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석 / 자유기업원 초빙연구위원

얼마 전 동반성장위원회가 초과이익공유제를 제안하자 한나라당에서는 즉각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이윤과 손실은 시장의 효율적인 자원 배분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므로 초과이익공유제는 시장경제의 근간을 해친다는 인식이 다행히 여당 내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정두언, 정태원 의원에 이어 이주영 정책위 의장이 강도 높게 대기업들을 성토하는 과정에서 언급된 것을 보면, 한나라당의 정체성이 모호해진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한나라당의 정체성, “줄푸세”

사실 경제적 자유를 강조하는 한나라당의 우파적 정체성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특히 박근혜 전대표 측의 “줄〮푸〮세”에 잘 드러나 있었다. 이는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치를 “세우자”는 것이었다. 세금을 줄이면 소득 중에서 시민들 각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몫은 늘어난다. 작은 정부는 정부가 세금을 줄이고 정부지출을 줄임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 “줄〮푸〮세”의 정책은 기업가정신을 마음껏 발휘케 해서 행복을 추구할 수단인 부(富)를 늘린다.

정치권이 기업들과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는 전혀 나쁘지 않다. 주지하다시피 아담 스미스가 기업들에 대해 의심을 품는 까닭은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이들이 정부로 하여금 경쟁자들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법률적 진입장벽을 만들게 하거나, 규제를 이용해 뛰어난 경쟁자를 몰아내려고 할지 모르고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의 이익이 침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한 긴장관계를 넘어서서 대기업을 중소기업의 적으로 간주하거나, 신자유주의를 폐기 대상으로 여기고, 감세철회, 증세를 통한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는 것은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흐린다. 극빈층을 보살피려는 것은 무방하다. 그러나 시민들에게 각자의 책임 아래 각자가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행복을 추구할 자유를 최대한 부여하고자 하지 않고, 재분배적 성격의 보편적 복지를 앞세우는 것은 문제다. 감세는 부자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개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소득 가운데 세금으로 내지 않고 스스로 처분할 수 있는 부분을 늘려 자신의 책임 아래 기업가적 창의가 발휘되는 부분을 확대하려는 것이고, 남이 낸 세금으로 지탱되는 공공부문을 줄여 작은 정부를 실천하려는 것이다.

대립적 이분법은 소득재분배정책을 불러내는 틀

--자본가와 노동자,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극화 등 대립적 이분법은 자유보다 결과적 평등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소득재분배라는 정책을 불러내는 틀이다. 대기업의 발목을 잡는다고 납품 중소기업들이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게 아니다. 완성품 자동차가 잘 팔리지 않는 상태에서 자동차 부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 없다. 대기업이어서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도, 중소기업이어서 칭송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기업들이 돈을 번 것이 소비자들의 자발적 선택의 결과였는지 아니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서 남들의 희생 아래 자신에게만 유리한 진입장벽을 만들었기 때문인지가 중요하다.

프레이저연구소의 세계경제자유도와 관련된 연구들에 따르면 경제적 자유가 높을수록, 다시 말해서 세금이 낮고 정부(지출)규모가 작을수록, 그리고 재산권 보장이 잘될수록, 건전한 화폐를 유지할수록, 가격에 대한 규제가 없을수록, 그리고 금융시장, 노동시장과 기업에 대한 규제가 적을수록, 1인당 소득이 높고, 부패가 적으며, 정치적, 시민적 자유를 누리고, 평균수명이 길고 삶에 대한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결과는 소득재분배를 위해 재정지출 규모를 늘리더라도 소득이 더 고르게 분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복지제도가 정부의 복지지출에 의존해 살아가는 계층을 만들어내는 부작용이 있음을 감안하면 이런 결과를 이해할 수 있다.

“줄푸세” 정신은 어디로 갔나

이를 감안할 때, 한나라당이 결과적 평등보다는 경제적 자유를 기치로 내세우는 당이라는 점은 다른 당이 넘볼 수 없는 독보적 장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당과 강원도 등의 보궐선거에서 야당에 패한 다음, 새로 구성된 지도부를 중심으로 한나라당이 반값 대학등록금, 감세 철회를 주장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르고 대기업 때리기로 정치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근시안적 소탐대실이 될 것이다. '작은 강남’이라는 분당에서의 패배가 한나라당에게는 커다란 충격이겠지만, 요즘의 행태를 보면 과연 한나라당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게 한다. 한나라당의 “줄푸세” 정신은 지금 어디서 방황하고 있는가? ■

자유기업원 (www.cfe.org) 제공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