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생활 은퇴하고 인생 제2막 출발선에

인생 제1막이 끝났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다. 나름 뚜렷한 발자국을 남길만한 소득과 성과도 있었다. 이제 2막이 열린다. 고맙게도 많은 이들이 박수와 응원을 보내준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이 기대되고, 설렌다.

프로게이머에서 게임해설가로 옷을 갈아입은 서경종(MBC게임 히어로) 이야기다.

서경종은 지난달 20일 경기를 끝으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에서 공식 은퇴했다. 이제 더 이상 e스포츠 현장에서 그의 아이디 ‘Shark[gm]’는 만날 수 없다. 그의 손에는 마우스가 아닌, 마이크가 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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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가 고개를 들어 잠시 하늘을 바라본다.

“학생 때 어영부영 시작한 게 벌써 10년이나 흘렀어요. 지나고 생각하니 짧지 않은 시절이었네요. 큰 꿈을 안고 프로선수가 되었지만, 우승이나 4강 진출을 하지 못해 아쉬워요. 하지만 게임단 생활을 하면서 사회에 일찍 뛰어든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프로게이머로서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경험했으니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8년간의 프로게이머 생활 마침표를 찍던 이날 경기에서 그는 아쉽게 패배했다. 빠른 저글링부터 히드라리스크 압박까지 초반에는 경기를 우월하게 풀어갔지만, 중반 들어 상대의 매서운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끝내 무릎을 꿇었다.

그는 자신의 ‘고질병’이라고 풀었다.

“처음에는 잘하다가 집중력이 약해지는 게 징크스였어요. 이번에는 그걸 깨면서 은퇴하고 싶어 친구도 안 만나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패해서 아쉬워요. 하지만 상대 팀의 도재욱 선수가 정말 뛰어났어요. 결과를 떠나 제게는 참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현장을 직접 찾아온 팬들에게 미안했다. 경기 후 함께 안타까워하는 팬들의 눈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시큼 달아올랐다. 은퇴경기에서는 화려한 승리의 세리머니로 팬들에게 환한 웃음을 선물하고 싶었던 그다.

하지만 트위터나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많은 팬들이 격려메시지를 보내주어 고마웠다. 서경종은 이날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에 1위에 올라 깜짝 화제가 되기도 했다. e스포츠에서는 그간 흔치 않았던 은퇴경기를 치르기도 했으니 경기장을 떠나는 것은 섭섭하지만, 그만큼 주위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에 가슴 한켠이 찡해졌다.

서경종은 2002년 POS(현 MBC게임 히어로)에 입단하며 POS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을 시작했다. 데뷔 초기에는 당시 최연소 프로게이머로 주목받기도 했다. 2004년 KBC 파워게임쇼 스타크래프트 신인왕전에서 3위를 차지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그는 소속팀이 리그 우승을 차지하던 2006년 시즌을 가장 기억에 남는 해로 꼽았다. 아마추어에서 프로선수로 갓 승격한 21살의 신예였던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억대 연봉의 상대 선수를 연파하며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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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습 중 우연히 발견한 ‘뮤뭉의 창조’ ... 이제는 시청자 눈높이 맞춘 해설가로

그러나 많은 e스포츠팬들이 기억하는 서경종은 ‘뮤뭉의 창조주’다. 뮤탈리스크 11마리와 멀리 떨어져있는 유닛 1마리를 섞어서 쓰는 이 기술은 ‘디파일러의 재발견’ ‘3해처리’ 등과 함께 저그 3대 혁명으로 평가받는다.

그에게 이 기막힌 기술을 어떻게 개발했는지 물었다.

“2006년 초 연습하다가 우연히 발견했어요. 멀리 있는 유닛을 한번 묶어보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발전해 여기에 어떤 원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시도하고 연습했죠. 그리고 선배들에게 말씀드렸더니, 정말 좋은 기술이라며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그게 ‘뮤뭉’이 세상에 알려진 첫 순간이었어요”

그가 개발한 뮤탈뭉치기는 당시 저그족 대표선수였던 박성준에 의해 실전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후 이 기술은 박성준의 특기였던 ‘뮤짤’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저그 전성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정작 서경종은 자신이 개발한 ‘뮤뭉’으로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자신이 1군 무대에 진출해 이 기술을 사용했을 때는 이미 상대의 대응방법이 보편화되어 있었기 때문.

박성준은 지금도 그에게 ‘네가 개발한 기술을 내가 먼저 사용해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경종은 자신이 개발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는 발견했을 것이라며 오히려 칭찬을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겸손해한다.

서경종은 지난해 엘리트 학생복 스쿨리그를 통해 해설자로 데뷔했다. 그사이 ‘@플레이어’ ‘유저의 취향’ ‘컴퍼니오브히어로즈 리그’ 등 다양한 방송에서 활약하며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그는 요즘 발성학원에 다니는 등 좋은 해설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동료 선수들의 경기를 모니터하거나 그간의 영상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일단 네티즌들의 평가는 호의적이다. 발음도 정확하고, 톤도 차분해 방송이 전반적으로 깔끔하다는 평이다. 무엇보다 게임 내용을 시청자들에게 짧은 시간 안에 상세하게 전달하는 것이 그의 장점이다. 정확하고 깊이 있는 경기분석이나 적중 높은 예상능력도 탁월하다.

그는 선수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심리나 입장을 시청자들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가교’역할이 되기를 원한다. 나아가 차분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해설로 e스포츠의 대중화에도 기여하고 싶은 욕심이다. 비록 게이머로서는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최고의 게임해설가가 되겠다는 그의 인생 제2막이 주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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