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시인 장진성의 6.25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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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한의 6.25와 남한의 6,25를 다 같이 경험한 탈북자이다. 어쩌면 북한에선 6,25가 김일성, 김정일 생일 다음으로 체제 정당성을 강조하는 날이다. 그 이유는 분단의 원인을 미국과 남한에 돌리고, 오늘의 고난까지 그 연장선에서 주민들에게 주입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6월만 들어서도 북한 언론과 방송들은 하루 종일 반미(反美), 반한(反韓) 프로그램들로 적대정서를 고취시킨다.

양민학살을 상징하는 신천대학살기념관으로는 전국에서 찾아오는 방문행렬들이 줄을 잇는다. 직장들과 학교들에서 웅변모임, 토론회, 복수모임, 무훈담강연, 결의대회가 이어지는 6월은 25일 당일엔 절정을 이룬다. 전국의 곳곳에서는 업무를 전폐하고, 반미(反美), 반한(反韓) 강연회들을 진행하며 광장들에선 군중대회들이 열린다. 6월은 공개처형이 제일 많은 공포의 달이기도 하다. 웬만한 죄도 간첩혐의로 몰려 처형되기 때문에 이 달에는 특히 말도 조심해야 한다.

이렇듯 6월을 증오로 꽉 채운 후 7월을 승전의 축제기간으로 승화시킨다. 북한은 휴전일인 7월 27일을 북침을 막아낸 전승절이라고 한다. 이 7월은 그야말로 전쟁노병들의 달이다. 백발의 노인들이 훈패를 달고 거리로 나오면 그들에 대한 우대와 관심은 어디에나 있다. 버스나 지하철에도 노병석, 노병들을 위한 음악공연, TV방송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에서는 노병들이 주인공이다.

이때에는 고급음식점들에서도 당에서 배급된 공짜 음식표를 들고 온 노병들로 초만원이다. 또한 정주년이 되면 전쟁기념 훈패들도 새롭게 제정하며, 김부자체제에 대한 충성을 애국주의로 둔갑시키는 일종의 국민세뇌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남한을 백년숙적으로 규정한 북한의 세월은 이렇게 흐른다.

그래선지 남한에 와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이 전쟁국가인데도 온 국민이 알만한 영웅이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교과서에도 전혀 없다. 오죽하면 6.25가 무슨 날인지도, 남침의 주범이 누군지도 잘 모르는 우리의 아이들이겠는가? 도대체 누구처럼 애국하여야 하며 과연 어떤 행동이 영웅적인가를 묻는다면 그 애들이 합창할 이름이 어디에 새겨져 있는가?

조국을 위해 피를 흘린 세대에 대해 존경할 줄 모르는 이런 예의 없는 전쟁국가는 아마도 세상에 대한민국이 유일하지 않을까싶다. 묻건대 6월의 영웅들이 없었다면 민주열사도 있었겠는가? 월드컵 경기장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던 스포츠애국주의도 결국은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쳤던 전쟁참전자들이 있어 가능했던 과거로부터의 유산이고 성취가 아니었겠는가?

제대로 된 국가라면 애국은 애국이어야 하고, 정치는 정치일 뿐이어야 한다. 그런데 남한은 정치적 애국주의의 나라인 듯하다. 정부의 성향에 따라 6,25가 6,15 뒤에 가려지기도 하고. 그깟 김정일이 뭐라고 민족화해정책 속에 전쟁영웅들이 묻히기도 한다. 그래서 50년대 6월만이 아니라 2000년대 6월의 서해영웅들도 현충원에 조용히 묻혀야만 하는 이 대한민국이다.

하긴 더 말해 뭣하겠는가. 노인표로 출범한 현 정부 들어와서까지도 6,25 남침을 변호하는 부르스 커밍스의 책 “김정일코드”를 번역 격찬한 남성욱씨가 그것도 국가안보의 정예부대라는 국정원 산하 기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정도인데 어떻게 목숨 바친 애국영웅들의 넋이 제대로 위로될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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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성 시인은 북한 김일성 종합대학을 나와 조선작가연먕 중앙위원회 맹원, 조선 노동당 작가를 지내다 지난 2004년 남한으로 왔다. 현재는 북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북한의 3대 세습과 인권 침해를 비판하고 있다. '시를 품고 강을 건너다'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등의 저서가 있다.


출처 장진성 블로그 http://blog.daum.net/nk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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