한이 있다"며 아쉬운 속내를 털어놨다.

그가 출전했던 미국월드컵은 불볕 무더위 속에서 치러진 대회로 유명했다. 체감온도가 50도에 달할 정도로 찌는 날씨 속에서 축구전쟁이 펼쳐졌다. 한국은 당시 예상을 뒤엎고 선전했지만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스페인과의 1차전에서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했고, 볼리비아와의 2차전에서 득점 없이 비겼으며, 독일과의 3차전에서는 맹추격전 끝에 2-3으로 석패했다. 당시 무더운 날씨 속에서 대표팀의 날개로 무한질주를 하던 인물이 바로 고정운 감독이었다. 당시 월드컵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세 경기 모두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뛰었다"면서 추억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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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표와 박지성의 은퇴에 대해

2000년대 접어들어 한국축구의 아이콘 역할을 했던 이영표와 박지성이 카타르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3번의 월드컵에서 한국축구의 저력을 뽐낸 그들의 퇴장에 진한 아쉬움을 표하고 있는 축구팬들이 있는가 하면, 세대교체와 더불어 한국축구의 더 큰 발전을 위해 내려진 올바른 결정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1990년대 한국축구의 최고 스타였던 고정운 감독에게 이 둘의 국가대표 은퇴는 어떻게 비춰졌을까? 그는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이영표와 박지성의 은퇴 결정을 존중하는 입장을 취했다.

고정운 감독은 "아마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라는 말로 두 선수의 국가대표 은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히 큰 영광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런 영광을 포기할 정도로 두 선수가 많은 생각을 한 끝에 이런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어 "최근 지성이가 햄스트링(허벅지 뒷근육) 부상을 당했다고 들었다. 나도 은퇴 하기 전에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는데, 햄스트링 부상은 나이가 많아지면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훈련량이 정말 많은 지성이이기에 자신의 몸상태는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으로 믿는다"면서 두 선수가 좋은 몸상태로 소속 클럽 경기에 잘 집중하기를 바랐다.

"2014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이 위기에 빠진다면, 이영표와 박지성이 돌아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고정운 감독은 "NO!"를 외쳤다. "상황이 달라지면, 두 선수의 생각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두 선수 모두 은퇴를 번복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대표팀은 이영표와 박지성을 제외하고 나아가는 팀이다. 둘이 없어도 한국축구가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숙제고, 만약 그 숙제를 풀지 못한다면 미래를 위해 쓴 약을 마셔야 하지 않겠나?" 냉정하고 정확한 판단이었다. 아울러 고정운 감독이 후배인 이영표와 박지성, 나아가 한국축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이 강하게 느껴졌다.

# 지도자 고정운의 축구철학

1990년대 슈퍼스타로 각광받았던 고정운 감독은 2001년 8월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리고 곧바로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브레멘, 쾰른, 프랑크푸르트 등을 돌면서 선진축구의 노하우를 익혔다. 국내로 돌아와 2003년에 선문대학교 지휘봉을 잡으며 지도자로서 공식적인 첫 발을 내디뎠다. 이듬해 전남 드래곤즈 코치로 활약한 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2년 동안 FC 서울의 코치 직을 맡았다. 그리고 2008년 친정팀인 성남 일화의 유소년팀을 이끌었고, 지난해 2월 풍생고등학교 감독이 되어 현재까지 어린 후배들과 함께 힘찬 전진을 하고 있다.

대학교 감독으로 시작해서 프로팀 코치, 유소년팀, 그리고 현재 고등학교 감독을 맡고 있는 것이 여느 지도자들과는 다른 패턴으로 보였다. 이에 대해 고정운 감독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잘 안 풀렸다고 생각하나"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이어 "지도자 초기 시절에는 빨리 가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내가 경험했던 것들이 정말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소년 시절의 중요성, 그리고 기술이 완성단계에 접어드는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다시 한 번 지었다.

지도자로서 가지는 축구철학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고정운 감독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라는 말을 내놓았다. 사실 그는 선수 시절 우직한 플레이로 인해 '무섭다'라는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많이 인식되어 있었다. 때문에 본의 아니게 억울한 경우도 많이 당했다고 털어놨다. "지도자는 적재적소에 선수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무섭다'는 이미지 때문에 선수들과의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았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무섭지 않다. 무서울 때 무서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더 부드러워지면서 동시에 무서워질 수 있는 그런 감독. '부드러운 카리스마'라고 표현하면 올바를 것 같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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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을 다하면 최고가 된다!

인터뷰 말미에 앞으로의 목표와 팬들에게 한마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고정운 감독은 우선 "최선을 다하면 최고가 된다"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현재 나는 어린 후배들과 함께 축구를 즐기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언젠가는 최고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미래에는 프로 팀 감독도 맡을 것이고, 지도자로서 더 성장해 국가대표팀 지휘봉도 잡을 것이다. 선수 시절처럼 최선을 다하고 시간이 흐르면 최고의 자리에 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지도자로서도 굵은 땀방울을 계속 흘릴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서 고정운 감독은 "아직도 내 팬이 있는가"라면서 손사래를 친 뒤 "항상 실망시키지 않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며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선수 시절 자신의 플레이가 좋지 못하면, 스스로에게 먼저 채찍질을 하고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많이 품었다고 털어놨다. 감독으로서도 마찬가지란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고 선수들이 잘 따라와 주지 않으면, 스스로 먼저 반성하고 자신부터 달라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경기력도 좋고 결과도 좋은 축구를 하고 싶다"는 한 마디에 고정운 감독의 욕심과 목표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인터뷰를 마감하자마자 고정운 감독은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운동장으로 바삐 뛰어 나갔다. 고등학생 선수들과 한데 어울려 미니게임을 펼치면서 땀을 흘리고 고함을 치는 모습에서 그가 원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왔다. 1990년대 K-리거 최고의 선수이자 대한민국 국가대표였던 그가 아직도 그라운드 위에서 진지한 모습으로 구슬땀을 닦아내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도자로서 새로운 도전에 한창인 고정운 감독이 선수 시절 자신의 별명인 '적토마'처럼 정상을 향해 힘찬 전진을 계속 펼쳐나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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