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어떤 국회의원은 기사 한 줄에 이름이 오르는 것 보다, '카메오'라도 사진에 출연(?)하는 게 더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유권자에게 얼굴을 자주 노출시켜 인지도를 높이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좀 과장하면 사진 촬영은 정치인의 숙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사진을 잘 받는 정치인을 꼽으라면 최근 범여권 대통합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손학규 전 지사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언제나 카메라 앞에서 함박웃음을 날리는 센스(?)를 지녔다. 특히 지난 '100일 민심 대장정'에서 나온 사진들은 그야말로 '백미'다. 밀짚모자 아래 까맣게 그을린 그의 얼굴을 보며 어떤 이는 '섹시하다'는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정치인들과 종종 인터뷰를 할 때면 어김없이 “사진을 잘 찍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이인제 의원은 인터뷰 도중 스스로 흥분했던 게 걸렸는지 “웃는 사진을 실어달라”고 요구했다. 평소 의원실에서 편한 점퍼 차림의 홍준표 의원은 인터뷰에 앞서 정장으로 갈아입는 수고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요즘 주요 정치 행사에서는 이른바 '포토타임'만 주고 정작 중요한 회담 내용은 '비공개'라는 명목으로 나중에 대리인들의 '브리핑'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간혹 장소가 비좁다는 이유로 몇몇 주요 언론사와 사진 기자만 참석하는 '풀(pool)제'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후 브리핑의 내용이 기자들의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4일 범여권 '대선주자 6인 연석회의'는 6명의 범여권 대선주자가 처음 한 자리에 모여 대통합의 원칙과 방법 등을 논의하는 자리로 언론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대선주자들은 돌아가며 축사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곧바로 '비공개' 회담에 들어갔다. 취재기자들은 못내 아쉬워 더딘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같은 날 김한길, 박상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와 손학규 전 지사의 회동도 마찬가지였다. 63빌딩 백리향에서 가진 3자회동은 10분가량 언론에 공개하고 '진짜' 중요한 내용은 '비공개'로 처리했다. 이날 기자들이 가장 궁금해 한 부분은 '통합민주당이 손 전 지사에게 경선 참여를 요청했는지' 여부다.

그러나 양측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 후 가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국민 대통합의 원칙에 합의했다”, “큰 진전이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기자들의 질문세례가 이어지자 민주당 측 유종필 대변인은 난감한 듯 “배석자가 없었다”며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갔다.

기자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든 잘 된 것이든 독자들에게 온전히 알릴 의무가 있다. 언뜻 공식적인 툴(tool)로 인식되는 '비공개'가 사실은 정치인들이 편리한대로 사안을 규정하려는 수단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방식에 익숙해진 기자들이 어느새 '비공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인들끼리의 시시콜콜한 만남까지 모두 언론에 공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공식적인 행사마저 '포토타임'만 주고 비공개로 처리하는 것은 과잉 방어다. 때론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특히 일각에서 '기득권 싸움'이라고 알려진 범여권 대통합은 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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