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200.jpg[투데이코리아=한석동 칼럼] 5.16군사정변이 일어난 1961년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82달러, 실업률은 25%였다. 국가재정 자립도 39.2%, 국방비 자립도는 4.9%였고, 나머지를 미국 원조에 의존한 세계 최빈국이었다. 1963년 1인당 소득 100달러에서 출발한 1차 경제개발계획을 기점으로 '개발독재'가 시작돼 1995년 1만달러 소득을 달성하기까지 32년이 걸렸다. 세계 역사에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는 대한민국의 압축경제성장은 그렇게 이뤄졌다.

우리 국민이 그나마 좀 사는 모습을 갖춘 시기는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이다. 그 해 1인당 국민소득 4천40달러.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본격적인 민주화'가 가능할 기준으로 봤다는 4천달러와 맞아떨어진다. 이는 한국 민주화의 분수령으로 기록된 1987년 6.10민주항쟁과도 시기적으로 거의 일치한다.

민주화운동은 압축경제성장 과정에서 나온 필연적 산물이다. 6.10항쟁까지 근 30년 동안의 투쟁은 숱한 희생을 딛고 진행됐다. 민주화 세력은 말 그대로 순수 정의파와, 정권 쟁취가 목적이었던 정치인 및 투쟁을 미래의 정치 발판으로 삼은 대학생 그룹으로 대별할 수 있다.

그 중 상당수는 지금까지도 음지에서 자세를 낮춰 바른 나라 만들기에 헌신하고 있다. 솔직히 민주화투쟁 말고는 뾰족한 선택의 여지가 없던 수많은 직업정치인과 정치지망생은 목표를 뛰어넘어 근대화 과정에서 '삽질'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이 세속적 부귀영화를 한껏 누렸다. 지금도 그런 흐름은 계속되고 있다.

1972-79년의 유신은 민주화투쟁에 대한 또 다른 '반동'이었다. 그 조치가 잘못됐다고 말하거나 그런 사실을 전파하는 것조차 처벌했으니 긴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그럼에도 역대 대통령 중 박정희가 거의 모든 부문, 모든 연령층에 걸쳐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대단한 역설이다. 박정희는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 받아왔다.

박정희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근대화가 그의 업적이 아니라 국민이 흘린 땀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아런 주장은 같은 새대에 우리보다 안팎의 여건이 훨씬 나았거나 비슷했던 나라들을 견줘보면 설득력이 없다. 그것은 민주화가 국민의 암묵적 혹은 열렬한 지지 없이 운동권의 힘만으로 가능했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적어도 경제 측면에서의 국부는 민주화운동과 거리가 멀다. 경제발전에 관한 한 사실상 무임승차해 열매만 나눠가진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이야기다. 이럴진대 '민주투사'가 모든 근대화 주역들을 악의 세력인 양 매도하며 선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것은 오만 몰염치의 극치다.

올 4월 유엔개발계획(UNDP)은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라는 연구보고서를 냈다. 대다수 시민이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독재정부를 용인할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18개국 일반 국민 등 1만8천600여명을 인터뷰한 결과 56.3%가 민주주의보다 경제발전이 중요하다고 응답했으며, 54.7%는 열악한 경제상황 해결을 전제로 민주주의보다 독재를 선호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민주주의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 이는 1970년대 이후 도래한 20여년 민주주의의 불행한 결과물이다.

지금 우리는? 참여정부 집권층과 일부 지지세력을 중심으로 흡사 나라를 거덜내 다함께 가난해지려고 안달하는 듯하다. 갑자기 부자가 된 '죗값'이라도 치르겠다는 건지 도대체 알 수 없다. 그러면서도 국민소득 2만달러 목표는 줄기차게 외치니 보통 헷갈리지 않는다.

과거사 청산 논쟁이 한창이다. 잘못된 역사는 마땅히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유신의 직,간접 당사자들이 현존하고, 더러는 현실정치에 적극 관여하는 마당에 상대 쪽에서 주도하는 일방적 역사청산은 또 다른 모순을 낳을 위험성이 매우 크다. 게다가 이념 정체성 싸움까지. (2004년 8월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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