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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준의 박정희 성공 평가가 잘못된 이유는

    [김정호 / 자유기업원장] 기사입력 2011.07.08 14:08   최종수정 2011.07.0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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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기업원 제공

    장하준 교수는 개발경제학의 세계적 대가로 인정받기 위한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바로 모국인 대한민국이 굶어 죽어 가던 나라에서 몇 십 년 만에 기적적인 성장을 이루어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직접 겪었던 사람으로서 하는 말 인만큼 그 말을 듣는 다른 세계인들은 훨씬 믿음이 갈 것이다.

    장하준은 자신이 직접 겪은 경제성장, 그 중에서도 박정희 시절의 경제성장이 보호 무역과 관치금융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그의 또 다른 히트작 <나쁜 사마리아인>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신자유주의 주도자들은 196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는 기적의 세월 동안 한국이 신자유주의적 경제발전 전력을 추구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한국 정부는 이 기간 동안 민간 부문과의 협의 아래 특정한 새로운 산업을 선택하고 보호관세나 보조금을 비롯해 여러 가지 형태의 정부지원을 통해서 그 산업이 국제경쟁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성숙할 수 있도록 육성했다.(주1)

    사실 장하준의 이런 비판은 국내의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 있다. 한국의 학자들 중에서 60~80년대 박정희 시절을 신자유주의 정책의 시기였다고 말하는 사람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가 비판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자란 World Bank 중심의 정통경제학자들을 지칭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주2)

    대다수 한국인들은 장하준과 같이 관치경제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1989년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경제정책 관련 시민단체인 경실련도 관치경제의 청산을 중요한 활동 목표 중의 하나로 삼았다. 시민단체들은 일반적으로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는데, 그런 시민단체가 관치경제를 박정희 시대의 유물로 보고 청산의 대상으로 삼았을 정도이니 사람들이 박정희 시대를 얼마나 관치경제의 시대로 봤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60년대 이후 20년간을 시장경제의 시대로 보는 한국의 지식인들 중에는 필자와 더불어 KDI 스쿨의 유정호 박사, 민경국 교수, 복거일 소설가 정도다. 기업과 국민들의 경제생활에 대해서 이런 저런 간섭을 한 것이 분명한 박정희 대통령의 시절을 왜 시장경제의 시대라고 보는지 이제부터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 본 박정희 시대

    필자가 박정희 시대를 시장경제의 시대라 하는 것은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경제사에서 박정희의 위치가 중국경제사에서 등소평과 같다고 본다. 지금의 한국 경제와 비교해 보면 중국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생활에 대해서도 통제가 많은 나라이다. 기업을 만들기도 수출, 수입을 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소평이 집권하여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한 1980년대 이후의 중국은 분명 경제적 자유의 시대, 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한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등소평 이후의 시대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즉 80년대 이전의 모택동 시대에서 비해서 자유와 시장의 폭이 크게 확대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등소평 이후의 시대를 자유와 시장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그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새로운 자유 때문에 중국 경제는 연평균 10%의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나는 박정희 시대의 한국이 정확히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 이전에 비해서 경제적 자유와 시장의 폭이 늘었기 때문에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보다 지독한 통제에서 부분적 통제로의 전환이 경제적 자유와 시장을 만들어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이해가 쉬울 수도 있겠다.

    정부의 경제에 대한 통제와 간섭은 조선왕조 500년의 본질이었다.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질서가 바로 그것을 의미했다. 개항 및 한일합방을 거치면서 경제적 자유가 늘어나기 시작하다가 1939년 중일전쟁과 더불어 이 땅의 경제는 철저한 명령경제로 바뀐다. 전쟁 물자 동원을 위해 일제는 조선의 모든 것을 전쟁동원 체제로 전환했다. 기업 활동은 정지되었고, 쌀과 그릇까지 공출의 대상이었다. 생필품의 공급은 배급으로 이루어졌다.

    해방 이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들어섰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과 말은 자유경제, 자본주의가 옳다고 내세웠지만 그것을 실천할 힘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쌀은 정부가 생산자인 농민으로부터 낮은 가격에 공출을 해갔고, 소비자는 정부로부터 배급을 받아야했다. 이자는 시장이율보다 매우 낮은 상태로 규제되었고, 은행 대출도 허가제로 운영되었다.

    무역에 대한 통제는 더욱 심했다.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이 되면서 일본과의 교역은 거의 끊긴 상태였다. 수출과 수입은 허가제로 운영되어 정부의 허가 없이는 어느 것도 하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지나치게 고평가된 원화 가치 때문에 수출은 해 봐야 남는 것이 없는 장사가 되어 버렸다. 이런 상태가 1960년까지 지속된다. 다시 말해서 1939년부터 1960년까지의 20여년 이 땅의 경제는 명령경제, 통제경제, 배급경제, 폐쇄경제였던 것이다.

    박정희가 집권한 직후인 1962년부터 본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 한국경제의 폐쇄성이다. 1962년부터 수출이 급증하기 시작한다. 제일 큰 이유는 환율의 현실화였다. 그 이전까지의 환율은 수출을 기대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낮았다. 그 환율이 차츰 시장환율에 접근해갔고 그것이 수출의 인센티브를 높여 놓은 것이다.

    급기야 박정희 정부는 1964년 수입대체를 근간으로 하던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출촉진으로 바꾸는 내용의 수정계획을 발표한다. 그리고 많은 정책들을 수출촉진에 맞춰 바꾸어간다.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계기로 대일본 수출이 늘어나고 일본의 자본이 한국으로 진출해 기업들을 만들어간다. 그 이전까지 거의 작동하지 않거나 또는 매우 미약하던 시장기능이 그래도 박정희 시절부터 작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서 수출촉진책과 반공정책, 노력동원체제, 중화학공업 육성 등의 정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수출촉진책은 죽은 시장을 살려내는 수단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확대를 두고 정부주도정책의 성과라고들 이야기 한다. 정부가 무엇인가를 했기 때문에 수출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의 작동 과정에 개입한다는 의미에서의 정부주도정책은 아니었다. 수출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기존 정부정책을 완화내지 무력화시키는 차원에서의 정책들이었다.

    이 말의 뜻을 이해하려면 그 이전까지 해왔던 수출입 관련 정책들에 대해서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해방 이후 박정희 시절까지 수출이든 수입이든 거의 길이 막혀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미국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미군정은 1946년 1월과 5월 '대외무역규칙’을 통하여 민간의 자유로운 대외무역과 재산의 반출입을 금지하고 정부의 직접 통제 하에서만 해야 한다는 국영무역의 원칙을 공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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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5년 5월 18일 워싱턴 프레스클럽에서 연설하는 박정희 대통령. ⓒ 국가기록원

    수출입업자는 정부의 면허를 받아야했고, 수출입 상품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수출입 가격은 정부의 사정을 받아야했고, 수입품 판매대금은 강제예치를 해야 했고, 수출품 구입에만 사용해야했다. 그 나마도 당시의 무역은 물물교환 방식, 즉 바터무역으로 이루어졌다.(주3) 이승만 행정부로 주권이 넘어간 후에도 무역에 관한 정책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수출입에 대한 규제는 지속되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수출까지 규제되었다는 것은 뜻밖이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곡물, 비누, 화학약품, 피혁, 가축 등의 품목은 아예 수출 자체가 금지되었다. 그에 못지않게 수출에 장애가 되었던 것은 환율이었다. 당시 한국정부는 공정환율을 최대한 낮게 책정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유엔군 대여금 때문이었다.

    6.25 전쟁에 참전한 UN군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원화자금을 한국정부로부터 대출받은 후 상환은 달러화로 하게 되었다. 한국정부로서는 그렇게 상환 받는 달러화의 규모를 늘리기 위해 최대한 환율을 낮추고 싶어 했다. 그처럼 낮게 책정된 환율이 당시 한국정부의 외화수입을 늘리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수출에는 치명적 장애였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우리나라의 수출입은 모두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가 1959년부터 수출이 늘기 시작하는데, 그 중 1959년의 수출증가는 일시적인 농산물의 수출증가에 따른 것이었다.(주4) 반면 60년 이후의 수출증가는 주로 제조업 제품, 그 중에서도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제품 수출이 늘어난 덕이다.

    1960년 이후의 제조업제품 수출 증가는 정부의 수출촉진정책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문제를 오래 동안 연구해온 KDI 스쿨 유정호 박사의 견해다.(주5) 박정희 집권 직후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이승만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수입대체’를 기조로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관세만 하더라도 1955년 평균 27%이던 것이 1960년대 초에는 오히려 49.5%로 올라간 후 수년간 계속된다. 이런 상태가 '수출촉진’으로 바뀐 것은 1964년 제1차 5개년계획의 보완계획에서부터이다.

    그러면 제조업의 수출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유정호는 환율의 인상을 제일 중요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대미 달러 공정환율의 경우 1960년 2월에 50:1에서 65:1로, 1961년 1월에 100:1로, 1961년 2월에 다시 130:1로 뛰어 오른다. 일 년 사이에 미국 달러에 대한 환율이 160% 상승함으로써 1950년대 내내 지속되던 원화의 과대평가가 거의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고 유정호 박사는 밝힌다. 이는 한국 제품들의 수출경쟁력이 생겨났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수출은 급등세를 보이게 되면 드디어 박정희 정부는 1964년 수출촉진을 경제개발계획의 근간으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흥미로운 것은 환율 인상의 목적이 수출 확대가 아니라 미국 측의 요구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주6) 하지만 의도가 무엇이었든 현실화된 환율은 수출의 인센티브에 불을 붙였고, 그 후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국 수출의 역사가 펼쳐진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이렇다. 환율 인상은 이승만 정권 말기부터 장면 정부에까지 걸쳐 일어난다. 그것으로 인한 수출확대효과는 박정희가 집권한 1962년에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그 가능성을 인식한 박정희는 그 후 수출확대를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삼게 된다.

    그리고 수출이 확대됨에 따라 수입도 따라서 늘게 되고,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던 한국은 급속히 확대되고 있던 세계시장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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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 한국은행 온라인 서비스(2008. 10), 유정호 2008에서 재인용.

    개방 선택의 세계사적 의미

    환율 인상을 통한 수출 증가가 5.16 이전에 시작되었다고 해서 한국 현대경제사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기여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비록 우연히 시작된 수출증대 현상이었지만, 그것을 보고 경제정책의 방향을 수출촉진으로 바꾼 것은 당시 세계사적 흐름에 비추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945년을 전후해서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에서 독립을 한다. 중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신흥독립국들이 소위 경제적 주권을 갖게 되면서, 가장 먼저 착수한 조치가 나라의 문을 닫고 수입대체를 통한 자급자족 정책을 추진한 것이었다.

    자급자족이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자신을 지배하던 선진 자본주의국가는 국제 교역을 통해 자신들을 착취한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급적 자본주의 선진 국가들과 거래를 하지 않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인도의 위대한 영혼, 간디가 영국 면직물의 수입을 막기 위해 직접 물레를 돌린 것은 신생독립국 주민들의 심리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프레비시 같은 남미 학자들의 종속이론은 수입대체와 자급자족 정책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그런데 박정희의 한국은 수입대체를 통한 자급자족이 아니라 수출지향형 개방정책을 택한 것이다. 또한 굴욕외교라는 오명을 써가면서 국교 정상화를 통해 일본과의 교역을 시작한다. 신흥독립국 중에서 1980년대까지 수출지향형 개방정책을 쓴 나라는 한국과 더불어 홍콩, 싱가포르, 대만의 4개국이다. 그리고 이들 나라는 기적적인 경제발전에 성공한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민족적 자존심을 버리고 내린 개방 결정이 기적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이다.

    수출드라이브 정책은 정부의 개입인가?

    우리는 박정희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정부가 개입한 정책으로 여길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을 정부 개입이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정희 정권 초기의 수출촉진책들은 오히려 수출에 장애가 되는 정부정책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환율이 현실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낮은 상태였다. 암달러시장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이다. 거기에 덧붙여 수입에 대한 엄격한 제한도 수출을 제약하는 요인이었다. 수입을 제한하면 그것과 경쟁관계의 국산품을 쓰는 수출산업의 경쟁력은 낮아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수입제한은 수출억제 효과를 동시에 가지는 것이다.

    한국의 국내시장은 관세 비관세 장벽으로 '보호’를 받아왔기 때문에 그로 인해 수출경쟁력 역시 낮은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수출촉진책들은 선진국 제품들에 대한 한국 수출품들의 약한 경쟁력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다. 김광석과 웨스트팔의 연구에 의하면 박정희 당시 수출촉진책의 효과는 보호주의 수입정책으로 인한 수출저해효과를 거의 정확히 상쇄해주었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기존의 수입억제 정책들과 비현실적인 환율로 인해서 한국 제품의 수출경쟁력이 낮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부가 채택한 수출촉진책들은 낮아져 있던 한국 제품의 경쟁력을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려 놓았고, 그것이 수출의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주7)

    네 마리 용의 권위주의 체제와 시장경제

    한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이 네 나라는 개방정책을 택했다는 것 말고도 권위적인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같다. 홍콩은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국 총독의 통치 하에 있어서 정치적 자유가 전무했다. 박정희와 장개석과 이광요 역시 독재자였다. 그것과 경제성장은 어떤 관계를 가졌던 것일까.

    신생독립국들이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정치적 혼란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문제가 치안부재와 내전이다. 그런 사정은 네 마리의 용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었다.

    우리나라 역시 수많은 세력들이 서로 으르렁 거리고 있었으며, 직장 내에서 조차도 노동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정상적인 법질서를 위협하는 요소가 도처에 깔려 있었다. 그렇게 될 경우 시장경제의 기본인 사유재산권과 계약의 안정성은 보장될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노사 간의 계약이라는 것이 의미를 가지기가 어렵다. 이 네 나라의 공통점은 어떤 식으로든 직장 내에서의 정치투쟁을 막아냈다는 것이다.

    박정희 역시 반공이라는 국시를 통해 집단행동과 정치논리로 점철될 수 있는 직장 내 질서를 계약에 의해서 작동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조치가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직장 내에서의 정치투쟁이 아니라 생산 활동에 전념할 있었을 것이다. 또 생산성 높은 근로자들이 많은 보상을 받고 짧은 시간 내에 승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근로의욕이 작동할 수가 있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사람들은 박정희 시대의 그 같은 상황을 노동탄압이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생산현장이 정치투쟁의 장으로 바뀌는 것을 막는 조치였던 셈이다. 그로 인한 생산성의 증대는 노동자들에게 전반적 임금 상승이라는 열매를 가져다주었다.

    박정희가 했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나 노동운동 탄압 같은 조치는 시장의 작동을 가능하고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는 조치였던 셈이다.

    본격적 시장 개입은 실패로 끝났다

    박정희 시절 진정한 의미의 대규모 시장 개입이라고 불릴만한 정책은 1973년부터 시작된 중화학공업 투자와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금융지원이었다. 그러는 만큼 나머지 산업들에 대한 자금공급이 줄어들게 되고 전반적인 성장률 저하가 나타난다.

    1960년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이 모든 산업에서의 수출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이었던 데에 비해 중화학공업 정책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수출촉진보다는 해당 산업들의 보호에 더욱 힘을 쏟게 된다. 그 결과로 수출의 전반적이 감소가 초래된다.(주8) 1973년부터 시작된 정부 주도의 무리한 중화학공업투자로 인해 자본의 생산성은 급격히 낮아졌고, 급기야 1979년 4월 경제안정화종합시책을 발표함으로써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기에 이른다.

    박정희와 시장경제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들은 여러 가지의 상반된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는 개방정책을 쓰고 노동운동을 억제해서 시장의 원리가 작동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중화학공업으로 잘못된 투자를 유발했고 고교평준화를 강행했으며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해서 의료의 사회주의화를 시작한 장본인이다. 그린벨트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도시토지의 공급부족을 초래했고 그 결과 높은 땅값과 집값의 단초를 제공했다. 세상 어떤 자본주의 국가도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그린벨트 제도처럼 엄격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상반되고 혼란스러운 여러 가지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의미는 그 이전과의 비교를 통해 평가되어야 한다.

    정조의 신해통공과 등소평의 개혁개방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미미한 경제자유화 조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당시 그 사회에서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든 자유화조치였다. 박정희 시대도 마찬가지다. 500년을 이어져온 사농공상의 신분질서, 미군정과 이승만 시절까지 이어진 중일 전쟁 이후의 명령경제체제를 극복하고 훨씬 더 많은 시장이 작동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박정희 때이다.

    박정희의 성공은 장하준 교수가 말하듯이 보호무역이나 관치 금융, 경제개발계획 같은 것이 아니라 개방과 시장, 계약 같은 것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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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하준(이순희 역), 나쁜 사마리안인들: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부키, 2007, p. 32
    2. World Bank, The Asian Miracle: Economic Growth and Public Policy,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3. 이대근, 해방 후-1950년대의 경제: 공업화의 사적 배경 연구, 삼성경제연구소, 2002, pp. 123-24.
    4. J. Yoo, How Koreas Rapid Export Expansion Began in the 1960's: The Role of Foreign Exchange Rate, Working Paper 08-18, KDI School of Public Policy and Management, 2008.
    5. Yoo(2008).
    6. Yoo(2008), p. 19
    7.김광석·웨스트팔 (공저), 『한국의 외환 무역정책』, 한국개발연구원, 1976
    8. 유정호(2009), pp. 8-14.

    [김정호 / 자유기업원장 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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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성칼럼] ‘N번방’ 그들만 악마일까
  • 김재성 논설주간|2020-04-01
  • 한국 YMCA가 ‘N번방’ 사건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lt;여성과 아동·청소년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의 인권침해를 오락과 유희, 자기 이익의 제물로 삼는 일탈적 문화의 확산이다. 이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불거진 사건이 아니다. 기생관광, 성매매 집결촌, 버디버디와 소라넷, 버닝썬, 웰컴투비디오 등으로 이어진 연장선상에 있다.&gt; 맞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심층에는 우리사회의 삐뚤어진 성의식과 여성비하의식이 깔려있다. 여성을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만 보는 데서 오는 일탈적 문화는 그 연원이 희랍신화로부터 비롯되지만 이번 사건은 한국사회의 천박한 물신주의와 편리성이 극대화된 디지털 문명이 결합한 특이 케이스다. “얘(피해자)는 나에게 약점이 잡혔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을 것이니 가지고 놀아도 된다”며 ‘N번방’ 운영자 일명 박사 조주빈 씨(25)가 처음 들어온 가입자(고객)를 안심시켰다는 이 말에 범죄수법의 사악함, 피해자들이 겪었을 고통, 무엇보다도 이 사건을 결코 흐지부지 넘겨서는 안 되는 심각성이 들어있다. 뭘 어떻게 했기에 신고를 못한다고 장담할까? 반신반의하던 가입자는 잠시 후 자기 몸에 ‘나는 박사의 노예다’라고 새긴 소녀가 등장하는 영상물을 보는 순간 그 말뜻을 실감한다. 그리고 안심한다. 좋은 조건의 알바라는 미끼에 걸려들어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처럼 꼼짝없이 노예가 된 소녀의 알몸 퍼포먼스를 보면서 쾌감을 느끼는 가입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수요가 공급을 낳는다. 제3자가 보면 구토가 날 것 같은 엽기적 포르노를 보는 것으로 지배본능의 만족을 찾는 호색한들이 있기에 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공급이 발생한다. ‘얘는 신고하지 못한다’는 말 속에 함축된 우리사회의 실상도 소름 끼친다. 비밀이 보장되는 커튼 뒤에서 색한으로 변하는 사람이 한둘이라면 별종으로 치부할 수 있다. 농도의 등급에 따라 최고 200만 원의 가입비를 내고 들어온 사람이 20여만 명이라고 한다. 이들은 모두 커튼 밖에서는 멀쩡한 남편, 멀쩡한 동료직원인 것이다. ‘N번방’을 운영한 조주빈 일당만이 악마가 아니라는 뜻이다. 호색한일수록 사실은 여성을 혐오하는 남자라는 역설이 있다. 여성을 대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하거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자발적 복종에 만족을 느끼는 부류라는 말이다. 그 쾌감을 얻기 위해 기 십만 원에서 기 백만 원의 입회비를 아까워하지 않는 남자는 자신의 존재감을 돈을 지불하고 산 여자에게서 확인하는 용렬한 사람들이다. 인간세계가 여자와 남자로 구성된 젠더질서의 오묘한 이치 속에 우발적 성범죄 가능성은 상존한다. 다만 그 경우 개인의 일탈이어서 ‘홀로 있을 때를 삼가라(愼獨)’는 수신(修身)의 강화 외에 달리 묘안이 없다. 문제는 ‘여자는 돈과 권력과 완력에 굴종한다’는 여성 혐오성 믿음에서 나오는 일탈적 문화현상이다. 미셸 푸코의 말을 빌리면 이러한 현상은 자연적인 것도 본능적인 것도 아니고 문화와 역사의 산물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1955년 7월 130여명의 여성을 혼인빙자 수법으로 농락해 놓고 “내가 관계한 여자 중 처녀는 한 명밖에 없었다”고 뻔뻔스럽게 말한 박인수에게 무죄가 선고되었고 &lt;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gt;는 선고이유가 한동안 회자되었다. 50년대 성의식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에게 가할 2차 피해가 걱정이다. 피해자 신상, 문제의 영상물이 유출되지 않도록 단속하는 것은 당국의 책임이지만 ‘너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식의 추가폭행을 가하지 않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 [데스크 칼럼]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러온 변화에 ‘배려’를 더하면
  • 김충식 편집국장|2020-03-30
  • 코로나 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일명 우한폐렴)로 인해 개인의 생활과 사회가 바뀌어지고 있다. 먼저 사람대 사람으로 이어지던 대면영업이 줄어 들고 있고, 개인 위생이 더 철저해 지고 있다. 대면활동이 줄어 들고 있다지만 오히려 온라인 교류는 늘어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야만 했던 일이 온라인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 교육은 온라인 교육이 더 활발해 질 것으로 보인다. 초·중·고·대학 뿐 아니라 일반 학원 및 직장인 교육마저 온라인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앞으로 온라인 교육 뿐만 아니라 AI, VR, IoT 등 4차산업의 총아라 불리는 기술이 더 발전해 갈 것으로 보인다. 또 코로나 19는 개인의 위생을 더 철저하게 하도록 만들고 있다. 비누를 이용하여 물에 30초 이상 꼼꼼히 자주 손 씻기, 기침이나 재채기 후에는 꼭 손을 씻기,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 있을 경우 반드시 기침 예절준수하기, 의료기관 방문 시 마스크 착용하기,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 등을 방문시 마스크를 착용하기 등 간단한 개인 위생이 더 중요시 해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남을 위해 배려다. 배려란 남을 먼저 생각하는 미덕이다. 자신의 상황을 먼저 주장하기보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그리고 나 아닌 타인을 위해 먼저 친절을 베푸는 것이 배려다. 배려는 큰 것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문을 열고 나갈 때 뒤따라오는 이를 위해 잠시 문을 잡아주는 것도 배려다. 이런 작은 친절은 받는 이에게 미소와 함께 작은 감사를 느끼게 할 수 있다. 이런 배려가 쌓인 사회가 선진국이고 잘 사는 국가라 할 수 있다. 혹자는 선진국은 돈이 많은 국가를 생각한다. 물론 돈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격과 타인을 생각하는 배려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국가가 잘사는 나라일까? 또 그런 배려가 없는 국가가 선진국일까? 배려는 돈을 주고 사지 않는다. 배려는 남을 위한 작은 친절, 나만을 고집하고 내 상황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지 않고 타인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존재인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혹자는 남을 배려한다는게 사실 "손해"보는 장사라고 한다. 또 배려가 많아지면 배려를 응당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영악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최근 코로나 19 의심환자들이 자가격리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자가격리 중 여행을 하고 밖에 나와 춤을 추고, 주민들과 커피를 나눠마셨다는 소식이 들린다. 참으로 어이 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자가격리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심각성과 전파성을 생각하면 힘들지라도 자가격리를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맞다. 자가격리 대상자가 외부로 돌아다니고, 여행을 다녀오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기도 한다. 마스크 미착용자에게 물어보니 답답해서란다. 본인이 답답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착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게 배려다. 조금만 늦게, 조금만 남을 위해 살자. 아니, 평소에 단 한시간이라도 남을 위해 살았던 적이 없지 않았던가? 이제 남을 배려하고 조금만 늦게, 조금 적게, 불편해도 남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고 참자. 언젠가 이 또한 지나가지 않겠는가?
  • [박현채 칼럼] 탈(脫)원전과 두산중공업 긴급 대출
  • 박현채 주필|2020-03-27
  • 극심한 자금난에 빠진 두산중공업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1조 원의 긴급대출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두산중공업은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주력산업인 원자력발전과 석탄발전 수주가 급감하면서 실적부진에 시달려왔다. 지난해 5000억 원이 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만도 1조 3800억 원에 달한다. 당장 다음달 27일까지 6150억 원의 외화공모사채를 갚아야 할 정도로 다급하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국가들이 탈원전 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해 당사자간 충분한 토론과 합리적 미래예측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급격하게 탈원전 시책을 추진하다보니 부작용이 산업계 전체를 강타했다. 특히 세계적인 원전 기술을 갖춘 국내 유일의 원전 핵심설비 업체인 두산중공업의 타격이 컸다. 원자로 증기발생기 등 신규 수주가 급감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다. 이에 따라 고정비 절감을 위해 명예퇴직을 실시하는 등 강력한 구조조정에 들어갔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어려움이 가중됐다. 원전기업이 몰려 있는 경남 창원시는 원전산업 쇠퇴로 세찬 찬바람을 맞고 있다. 두산중공업 뿐만 아니라 부품을 만드는 협력사에 이르기까지 원전 생태계 전반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체코,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등을 상대로 한국형 원전 수출을 위한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글로벌 발전시장의 포화상태까지 더해지면서 탈원전 돌파구라고 여겼던 원전 수출마저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제는 정부가 탈원전의 대안으로 내세웠던 신재생에너지 업체들까지도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태양광 패널 기초소재인 폴리실리콘 국내 1위 제조업체인 OCI가 국내에서 폴리실리콘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이달 말까지 희망 퇴직신청을 받는 등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한화솔루션도 사업을 철수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중국의 저가 공세 때문이다. 중국 태양광 완제품이 국내산보다 10%정도 싸기 때문에 국내 태양광 설치 업체들이 중국 태양광을 선호한다.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 시책이 결국은 중국 기업들 배만 불려주고 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잉곳·웨이퍼·셀 등 태양광 사업을 시행하던 중소업체들도 줄줄이 도산위기에 몰리며 국내 서플라이 체인 자체가 마비될 위기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또 다른 주축인 풍력발전의 핵심 설비인 터빈 제조기술 역시 덴마크·스페인·미국 등이 주도하고 있다. 국산 풍력 설비는 절반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국내 에너지저장장치(ESS) 업계도 잇단 화재사고 등으로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를 잃었다. 원자력 비중을 낮추고 신재생, LNG(액화천연가스) 의존도를 높여갈수록 전기요금은 인상될 수밖에 없다. 2016년에 12조 원이 넘는 흑자를 냈던 한전은 2018년에 2000억 원의 적자를 낸데 이어 지난해에는 무려 1조 3500여억 원이라는 엄청난 적자를 냈다. 그런데도 정부는 코로나19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사회적 취약계층과 소상공인 등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전기요금 납부를 유예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적자규모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지속되면 전력요금은 2017년 대비 2030년에 25.8%, 2040년에 33.0%까지 인상되고, GDP는 기준 시나리오(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비해 연평균 1.26%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지금은 전기요금 인상을 위한 요금 체계 개편 작업이 멈춰 있지만 언젠가는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어 앞으로 전기요금 급등으로 산업 경쟁력과 국민 생활의 질적 하락이 불가피하게 됐다. 후쿠시마 사고를 일으킨 일본도 원전을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마크롱 정부도 원전 축소 시점을 10년 늦추기로 결정하는 등 프랑스, 영국, 스웨덴 등 유럽 선진국들을 비롯해 대만 등이 잇따라 탈원전 정책 수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젠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독일과 벨기에의 실증 사례는 물론 프랑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완급조절 조치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원전 안전성은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 산업이 경제의 기둥이라는 점도 간과돼서는 안 된다. 정치 논리에 의해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되는 이유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 [권순직 칼럼] 글로벌 경제위기의 공포
  • 권순직|2020-03-25
  •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자 이제는 미증유(未曾有)의 경제위기가 엄습해오고 있다.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고 전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 1929년 대공황(大恐慌) 이후 최대의 대량 실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지구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실업 쓰나미가 각국을 휩쓸것이라는 위기감의 고조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중추인 미국 경제가 코로나 사태로 초비상이 걸렸다. 미국 경제의 심장부인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경제활동이 멈춰섰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각국의 경제도 스톱 상태다. 실물경제가 마비되고 소비활동이 얼어붙으면서 미국에선 매주 400여만 명의 실업자가 쏟아진다. 세계 경제를 견인해야 하는 미국 경제의 갑작스런 침체는 세계경제를 절벽으로 몰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이 ‘대공황’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는 블룸버그의 보도는 심각한 현실을 대변한다. 비상 걸릴 세계 경제의 중추(中樞) 미국 트럼프미국대통령은 지난 21일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난 극복을 위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하는 2조 달러(약2500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내놓는 등 각국이 비상대책을 앞을 다투어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신속하고 큰 규모의 대책을 잇달아 공표했다. 문재인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지난 19일의 제1차 비상경제회의에서는 50조원의 민생금융대책을 발표했다. 코로나 사태로 직격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주 대상으로 한 대책이었다. 이어 24일의 제2차 비상경제회의는 총100조원 규모의 긴급지원책을 제시했다. 이번 대책은 주력 산업은 물론이고 대기업까지 망라하여 사실상 모든 기업을 지원 대상으로 했다. ‘우리나라 기업은 모두 보호하고, 고용불안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다. 지원대상이나 규모 면에서 전무후무한 대책이다. 그만큼 지금 상황이 엄중하며, 정부가 엄청난 위기감을 갖고 있음을 상징한다. 아마 곧 이어 나올 3차 대책에선 당장 생계가 어려운 계층을 포함한 ‘경제절벽’의 국민들에 대한 생계지원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을 안정시키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기업 도산을 막고, 구조조정이나 해고에 따른 대량 실업사태를 억제하려는 정부의 신속하고 광범위한 대책은 일단 환영한다. 이러한 대책들이 정책의도대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상황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이 정부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신속한 정부 대응, 철저한 현장 점검이 관건 정부 비상경제회의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집행되는 지에 대한 철저한 실태파악이 중요하다. 벌써부터 대책은 내놓았는데 관련부서 전화가 불통이고, 집행기관을 찾아가도 몰려든 신청인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해 애를 태운다는 소식이 잇는다. “망하고 나서 지원하면 뭐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와선 안된다. 신속하지 못한 현장대응에 관한 언론보도나 야당의 지적이 못마땅하다면 당국이 직접 현장체크를 통해 대책의 신속하고 철저한 집행을 기해야 할 것이다. 공무원 일손이 부족하다면 ‘현장 점검 알바’를 채용해 활용하는 방안도 강구해볼만 하다. 고령층이나 청년실업자,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 대책도 될 것이다. 정부 정책결정 및 운용시스템도 이참에 재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정부의 특징 중의 하나는 정책 결정과 운용이 청와대 비서실 중심이라는 점이다. 이 시스템 운용은 그간 효율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못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상과 이념을 더 중시하는 비서진이 상위(上位)를 점하고 내각은 하부조직화한 시스템은 능률적이지 않다. 위기 극복 시스템 재점검 필요 정책의 잦은 헛발질과,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의 시행착오가 많았던 것은 현장파악 능력이 앞서고, 행정 노하우가 축적된 내각과 공무원을 하위(下位)시스템에 위치시킴으로서 행정부의 미온과 작동미비를 불러왔다고 보여진다. 큰 정책의 방향을 정할 때는 비서진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집행은 내각 중심의 공무원에게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비상 위기관리 시스템의 재정비도 필요하다. 대통령과 주변 임물 중심의 비상대책회의도 중요하다. 그러나 과거 국제통화기금(INF)사태나 금융위기를 극복한 경험을 살릴 필요가 있다. 당시 활약했던, 지금은 대부분 일선에서 물러난 원로들의 경륜을 활용하면 위기극복에 도움이 되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이 위중한 경제위기를 정치적으로 활용(악용)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역사의 죄인이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럴 리 없겠지만 정부 여당이 코앞에 닥친 총선을 의식해 비상대책을 이용해선 안될 것이다. 야당 또한 오늘의 위기 상황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로 정책의 실기(失機)를 초래해선 안 될 것이다. 여 야(與野) 할 것 없이 위기극복에 숟갈 얹어 표 더 얻으려는 행위를 한다면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빛나는 위기 극복사(克服史 )를 갖고 있다. 민족의 저력이다. 위기에 강하다는 자부심도 있다. 정부와 정치권만 잘해준다면 코로나 위기와 글로별 경제위기 거뜬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 [김재성 칼럼] 무관의 제왕과 기레기
  • 김재성 논설주간|2020-03-25
  • 언론인을 ‘무관의 제왕’으로 칭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언론사가 자사의 영향력을 과시하느라 스스로 ‘밤의 대통령’ 운운했듯이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 말에 담긴 엄중한 뜻을 모른 채 무소불위의 언론권력 쯤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무관의 제왕’은 왕조시대의 사관들에게 공자의 후예’라는 뜻으로 붙여진 명예로운 별칭이다. ‘왜 사관을 공자의 후예라 했는가? 공자가 춘추를 쓰자 당대의 폭군들이 떨었다. 그의 붓 끝에서 임금답지 못한 임금은 강등되었고 권력의 숨은 악은 그 오명이 만고에 전해졌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소왕(素王), 즉 흰옷 입은 왕이었다.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 이처럼 엄중하다는 의미에서 사관을 공자의 후예로 예우한 것이다. 언론인들에게 역사를 담당하는 사관들처럼 영광스러운 별칭을 부여한 것은 춘추필법으로 쓰라는 주문인 셈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눈으로 시와 비를 가리고 한 글자의 촌철(寸鐵)로 거악을 폭로하고 한 줄 문장으로 가려진 선을 표창하라는 뜻이다. 왕조시대 사관들이 춘추필법의 전범으로 삼는 고사가 있다. 서기전 548년, 제(齊)나라 최저(崔杼)가 그 임금 장공(壯公)을 시해한 사건이다. 태사가 이 사건을 ‘최저가 장공을 시살했다’고 사실대로 썼더니 최저가 그 사관을 죽였다. 이에 죽은 사관의 아우가 ‘최저가 장공을 시살하고 이를 기록한 사관을 죽였다’고 썼다. 최저가 사관의 아우도 죽였다. 이번에는 사관의 막내아우가 또 붓을 들었다. &lt;‘최저가 장공을 시살하고 이를 기록한 사관을 죽였다. 사관의 아우가 이를 기록했는데 그 아우도 죽였다’&gt; 이쯤 되자 최저도 어찌하지 못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사(南史)라는 사관이 태사와 그 아우 사관들이 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죽간(竹簡 : 대나무를 쪼개 엮은 묶음)을 들고 달려갔다. 사초에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남사는 도중에 죽은 사관들의 막내를 만나 ‘사실대로 기록하였다’는 말을 듣고 안심하고 돌아갔다. 조선의 사관들은 직필을 천명으로 여겼다. &lt;하늘은 우리 백성이 보는 것으로 보고 우리 백성이 듣는 것으로 듣는다(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gt;는 서경, 태서(泰誓)에 근거한 직업관이다. 조선 태종 때 민인생(閔麟生)이라는 사관이 편전출입을 금지 당하자 감히 임금을 향해 “사관의 위에는 하늘이 있소이다”라고 외쳤다. 사생취의 결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이 기개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춘추대의다. 언론과 권력은 태생적으로 불편한 관계다. 왕조시대만이 아니다. 언론자유를 법으로 보장하는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후에도 특히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들은 언론과 회유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원시적인 탄압을 가했다. 한국 언론의 역사가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점철된 근저에는 지존도 꺾지 못했던 사관의 긍지를 언론의 표상으로 존숭하는 가치관이 있다. 동아·조선투위를 비롯한 숱한 해직기자들의 수난을 딛고 한국의 언론자유는 만개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선배 언론인들이 낭인으로 전전하면서 쟁취한 자유언론의 수혜자들인 오늘의 기자들은 ‘기레기’(기자 쓰레기) 소리를 듣고 있다. “이러다가 ‘한국에서 기자를 비하하는 말’로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될라” 누군가 농반진반으로 한 말이지만 예사로 들을 일이 아니다. 어느 재담가가 만들어 냈을 이 말이 지금은 맘에 안 드는 기자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통용된다. 여기에는 그 말이 현실을 반영하는 부분이 있어서일 것이다. &lt;한국 언론신뢰도 22%, 4년째 부동의 꼴찌&gt;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가 실시한 세계 38개국 언론신뢰도 조사결과다. 춘추필법은 권력에 저항할 때만 적용되는가?
  • 조은경 작가의 귀촌주부다이어리
  • [조은경의 귀촌주부 다이어리]2-16
  • 조은경 작가|2020-03-30
  • 발전과 확대를 거듭해 가던 인간 문명이 한낱 바이러스의 침공을 맞아 처참하게 쪼그라들고 있다. 때는 21세기인데 14세기의 흑사병 시기의 감염이나 가까이는 20세기 초 1차 대전 시에 발병했던 스페인 독감과의 비교가 종종 이루어진다. 아이러니컬하게도 1차 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던 스페인의 언론이 전선에서 발병한 이 독감에 관해 계속 보도함으로써 스페인 방송을 들은 병사들이 그 병을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렀고 그 명칭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전쟁에서 사망한 병사 및 민간인들의 숫자가 2천만 명인데 그 독감으로 사망한 인명이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명에 달했다고 하니 가히 질병의 위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흑사병 또한 인구가 적었던 14세기에 3년에 걸쳐 2천만 명의 희생자를 낸 엄청난 재난이었다. 그 외에도 서구 열강이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딜 때 그들이 가져온 전염병이 면역을 갖지 않았던 원주민들을 초토화시켜 정복을 손쉽게(?) 했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듯 대단한 인명의 손상을 가져온 그 병들에게서 경험을 얻어 현재는 예방 조처와 진단과 치료 등, 과학의 발전으로 사망률은 현저하게 줄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것이다. 그래도 과학이 발달했다 해 놓고 어찌 이 바이러스를 잡지 못 하나, 원망이 생긴다. 물론 인류는 결국 이 바이러스를 퇴치하고야 말 것이지만 문명과 문화의 접점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 코로나 19의 원인으로 실험실에서 고의 또는 사고로 유출되었을 것을 의심하고 있다. 이 추정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젠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또 지구상에서 인구가 더 이상 증가하는 것을 우려하는 어떤 집단(?)의 음모라고 하는 견해도 있는데 그 것 또한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지구별에서의 문명의 발달은 결과적으로 인구 감소 쪽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더 이상 기업에서의 노조와 같은 집단행동은 사라지게 될 지도 모른다. 인간을 대신하는 AI가 인간의 자리를 점차 꿰차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의 급격한 발달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바이러스의 창궐은 과학의 발달 때문에 생긴 나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차라리 과학 또는 의학의 발달이 인류를 살리는 구세주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코로나 19의 백신 약 또는 치료약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이 병의 발발은 지구촌 전체의 문화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개인위생 문제이다. 서구인들이 즐겨하는 인사인 키스와 포옹 및 악수는 점차 사라지고 동양식 절이나 기타 다른 접촉으로의 인사 문화가 자리 잡을 것 같다. 악수는 처음 생길 때 손에 무기가 없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였다고 하지만 이제 감염의 제 1 원인으로 기피되어야 할 존재가 되었다. 둘째, 격리 문제이다. 자가 격리에 따르는 고독을 경험함으로써 이제까지의 함께 하고 함께 즐긴다는 –함께-의 미덕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나타나게 되었다. 고독이 인간 고유의 특징이자 인문학의 근원으로서 향유해야 할 덕목으로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고독 속에서 건져 올린 문학과 철학의 사유가 깊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실례로 서구 소설의 연원이라 할 –데카메론-도 흑사병 시절에 출현하지 않았는가. 셋째, 경제 문제이다. 유례없는 공포와 격리의 생활 속에서도 인간은 먹어야만 하는 존재이므로 농업의 굳건한 실체를 재확인시켜 주었다. 아울러 농촌 생활까지도 재조명되었다. 도시에서 살다가 자가 격리를 위해서 가까운 친인척들이 사는 시골로 거처를 옮긴 사람들이 많다. 농촌은 상대적으로 인구 밀도가 조밀하지 않고 맑은 공기 속에 있으므로 이번 질병과 같은 호흡기 및 폐 질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고, 사실 그러하다. 옛날 페스트 시절에는 위생조건이 열악한 시골에도 발병이 많았다고 하지만 지금의 농촌 지역은 도시 못지않게 위생 조건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깨끗한 대기 질 뿐 아니라 비타민 D가 풍부한 태양의 빛과 열이 면역력에 도움을 준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고 믿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대로 아마 이 질병은 지나갈 것이고, 이 후에도 인류의 문명은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다. 대기 질에 미세하게 펼쳐져 있는 바이러스보다도 더 작은 나노의 물질들이 전파라는 이름을 타고 세계를 좁혀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질병을 극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의학과 과학의 세계는 한층 더 미지의 세계를 파고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류는 ‘잠깐 멈춤’의 이 시기를 통하여 자연에 대하여 숙고할 시기를 가졌다는 것이다. 이 세계가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라’ 라는 뜻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자연 속에서 생로병사를 경험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할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바이러스나 나노와 같은 마이크로의 세계를 무시할 수 없겠지만 기본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식품, 그 식품을 생산하는 자연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인식을 새로이 한 것이다. 문명의 ‘잠깐 멈춤’의 시간에서도 생명은 그대로 흘러가며 그것은 자연에 기초한다는 것 말이다. 자연은 잠깐이라도 멈추지 않았고 때는 바야흐로 봄이라 천지에는 온갖 꽃들이 만발한다. 그러므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고 산도 가까이 보이고, 아침에 뜨는 태양과 저녁에 지는 석양을 매일같이 친구처럼 대면하고 있는 시골 사람으로서 코로나 19 라는 질병의 만연은 도시 문명에 대한 경종으로 비쳐진다. 그렇게 부러워 마지않던, 도시에 밀집한 고층 아파트의 문명 생활도 그 어떤 위험에 대해서는 취약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던 우려가 현실화 되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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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 [기자수첩]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딜레마’
  • 오 윤 기자|2020-03-26
  • 투데이코리아=오 윤 기자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야권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기자 취재에 따르면 일부 비문계 의원들은 이 대표의 행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이 대표는 최근 열린민주당과의 신경전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지난 25일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정당은 `더불어시민당`이라고 노골적으로 밝혔다. 이 대표는 열린민주당에 대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참칭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친문재인’, ‘친조국’ 색깔을 거리낌 없이 보인 열린민주당에 견제구를 날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열린민주당 비례 2번인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이 대표의 발언에 "'참칭'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라며 "감히 '미래'와 '통합', '한국'을 참칭하다니"라고 했다. 같은 당 김성회 대변인도 논평에서 "이름을 팔고 다닌다는 뜻의 '참칭'까지,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동지로서 안타깝다"고 했다. 청와대도 열린민주당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관계자는 “열린민주당에 출마한 청와대 인사들은 개인적인 행보다. 청와대와 연관 없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하는 게 솔직히 편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이 대표로서는 머리가 아픈 상황이다. 견제구를 날리며 연일 비판한다고 해도 열린민주당은 거침없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26일 리얼미터의 총선 비례대표 정당투표 조사에서 열린민주당 지지율은 11.6%를 기록했다. 더불어시민당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9.1%포인트 하락한 28.9%였다. 정치권은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에 위기가 온 것이 아니냐고 분석이 나오고 있다. 비례정당인 시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에 더 큰 분열이 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총선에서 압승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솔직히 열린민주당과 함께 한다면 지지율로 봤을 때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문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친문 순혈주의’를 강조하는 이 대표의 행보를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이른바 ‘금태섭 사건’ 때문이다. 앞서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 강서갑 경선에서 신인인 강선우 전 민주당 부대변인에게 패배했다. 이를 두고 야권에서는 민주당 ‘친문 벽’에 막힌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금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 몇 안 되는 ‘소신파’로 평가받던 인물이다. 그는 당내 검찰 개혁의 핵심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에 반대하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해왔다. 민주당 당원들은 금 의원에게 출당을 요구했고 ‘비문’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됐다. 비문계 의원들의 따가운 시선과 열린민주당이라는 암초가 더불어민주당의 분열이 될 것이라는 정치권의 관측이 제기되면서 이 대표가 사실상 ‘딜레마’에 빠졌다는 평가다.
  • [기자수첩] 껍데기는 5부제, 알맹이는 예약제
  • 편은지 기자|2020-03-22
  •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일명 우한폐렴)가 국내에 창궐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점점 감소세를 보이며 ‘잡혀가고 있다’는 말이 나오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느낌이 더 드는 요즘이다. 여전히 마스크는 품절이고, 손소독제는 비싸고, 이제는 체온계까지 재고가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구하기 어려워진 생활용품은 단연 마스크다. 한 묶음에 3000원, 한 장에 30원 꼴로 판매되던 필터도 없는 일회용 마스크는 이제 장당 1000원이면 저렴하다는 말을 듣게 됐다. 마스크 가격은 전례없이 치솟았고, 마스크 몇 장을 손에 쥐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길게 늘어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꽤 익숙한 풍경이 됐다. 마스크 수급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정부는 ‘마스크 5부제’라는 대책을 내놨다. 출생연도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 한 명당 2장만 살 수 있다. 추가적으로 마스크가 더 필요한 사람은 공적마스크가 아닌 민간 사업자의 마스크를 살 수 있도록 했고, 가격이 너무 오르지 않도록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러나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면서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허울좋은 대책'이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우선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하면서 민간 사업자들이 판매하는 마스크 가격이 더 올랐다. 기존 마스크 5부제 시행 전만 해도 4000원 선에서 팔리던 KF마스크는 온라인 상에서 최고 1장당 7000원까지 치솟았다. 공적마스크 구매 수량이 2장으로 제한되자 오히려 민간마스크 가격이 더 오른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일주일에 이틀(평일 하루·주말) 간 공적마스크를 구하지 못하면 울며 겨자먹기로 장당 7000원을 호가하는 마스크를 사야한다. 또 당초 마스크 필터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매일 바꿔 써야 한다고 했던 정부는 결국 ‘마스크 재사용 가능’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마스크를 일주일에 2장만 살 수 있게 수량을 제한한 이상, 적어도 3일은 마스크를 재사용해야 한다. 정부는 최근 두 달간 마스크 재사용을 놓고 말을 수차례 바꿨다. 코로나19 창궐 초반만 해도 마스크 필터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하루에 한 번 바꿔써야 한다고 했다가, 갑자기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아니니 양보하는 미덕을 가지라고 했다. 마스크는 똑같은데 재사용 여부는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마스크 5부제 이후 예약받는 약국이 늘면서 정작 당일에 구매가 가능한 사람들이 못사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이다. 일주일 중 평일 단 하루만 구매가 가능해지면서 며칠 전부터 예약을 받는 약국이 늘었고, 사람들은 약국에서 예약을 받아주자 다음 주, 그 다음 주까지 예약을 미리 해놓고 정해진 요일, 원하는 시간에 수령해 가고 있다. 때문에 많은 구매자들은 수요일이 구매 요일이라고 해서 수요일에 갔더니, “어제 예약이 다 찼다”는 말을 듣고 발걸음을 돌린다. 결국 마스크 5부제가 아니라, 마스크 예약제인 셈이다. 식약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마스크 예약제는 약국에서 알아서 하는 일이니 문제없다”고 답했다. 예약이 다차서 당일에 살 사람이 못 사면 다른 약국을 가면 된다고 말했다. 과연 식약처 관계자는 마스크 2장을 사려 출근 시간 1시간 전부터 나와 약국 오픈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예약이 꽉 차 구매하지 못하고, 다른 약국에 가서 또 줄을 서야 하는 느낌을 느껴본 적 있을까. 아니, 애초에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이나 서본 적이 있을까. 마스크 5부제는 결국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 집을 오래 비울 수 없는 육아를 하는 부모들을 비롯한 ‘예약’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쓸모없는 대책이나 다름없다. 스마트폰에서 약국 전화번호를 찾아 예약이 가능한지 묻는 일도, 마스크 알리미 앱을 설치해 확인하는 일도 모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앱 사용이 자유자재로 가능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이렇게 되면 당초 “꼭 필요한 사람에게 마스크가 갈 수 있도록 배려하자”고 외친 정부는, 오히려 ‘스마트폰에 익숙한 사람들이 마스크를 다 사갈 수 있는’ 대책을 내놓은 셈이다. 식약처 관계자가 마스크를 사러 한 번이라도 약국에 들러봤다면, 마스크 단 2장을 구매하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를 안다면 마스크 5부제를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 본다. 대책은 만든다고 다가 아니다. 국민들의 입에서 “마스크 구하기가 편해졌다”는 말이 나오려면, 마스크 구하기가 어려워 지하철 역사에서 나눠준 부직포 마스크 한 장을 한 달 동안 착용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없어지려면, 정부는 조금 더 유심히 살펴보고 이 안에서 생겨나는 미비점을 끊어내기 위해 계속해서 애써야 한다.
  • [기자수첩] 한 달 뒤 타다가 멈춘다
  • 유한일 기자|2020-03-11
  • “타다 베이직 서비스는 한 달 후인 2020년 4월 10일까지 운영하고 이후 무기한 중단할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 VCNC 박재욱 대표 한 달 뒤 타다가 멈춘다. 정부·국회에 눌리고, 택시업계에 치이던 타다가 1년 5개월이라는 짧은 역사를 뒤로하고 도로에서 사라진다. 지난 2018년 10월 8일 VCNC가 타다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 열었던 미디어데이 기사를 다시 찾아봤다. 당시 박 대표는 “타다를 통해 새로운 이동 플랫폼을 제공하면서 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세계적 추세인 모빌리티 혁신을 국내에서도 이뤄내겠다는 젊은 사업가의 꿈은 허망하게 짓밟혔다. 타다 사태는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타다라는 신산업과 택시라는 구산업이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빚어진 마찰은 신문의 산업면, 사회면, 정치면을 넘나들며 대중들에게 전해졌다. 그만큼 타다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고립된 채 아슬아슬한 주행을 이어왔다. 타다가 멈추는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 이른바 ‘타다 금지법’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개정안은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 승합차 대여 시 기사 알선 범위를 관광목적으로 6시간 이상, 대여·반납 장소를 공항이나 항만으로 제한하는 게 골자다. 주로 도심에서 단시간 이용하는 타다 베이직은 불법에 해당한다. 이 법이 타다 금지법으로 불리는 이유다. 또 플랫폼 운송사업자는 운행 차량 대당 일정 기여금을 내야한다. 국토부가 구상한 기여금 규모는 개인택시 면허 시세, 이른바 ‘넘버값’인 8000만 원쯤으로 알려졌다. 타다가 현재 운용 중인 차량은 1500대 수준이다. 변수가 있겠지만 단순 계산으로 해본다면 1200억 원이 필요하다. 지난해 매출액이 300억 원에 불과한 타다에게 ‘돈 없으면 나가라’는 뜻이다. 국회 본회의에 오른 타다 금지법은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통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벽을 넘은 개정안은 본회의에서 대다수 의결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타다 금지법이 통과됐을 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첨예한 갈등과 압박에도 혁신이라는 의지로 버텨온 타다의 바퀴가 빠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정부와 국회는 이 개정안이 타다 금지법은 아니라고 한다.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은 “이 개정안은 타다 금지법이 아니라 플랫폼 운송사업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새로 도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박 의원 역시 “타다 금지법이 아니라 택시 혁신 촉진법”이라고 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주장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을 순 있다. ‘타다는 합법적 서비스’라는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모빌리티 업체들이 너도나도 택시면허 없이 승합차(렌터카)를 활용해 운송행위를 하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는 타다 사태를 넘어선 대혼란이 올 수 있다. 이 혼란을 법 개정으로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이러한 결단을 내린 시기가 찜찜하다. 애초에 당국의 정책 조율로 해결할 문제였던 타다 사태는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무능으로 사법당국까지 넘어갔다. 법원이 타다의 손을 들어주자 정부와 국회가 힘을 합쳐 법 개정에 나섰다. 총선을 약 한 달여 앞두고 말이다. 타다와 택시업계가 충돌하던 지난해 초 뒷짐만 쥐고 있던 정부가 갑자기 ‘일’을 하겠다며 나섰다. 한 언론에 따르면 타다 금지법이 본격 논의되자 국토부 차관은 국회를 찾아 ‘로비전’을 했다고 한다. 총선을 약 한 달여 앞두고 말이다. 타다 금지법 국회 통과로 정치인들은 택시업계 표심에 눈이 멀어 국민 편의를 내동댕이쳤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눈앞의 25만 택시표와 60만 택시가족표(통계청 평균가구원수 2.4명)를 탐내온 정치인들이 타다 금지법을 서비스 질 개선과 혁신 촉진으로 포장한 채 타다를 좌초시켰다. 타다 사태가 선거철을 피해 일어났어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을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은 타다를 지지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타다의 혁신 여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세계적 흐름인 모빌리티 산업을 막았다는 것보다 난폭운전, 승차거부 등 불친절한 택시를 타지 않을 대안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클 수 있다. 타다 금지법이 과연 소비자들의 이동 편의와 택시 서비스 질을 제고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다. 박 의원의 말대로 타다 금지법이 ‘택시 혁신 촉진법’이 될 수 있을지. 정부·국회가 그리는 이상적 그림이 현실로 이뤄진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결과적으로 한 달 뒤 타다는 멈춘다. 다만 타다 금지법을 기획하고 구상하며 찬성표를 던진 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모빌리티 업체들에게 기여금을 받아 택시업계를 달래며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게 진짜 혁신이라고 생각하진 않길 바란다. 혁신은 기존의 관습 등을 바꿀 때 생긴다.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는 얘기를 애써 포장하는 행태는 불신을 키우는 지름길이다.
  • [기자수첩] 코로나로부터 시련을 이겨내 ‘대한민국의 얼’을 실현할 날을 그려본다
  • 이지현 기자|2020-03-06
  • 투데이코리아=이지현 기자 | ‘그칠 때 그치고 행할 때 행하여 움직임과 멈춤이 그 때 잃지 않아 그 道도 밝게 빛난다’ - &lt;얼: 3·1정신 魂讚頌(혼찬송)&gt; ‘그날 얼의 실현’ 중.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통제되지 않는 움직임으로 나은 결과로 전세계가 불안에 떨고 있다. 전보다 집에 자주 있게 되는 요즘, 책 정리하면서 작년 취재 중 만난 분이 주신 책이 눈에 띄었다. 책표지에 ‘3·1대한독립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100주년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쓰여 있다. 저자는 우리선조가 물려준 역사 가운데 아픈 것은 되풀이 하지 않고 개선하며, 기쁘고 즐거운 것은 발전시켜 우리 아들딸들에게 살기 좋은 나라, 다시 태어나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 몫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민족은 3·1정신의 얼과 상해임시정부의 넋으로 빚은 대한민국 정신으로 그 어떤 어려움을 이겨내, 밝고 희망찬 미래를 후손들에게 남겨줄 것을 확신하며 그 만의 몫을 해보려고 머리글에 쓴 내용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 토요일은 3·1절이었나 싶을 정도로 잊은 채 확진자 숫자가 초미의 관심이었다. 동네 상인들도 IMF때보다 2~3배는 더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어디 가서 먹는 것도 편치 않아 빵집을 들르니 빵집의 식빵은 이미 동이 났고, 거리에 식당이나 상점들은 한산하다. 한 어머니는 리듬체조 하는 자녀가 코치와 3주의 러시아 투어를 갔다가 지난 20일쯤 돌아왔다 한다. 그녀는 “딸이 한 주만 늦게 귀국했어도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른다”며 “옆집 러시아인이 머리 검은 애들이 동네를 돌아다닌다며 신고해 간밤에 경찰이 조사 나왔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 당시 확진자가 없었던 러시아의 대응은 이해가지만, 우리 동포는 외국에서 어떤 대우를 받을까 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한국인 입국금지로 공항에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한국인들도 있고, 대구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코로나 가짜뉴스에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신천지 대구교회와 관련된 감염경로를 파악하지도 못한 채 전국 곳곳에서 감염원을 알 수 없는 집단감염 사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감염원을 알지 못하는 집단발명 사례들은 늘고 있어 대구를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2차, 3차 유행 물결이 일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각 지자체에서는 한국에 귀국한 중국인을 콜밴 서비스로 바로 학교로 호송해 접촉자를 최소화 하고 있고, 주민들도 방역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우선 방역체계 정비가 시급하다. 일선에서 애쓰시는 의료진들과 보건당국과 함께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피해를 입은 이들부터 치료하고 전파 위험부터 차단해야 한다. 전세계 5억 명의 학생이 학교를 못가고 있고, 이탈리아는 5일 기준 하루사이 769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인접 국가도 증가하고 있다. 우한폐렴 바이러스 알고리즘을 지형적으로 설명해 바이러스가 때어날 수 있는 기후적 조건이 되면 장소와 관계없이 바이러스를 깨울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곳 어디라도 새로운 바이러스가 창궐했던 바이러스 경력을 지적한 이학박사도 있다. 국내에서 신천지 탓, 정부 탓, 중국 탓이니 운운하고 있을 때 중국이후로 한국, 일본, 이란, 이탈리아와 유럽 각 나라, 미국 등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급속히 퍼져가고 있다. 중국은 확진자가 둔화추세가 되니 과거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된 스페인 독감을 거론하며 다른 나라에 책임을 떠넘기려 하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가 자국에서 생기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하진 않고 있다. 이 사회는 좋은 건 그냥 남들이 좋다니 좋고, 싫은 건 그냥 싫은 그런 이분법적 사고의 병폐를 드러내고 있는 시기인 듯하다. 신문명에 급변하는 시대에 이런 바이러스에 의해 뒤쳐지거나 소외되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의심만이 쌓여가고 있지 않나 돌아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급속도로 확진자가 늘어나고, 사태는 심각해지고 있으나 곳곳에서 훈훈한 지원과 기부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한 개인이 1~2만원 기부하기도 어려운 이 때, 연예인이 100여 만원을 기부하든, 1억 원을 기부하든지간에 각 시민들의 그 작은 정성들이 모여 적재적소에 쓰여 시련을 이길 수 있길 소망한다. 이 사회를 희망과 발전의 나라로 후대에 물려줄 수 있길 기대한다. 서두의 글처럼 그칠 때 그치고 행할 때 행하여 움직임과 멈춤이 때를 잃지 않고, 우리 선조가 그랬듯이 시련을 극복하길 소망한다. 시련(試鍊)은 ‘단련하다’라는 의미가 있고 철을 두드려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 이 때가 아닌가 한다. 참기 어려운 순간을 만나면 더는 일어서지 못할 거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안의 불순물이 제거되고 더욱 단단하고 멋진 모습으로 변한다. 시련이 그렇다. 당장은 포기하고 싶고, 불평과 불만이 생길지라도 시련이 바로 성장의 밑거름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무급휴가로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들과 상인들이 나와 함께 경제부터 수습해 일으킬 수 있는 환경과 각 분야에서 활기차고 정상적인 활동으로 다시 재기할 날을 그려본다. 지난 달에 과잉보도·속보경쟁으로 인해 공포분위기를 조장하거나, 가짜뉴스 및 확실치 않은 부분적 정보 전파로 인한 여론몰이에 기운이 빠졌다면 이제는 바닥을 치고 올라가는 희망적인 소식들이 퍼져나가길 기대해본다.
  • [기자수첩] 금융지주 공격적 M&A에 ‘기대 반, 우려 반’
  • 송현섭 기자|2020-03-02
  • 지난해 사상 최대실적을 기록하고 신사업 준비를 위해 충분한 실탄을 마련한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공격적 인수합병(M&amp;A) 프로젝트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각 금융지주사는 전통적인 은행업 중심의 비즈니스 구조를 벗어나 다양한 수익원을 갖춘 종합금융그룹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비은행 금융사 인수에 나선 상황이다. 하나금융그룹은 최근 교원공제회에서 보유했던 더케이손해보험 지분 인수계약을 맺고 계열사로 편입한다. KB금융그룹은 푸르덴셜생명 인수전에 참여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생명보험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앞서 신한금융그룹은 지난해 오렌지라이프를 인수하는 등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 은행수익 의존도를 상당부분 낮췄다. 아울러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국내시장 여건을 감안해 앞 다퉈 외국 금융사 인수를 통해 해외진출을 추진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동남아를 비롯한 해외 대체시장은 꾸준한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어 매력적인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심지어 금융권 일각에선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해외 금융사 인수에 나설 것이란 소문까지 나올 정도다. 그만큼 수익원 다변화와 해외진출·투자를 위한 금융지주사들의 M&amp;A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반면 충분한 분석과 검토 없는 성급한 M&amp;A는 ‘승자의 저주’를 불러올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도 상존하고 있다. 금융지주사들이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 다른 금융업역에서 안착하려면 계열사들과 시너지를 창출하고 특화된 경쟁력을 토대로 차별화돼야만 한다. 대상이 보험사든 투자금융사나 자산운용사든 상관없이 인수 후 성장·발전을 위한 명확한 전략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걸출한 글로벌 금융 CEO로 유명했던 샌디 웨일이 추진한 수많은 M&amp;A를 통해 성장을 거듭했던 씨티그룹이 실패한 사례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 금융지주사 CEO라면 현재에 안주하거나 시류에 따른 양호한 실적만 믿고 근거 없는 M&amp;A에 대한 환상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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