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중 1명꼴로 4년 만에 또 최대 규모…임금은 '정규직 절반'

[투데이코리아=박 일 기자] 경기 회복으로 일자리는 늘었지만, 비정규직이 더 많이 늘어나면서 일자리 질(質)은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통계청이 내놓은 '2011년 3월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3월 비정규직 근로자는 1년 전보다 5% 증가한 577만1000명을 기록했다.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2007년 3월 이후 4년 만에 다시 최대 규모다.

27일자,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전체 임금 근로자는 44만8000명 늘어났다. 이 중 정규직 근로자는 1.6% 늘어나는 데 그쳤고, 비정규직 근로자는 5% 급증했다. 새로 생긴 일자리 중에서 60% 정도가 비정규직이었던 셈이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급증하면서 전체 임금 근로자 중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1년 전보다 0.7%포인트 증가한 33.8%를 기록했다. 근로자 3명 중 1명이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는 의미다.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비정규직 근로자는 1년 사이 17만명이 증가해 고학력자들도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 4월 청년실업률(15~29세)은 8.7%로 1년 전보다 0.1%P 악화됐다. 정규직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자 고학력 젊은이들은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으로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면서 고용시장이 비정규직 중심으로 굳어지는 모습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국가고용 전략2020' 등 여러 차례 비정규직 근로자 대책을 내놨지만, 기업들이 여전히 비정규직 채용을 선호하며 정책의 약발이 전혀 안 먹히고 있다.

황수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는 건 임금 부담도 있지만, 구조조정을 마음대로 못하기 때문"이라며 "직원에게 책임이 있으면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구조조정 요건만 완화해도 비정규직을 우선 채용하는 분위기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32세의 이모씨는 2004년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과외 아르바이트로 살아간다. 이씨의 목표는 공기업에 취직하는 것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생계를 위해 2년 동안 시간당 1만원을 받는 논술학원 보조강사로 일했다. 또 1년은 출판사에서 교열을 보는 아르바이트로 150만원 정도 벌기도 했다. 결국 지난해 공기업 취업을 포기하고 노무사 자격시험으로 돌아서 요즘 30만원짜리 과외 2건을 하며 60만원으로 살아간다.

비정규직 근로자 중 절반 이상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다. 이씨처럼 비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 중 73.2%가 당장 생계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김모(31)씨는 졸업 후 중견기업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안정적인 정규직이지만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했고 회식에도 꼬박꼬박 불려나가야 했다. 휴일 근무는 일상이었다. 김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보험회사에서 비정규직인 비서로 일하게 됐다.

처음에는 정규직을 찾을 때까지만이라고 생각했지만 벌써 3년째다. 김씨는 "정규직이 그립긴 하지만 개인 시간이 많은 장점도 있다"며 "이젠 어느 정도 체념하고 산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가파르게 늘고 있는 가운데 김씨처럼 스스로 비정규직을 찾아 안주하는 '자발적 비정규직' 근로자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 조사 결과 비정규직 근로자의 48%가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응답했다. 1년 전보다 2.4%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스스로 비정규직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근로조건 만족'(45.1%), 안정적인 일자리'(24.2%) 등의 이유를 꼽았다. 반면 경력을 쌓아 정규직으로 바꾸거나, 취업 준비를 병행하기 위해 스스로 비정규직을 선택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20.3%에서 17.1%로 감소했다. 바늘구멍 같은 정규직을 포기한 대신 스스로 일자리의 눈높이를 낮춘 결과다.

비정규직 일자리의 근로조건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정규직에 비하면 여전히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3월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135만6000원으로 1년 전보다 8.2% 증가했다.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상승률(3.5%)보다 2배 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은 여전히 정규직의 57.3% 수준이다. 이 비율은 1년 전보다 2.6%포인트 높아졌지만 2004년 8월(65%)에 비하면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퇴직금이나 사회보험 등 각종 복지 혜택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중 퇴직금을 받는 비율은 1년 전보다 3.4%포인트 증가한 40.2%를 기록했다. 하지만 정규직(77.9%)에는 한참 못 미친다. 국민연금(39.5%)·건강보험(45.1%)·고용보험(44.1%) 가입률 역시 개선되는 추세지만 정규직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노동조합 가입률도 2.9%로 정규직(15.6%)에 크게 못 미쳤다.

근로자 3명 중 1명이 근로여건이 취약한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고용 형태가 굳어지면서 이들에 대한 보호장치를 두텁게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보장이 어렵다면 사회보험을 넓혀줘야 한다"며 "정부가 나서서 보험료의 일부라도 보존해 주는 게 바람직하며,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국가가 차별적으로 지원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규직과의 임금 차별 해소도 시급한 문제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50~80% 수준만 받는다"며 "동일한 노동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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