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임요산 칼럼] 보수 주류(主流)가 박근혜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지난 5월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침묵’이라는 제목으로 박 전 대표가 개인적 인기에 안주해 세(勢)불리기에만 힘을 쓴다고 비판했다.
그뿐 아니라 ‘강천석 칼럼’도 ‘박근혜는 더 이상 계모로부터 구박 받는 백설공주가 아니라 힘 센 공주, 기득권 공주’라고 일갈했다.

보수 주류 공동책임론 제기

한나라당이 4·27 재·보선에 참패하고 나서 자중지란이 그치지 않자 두 보수 논객이 나란히 “박근혜, 어게인”을 외친 것이다. 두 사람은 요컨대 국민이 보수를 신뢰하지 않아 한나라당이 좌초할 판이니 박근혜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논조는 곧 보수 주류의 생각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경선에서 조선일보가 박 전 대표를 어떻게 대접했는가를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당시 박근혜 경선 캠프의 좌장이었던 안병훈 조선일보 부사장은 경선 패배 후 “언론이 이렇게 중요한지를 실감했다. 내가 절실한 반성을 했다“고 말했다. 경쟁자 이명박 후보를 조선일보가 일방적으로 편든 데 대한 우회적인 비판이었다. 그랬던 조선일보다.

그런데 박근혜 대망론은 다음 대통령은 박 전 대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 미묘하다. 일단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서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 달라는 요구다. 마치 박 전 대표의 대선 도전에 부과된 의무인 것처럼 들이댄다.
이런 요구는 박 전 대표가 ‘선거의 달인’이라는 믿음에서 나온다. 박 전 대표가 지휘한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늘 이겼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만 맡아 달라” 부탁

4·27 재·보선 강원도와 분당을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한 것은 선거의 여왕이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궁색한 변명까지 뒤따른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박 전 대표가 두 곳을 지원했더라도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선거의 달인이라는 박근혜 신화에 금이 갔을 가능성이 크다. 특정인의 지원 유세가 결과를 바꿀 정도로 박빙의 판세가 아니었던 것이다. ‘선거의 달인=박근혜’라는 보수 세력의 믿음은 미신에 가깝다.

박 전 대표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경우 내년 총선 결과로 탄생할 차기 국회를 상대해야 한다. 내년 총선 결과는 곧 박근혜 정권의 성공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어떻게 임해야 할지는 박 전 대표가 누구보다 더 자각하고 있을 터다.

대선 경선에선 달라질 속셈

그러나 문제는 총선 승리 이후다. 국회의원은 총선에서 살아남기만 하면 갑자기 배짱이 하늘을 찌르는 존재다. 한나라당과 보수 세력 일각은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낙마를 획책하고, 심지어 당을 가르는 것도 불사할지도 모른다. 박근혜 정권보다 야당이 정권을 잡는 걸 더 편하게 여기는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이미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그 같은 상황을 겪었다.

박 전 대표를 전면에 나서게 하려고 ‘당권-대권 분리’를 규정한 당헌을 고치려고도 했지만 박 전 대표의 거부로 결국 무산되었다. 당헌을 고쳐 당 대표가 되더라도 경선에 임박해서는 경쟁자들과 같은 출발점에 서야 한다는 요구를 받을게 뻔하다.

이명박 정부가 잘 되어야 박근혜 정권이 가능하다는 보수일체(保守一體)론은 옳다. 그러나 박 전 대표에게 임기 말 이명박 정권을 위해 총대를 메는 것은 옳지 않다.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명박-박근혜 공동책임론을 들고 나올 빌미가 된다.

한나라당이 정권재창출 바란다면

지금 보수 주류가 박근혜를 갈구하는 것은 당장 배고프다고 씨암탉 잡아먹자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박 전 대표는 대표직이 없더라도 어차피 내년 총선에 정치적 생명을 걸게끔 되어 있다. 대선에서 이기고 총선에서 질 수는 있어도 총선에서 지고 대선에서 이길 수는 없다.
지금과 같은 박근혜 압박에는 박근혜를 흠집 내려는 저의까지 읽힌다.보수 주류에 진정한 정권 재창출 의지가 있다면 이런 식으로 박근혜를 압박해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