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격 영웅 "언제나 언제나처럼 후배들과 함께 할 것!"

[투데이코리아=심재희 기자]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사격이 최고의 성과를 냈다. 금메달 13개, 은메달 6개, 동메달 7개를 따내면서 아시안게임 단일종목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이번 레전드 인터뷰의 주인공은 광저우아시안게임의 영광에 큰 힘을 보탠 인물이다. 바로 사격 국가대표팀 감독 차영철이 초대손님이다. 늦깎이로 사격에 입문해 40대 중반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면서 '불혹의 명사수'로 불리기도 했던 레전드 스타 차영철. 아직도 선수와 같은 뜨거운 마음으로 사격장에 나선다는 차영철 감독을 경상남도 창원 국제종합사격장에서 만나 자신의 사격인생과 한국사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불혹의 명사수

차영철 감독은 대한민국 사격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이야기부터 꺼내자 "실력이 한 발 모자랐다"며 자세를 낮췄다. "1.1점차로 2위를 했습니다. 예선에서 2점차로 뒤졌는데, 사실 결선에서 극복하기 쉽지 않은 점수였죠. 냉정하게 볼 때 실력에서 뒤졌습니다." 아쉬움보다는 은메달에 대한 만족감을 더 진하게 나타내는 차영철 감독이었다. 이어서 그는 "사실 당시(서울올림픽) 분위기가 금메달에 관심이 완전히 쏠렸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 부분 때문에 은메달에 대한 아쉬움이 살짝 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계속 선수생활을 하고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되돌아보니, 올림픽 은메달도 정말 값진 훈장이라는 걸 확실히 느낍니다. 지난 해 독일 뮌헨에서 펼쳐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외국인이 저를 알아보고 사인을 부탁한 적이 있는데, 정말 황홀한 느낌이 들었죠"라며 소탈한 미소를 지었다.

차영철 감독은 대표적인 '대기만성형 스타'다. 24세 때 처음으로 스포츠 사격을 시작했지만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기량을 급성장시키면서 태극마크를 달았고, 오랫동안 세계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서울올림픽 은메달을 비롯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도 2관왕에 올랐다. 또한 1987년 서울월드컵에서는 600점 만점을 쏘면서 최고의 명사수로 떠올랐다. 2004년 은퇴할 때까지 각종 국제대회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불혹의 총잡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40대 중반까지도 선수생활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조카 뻘 아들 뻘 되는 선수들과 함께 멋진 경쟁을 펼쳤다.

20여년 동안의 오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차 감독은 "40세가 넘으면서 오히려 사격에 눈을 더 뜬 것 같았습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경험이 많다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40세를 넘기고 총을 잡으니까 마음이 더 편안했습니다. 너무 긴장하지 않고 너무 풀리지도 않은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한 모습으로 과녁을 조준할 수 있었죠"라며 사격에 완전히 눈을 뜬 모습을 내비쳤다. 47세에 현역에서 은퇴한 차 감독을 향해 "선수생활을 더 할 생각은 없었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사실 선수로 더 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도자의 길이 열릴 기회가 동시에 주어져 지도자 쪽을 선택을 한 거죠. 선수 시절 편안하게 총을 잡던 느낌을 가지고 후배 선수들의 기량을 편안하게 끌어올리고 싶습니다"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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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형님 같은 지도자

차 감독은 2004년 현역에서 물러난 뒤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길에 접어들었다. 자신의 과녁을 정조준 하던 그가 후배들의 과녁을 응시하게 된 것이다. 오랜 선수 생활로 인해 지도자 생활이 조금은 낯설 것 같기도 했다. 선수와 지도자 생활의 차이점에 대해서 물었다. "물론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차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 문을 열었다. "선수 시절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할까요. 기록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한데, 지도자는 달라요.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잘 되는 게 아니에요.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고 함께 전진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며 차이점을 설명했다.

아울러 차 감독은 “지도자로서의 성취감이 선수 시절보다 더 높은 것 같다”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사람이 함께 성공의 길을 걸으면 더 행복해진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부분들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지도자로서 나부터 솔선수범을 보여 정말 더 열심히 하면 선수들도 다 잘 될 줄 알았죠. 하지만 성공하기 위해서는 같이 호흡하는 게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것을 알고 난 뒤에 선수들과 더 많은 부분을 함께 하게 됐고, 함께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기록과 성적이 나왔을 때 정말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근차근 좋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는 차 감독의 모습에서 큰 형님 같은 편안함이 묻어 나왔다.

# 창원월드컵과 런던올림픽

지난 4월 8일부터 14일까지 창원국제사격장에서 월드컵이 펼쳐졌다. 대한민국은 이대명이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를 따냈다. 이번 창원월드컵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차영철 감독은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습니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우선 "세계 무대에서는 메달권에 든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금메달이 나오지 않았지만 메달을 2개나 획득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죠"라며 나름대로 결과가 좋았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어 "이번 대회에서 더욱 초점을 맞춘 것은 올림픽 쿼터 획득이었습니다. 2~3장을 목표로 했는데, 3장의 쿼터를 따냈습니다"라면서 창원월드컵의 성과를 설명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여자 10미터 공기권총의 박민진, 남자 50미터 소총복사의 최영전, 남자 50미터 권총의 김영구가 런던올림픽 쿼터를 따냈다. 이번 대회 쿼터 3장을 더하면서 총 8장의 런던올림픽쿼터를 확보하게 됐다.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의 선전으로 한국사격의 런던올림픽 전망은 매우 밝은 편이다. 광저우에서 드높인 기세를 런던에서도 이어가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한국사격이 승승장구한 원동력에 대해서 물었다. 차 감독은 "사실, 대회 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메달을 많이 딸 수 있는 선수 선발과 대회 준비가 이뤄줬는데, 그 점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면서 최고의 성적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모든 사람들이 합심해서 얻은 결과죠"라면서 지난해 광저우에서 이뤄낸 쾌거를 다시 한 번 되짚었다.

런던올림픽에 대한 목표와 전망 부탁했다. "밝습니다"라는 짧고 명쾌한 대답이 이내 돌아왔다. "베이징올림픽 때와 목표는 비슷합니다. 베이징올림픽 때도 3개의 메달이 목표였는데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조금 의아했다. ‘이전보다 선수들의 기량이 더 나아졌는데 조금 낮게 목표를 잡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 부분을 이야기했더니 차 감독은 "베이징올림픽 때보다 훨씬 더 전력이 좋아졌습니다. 런던올림픽에서 기대되는 3명의 메달 후보가 베이징올림픽보다 더 확실합니다. 다 금메달을 땄으면 좋겠지만, 올림픽에서의 메달 색깔은 신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 열심히 하고 선전을 바라야죠"라면서 희망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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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격의 최대강점

한국사격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가 궁금했다. 관련 질문에 차 감독은 "선수들이 서로 돕는 자세를 보였기에 전체적인 발전이 가능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대표팀 동료들이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고 하면서 같이 발전을 꾀했기에 대표팀 전체가 더 강해졌다는 설명이다. "이전과 비교해보면, 대표팀 선수들의 기량이 상향평준화 됐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기량에서 한발 앞서 있는 선수들이 희생정신을 발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서로 도움을 주면서 선의의 경쟁을 꾸준히 펼쳤기에 여러 종목에서 고른 성적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함께 나아갈 줄 아는 자세가 바로 한국사격의 최대강점이라고 할 수 있죠"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차 감독은 현재 세계최강 전력을 갖춘 나라로 '만리장성' 중국을 꼽았다. 두꺼운 선수층과 인프라 구축으로 막강한 전력을 구축하고 있다는 게 차 감독의 설명이다. "예전에는 (구)소련을 필두로 동구권이 매우 강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이 더 앞서 나가고 있어요. 정말 훌륭한 선수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사격에 대한 열기도 매우 높아서 점점 더 강해지는 느낌입니다."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사격 역시 중국이 막대한 인적 자원을 앞세워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차 감독은 "정식 선수가 몇 천 만 명에 달할 정도니 말 다 했죠"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중국의 파워를 인정했다. 실제로 중국은 창원월드컵에서도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하면서 미국(금메달 1개 은메달 2개)과 유럽세를 제치고 최고의 사격강국의 면모를 또 한 번 과시했다.

아울러 차 감독은 우리의 선수층도 예전보다는 더 두꺼워졌지만 아직 아쉬움이 남는다고 언급했다. "현재 대표팀 인원이 70명 정도가 됩니다. 예전 20~40명 정도일 때보다는 훨씬 많이 나아졌죠. 하지만 중국의 탄탄한 선수층을 바라보면 아직도 많이 부족한 느낌입니다"라며 좀 더 많은 사격 인구가 확보되기를 바랐다. 동시에 그는 이내 한국사격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희망적인 의견도 나타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우리의 최대강점은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이런 점을 배우고 싶어하죠. 중국 지도자들이 ‘어떻게 하면 선수들이 함께 발전할 수 있나’라고 물어오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마도 한국사격이 더 강해질 겁니다"라면서 한국사격의 밝은 미래를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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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언제나처럼

"내가 잘 하려면 내 옆의 동료를 도와줘라." 차 감독은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이 말을 꺼냈다. 함께 발전하는 것이 결국 자신의 발전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후배들이 꼭 가슴에 새기기를 바랐다. 아울러 그는 사자성어 '교학상장'의 의미를 떠올리면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갈 것을 약속했다. 스승은 제자를 가르치면서 더욱 발전하고, 제자는 스승에게 배우면서 성장한다는 참 의미를 확실히 알고 있기에, 자신의 지도자 생활에 ‘교학상장’을 항상 그려 넣고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차 감독은 국가대표팀 감독과 KT 사격단 감독을 겸임하고 있다. 한 팀을 이끄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막중한 두 가지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쉽지 않게 느껴졌다. 그는 ‘1인 2역’에 대한 질문에 명 지도자다운 대답을 내놓았다.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가지는 저의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대표팀에서는 완성된 선수들이 좋은 기록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요. 소속팀에서는 선수들의 기량을 더 끌어올려서 완성 단계에 이르게 하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다른 지도 방향을 설정하고 나아가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큰 도움이 됩니다. 일명 '맞춤형 리더십'을 잘 발휘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할 겁니다." 주어진 역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함께 하는 선수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인터뷰 내내 차 감독의 얼굴에는 계속해서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과거 이야기를 해서 즐겁고, 현재 지도자의 길을 설명해 흐뭇했고, 그리고 밝은 미래를 꿈꾸는 것이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지도자로서의 목표를 마지막 질문으로 던졌다. 그는 또 한 번 편안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한 두 명의 특출난 선수의 선전보다는 팀 전체가 좋은 점수를 낼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게 지도자로서 더 성공하는 것이죠." 화려한 성적표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보다 모든 제자들이 최선을 다해 자신이 가진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게 하겠다는 것이 차 감독의 진정한 목표였다.

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차 감독은 항상 자신의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유지한 진정한 스포츠 스타다. '언제나 언제나처럼'이라는 말을 하면서 즐거운 사격인생을 계속 그려나가는 모습에서 레전드 스타로서의 모습이 확실하게 비쳐졌다. 큰 형님 같은 지도자 차영철 감독이 후배들과 함께 멋진 명중의 순간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나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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