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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준의 박정희 성공 평가가 잘못된 이유는

    기사입력 2011.07.0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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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기업원 제공

    장하준 교수는 개발경제학의 세계적 대가로 인정받기 위한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바로 모국인 대한민국이 굶어 죽어 가던 나라에서 몇 십 년 만에 기적적인 성장을 이루어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직접 겪었던 사람으로서 하는 말 인만큼 그 말을 듣는 다른 세계인들은 훨씬 믿음이 갈 것이다.

    장하준은 자신이 직접 겪은 경제성장, 그 중에서도 박정희 시절의 경제성장이 보호 무역과 관치금융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그의 또 다른 히트작 <나쁜 사마리아인>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신자유주의 주도자들은 196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는 기적의 세월 동안 한국이 신자유주의적 경제발전 전력을 추구했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한국 정부는 이 기간 동안 민간 부문과의 협의 아래 특정한 새로운 산업을 선택하고 보호관세나 보조금을 비롯해 여러 가지 형태의 정부지원을 통해서 그 산업이 국제경쟁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성숙할 수 있도록 육성했다.(주1)

    사실 장하준의 이런 비판은 국내의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 있다. 한국의 학자들 중에서 60~80년대 박정희 시절을 신자유주의 정책의 시기였다고 말하는 사람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가 비판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자란 World Bank 중심의 정통경제학자들을 지칭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주2)

    대다수 한국인들은 장하준과 같이 관치경제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1989년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경제정책 관련 시민단체인 경실련도 관치경제의 청산을 중요한 활동 목표 중의 하나로 삼았다. 시민단체들은 일반적으로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는데, 그런 시민단체가 관치경제를 박정희 시대의 유물로 보고 청산의 대상으로 삼았을 정도이니 사람들이 박정희 시대를 얼마나 관치경제의 시대로 봤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60년대 이후 20년간을 시장경제의 시대로 보는 한국의 지식인들 중에는 필자와 더불어 KDI 스쿨의 유정호 박사, 민경국 교수, 복거일 소설가 정도다. 기업과 국민들의 경제생활에 대해서 이런 저런 간섭을 한 것이 분명한 박정희 대통령의 시절을 왜 시장경제의 시대라고 보는지 이제부터 그 이유를 설명하겠다.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 본 박정희 시대

    필자가 박정희 시대를 시장경제의 시대라 하는 것은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경제사에서 박정희의 위치가 중국경제사에서 등소평과 같다고 본다. 지금의 한국 경제와 비교해 보면 중국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생활에 대해서도 통제가 많은 나라이다. 기업을 만들기도 수출, 수입을 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소평이 집권하여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한 1980년대 이후의 중국은 분명 경제적 자유의 시대, 시장이 살아나기 시작한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등소평 이후의 시대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즉 80년대 이전의 모택동 시대에서 비해서 자유와 시장의 폭이 크게 확대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등소평 이후의 시대를 자유와 시장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그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새로운 자유 때문에 중국 경제는 연평균 10%의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나는 박정희 시대의 한국이 정확히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 이전에 비해서 경제적 자유와 시장의 폭이 늘었기 때문에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보다 지독한 통제에서 부분적 통제로의 전환이 경제적 자유와 시장을 만들어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이해가 쉬울 수도 있겠다.

    정부의 경제에 대한 통제와 간섭은 조선왕조 500년의 본질이었다.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질서가 바로 그것을 의미했다. 개항 및 한일합방을 거치면서 경제적 자유가 늘어나기 시작하다가 1939년 중일전쟁과 더불어 이 땅의 경제는 철저한 명령경제로 바뀐다. 전쟁 물자 동원을 위해 일제는 조선의 모든 것을 전쟁동원 체제로 전환했다. 기업 활동은 정지되었고, 쌀과 그릇까지 공출의 대상이었다. 생필품의 공급은 배급으로 이루어졌다.

    해방 이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들어섰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과 말은 자유경제, 자본주의가 옳다고 내세웠지만 그것을 실천할 힘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쌀은 정부가 생산자인 농민으로부터 낮은 가격에 공출을 해갔고, 소비자는 정부로부터 배급을 받아야했다. 이자는 시장이율보다 매우 낮은 상태로 규제되었고, 은행 대출도 허가제로 운영되었다.

    무역에 대한 통제는 더욱 심했다.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이 되면서 일본과의 교역은 거의 끊긴 상태였다. 수출과 수입은 허가제로 운영되어 정부의 허가 없이는 어느 것도 하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지나치게 고평가된 원화 가치 때문에 수출은 해 봐야 남는 것이 없는 장사가 되어 버렸다. 이런 상태가 1960년까지 지속된다. 다시 말해서 1939년부터 1960년까지의 20여년 이 땅의 경제는 명령경제, 통제경제, 배급경제, 폐쇄경제였던 것이다.

    박정희가 집권한 직후인 1962년부터 본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 한국경제의 폐쇄성이다. 1962년부터 수출이 급증하기 시작한다. 제일 큰 이유는 환율의 현실화였다. 그 이전까지의 환율은 수출을 기대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낮았다. 그 환율이 차츰 시장환율에 접근해갔고 그것이 수출의 인센티브를 높여 놓은 것이다.

    급기야 박정희 정부는 1964년 수입대체를 근간으로 하던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출촉진으로 바꾸는 내용의 수정계획을 발표한다. 그리고 많은 정책들을 수출촉진에 맞춰 바꾸어간다.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계기로 대일본 수출이 늘어나고 일본의 자본이 한국으로 진출해 기업들을 만들어간다. 그 이전까지 거의 작동하지 않거나 또는 매우 미약하던 시장기능이 그래도 박정희 시절부터 작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서 수출촉진책과 반공정책, 노력동원체제, 중화학공업 육성 등의 정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수출촉진책은 죽은 시장을 살려내는 수단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확대를 두고 정부주도정책의 성과라고들 이야기 한다. 정부가 무엇인가를 했기 때문에 수출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의 작동 과정에 개입한다는 의미에서의 정부주도정책은 아니었다. 수출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기존 정부정책을 완화내지 무력화시키는 차원에서의 정책들이었다.

    이 말의 뜻을 이해하려면 그 이전까지 해왔던 수출입 관련 정책들에 대해서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해방 이후 박정희 시절까지 수출이든 수입이든 거의 길이 막혀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미국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미군정은 1946년 1월과 5월 '대외무역규칙’을 통하여 민간의 자유로운 대외무역과 재산의 반출입을 금지하고 정부의 직접 통제 하에서만 해야 한다는 국영무역의 원칙을 공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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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5년 5월 18일 워싱턴 프레스클럽에서 연설하는 박정희 대통령. ⓒ 국가기록원

    수출입업자는 정부의 면허를 받아야했고, 수출입 상품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수출입 가격은 정부의 사정을 받아야했고, 수입품 판매대금은 강제예치를 해야 했고, 수출품 구입에만 사용해야했다. 그 나마도 당시의 무역은 물물교환 방식, 즉 바터무역으로 이루어졌다.(주3) 이승만 행정부로 주권이 넘어간 후에도 무역에 관한 정책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수출입에 대한 규제는 지속되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수출까지 규제되었다는 것은 뜻밖이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곡물, 비누, 화학약품, 피혁, 가축 등의 품목은 아예 수출 자체가 금지되었다. 그에 못지않게 수출에 장애가 되었던 것은 환율이었다. 당시 한국정부는 공정환율을 최대한 낮게 책정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유엔군 대여금 때문이었다.

    6.25 전쟁에 참전한 UN군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원화자금을 한국정부로부터 대출받은 후 상환은 달러화로 하게 되었다. 한국정부로서는 그렇게 상환 받는 달러화의 규모를 늘리기 위해 최대한 환율을 낮추고 싶어 했다. 그처럼 낮게 책정된 환율이 당시 한국정부의 외화수입을 늘리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수출에는 치명적 장애였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우리나라의 수출입은 모두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가 1959년부터 수출이 늘기 시작하는데, 그 중 1959년의 수출증가는 일시적인 농산물의 수출증가에 따른 것이었다.(주4) 반면 60년 이후의 수출증가는 주로 제조업 제품, 그 중에서도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제품 수출이 늘어난 덕이다.

    1960년 이후의 제조업제품 수출 증가는 정부의 수출촉진정책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문제를 오래 동안 연구해온 KDI 스쿨 유정호 박사의 견해다.(주5) 박정희 집권 직후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이승만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수입대체’를 기조로 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관세만 하더라도 1955년 평균 27%이던 것이 1960년대 초에는 오히려 49.5%로 올라간 후 수년간 계속된다. 이런 상태가 '수출촉진’으로 바뀐 것은 1964년 제1차 5개년계획의 보완계획에서부터이다.

    그러면 제조업의 수출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유정호는 환율의 인상을 제일 중요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대미 달러 공정환율의 경우 1960년 2월에 50:1에서 65:1로, 1961년 1월에 100:1로, 1961년 2월에 다시 130:1로 뛰어 오른다. 일 년 사이에 미국 달러에 대한 환율이 160% 상승함으로써 1950년대 내내 지속되던 원화의 과대평가가 거의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고 유정호 박사는 밝힌다. 이는 한국 제품들의 수출경쟁력이 생겨났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수출은 급등세를 보이게 되면 드디어 박정희 정부는 1964년 수출촉진을 경제개발계획의 근간으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흥미로운 것은 환율 인상의 목적이 수출 확대가 아니라 미국 측의 요구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주6) 하지만 의도가 무엇이었든 현실화된 환율은 수출의 인센티브에 불을 붙였고, 그 후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국 수출의 역사가 펼쳐진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이렇다. 환율 인상은 이승만 정권 말기부터 장면 정부에까지 걸쳐 일어난다. 그것으로 인한 수출확대효과는 박정희가 집권한 1962년에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그 가능성을 인식한 박정희는 그 후 수출확대를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삼게 된다.

    그리고 수출이 확대됨에 따라 수입도 따라서 늘게 되고,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던 한국은 급속히 확대되고 있던 세계시장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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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 한국은행 온라인 서비스(2008. 10), 유정호 2008에서 재인용.

    개방 선택의 세계사적 의미

    환율 인상을 통한 수출 증가가 5.16 이전에 시작되었다고 해서 한국 현대경제사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기여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비록 우연히 시작된 수출증대 현상이었지만, 그것을 보고 경제정책의 방향을 수출촉진으로 바꾼 것은 당시 세계사적 흐름에 비추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945년을 전후해서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에서 독립을 한다. 중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신흥독립국들이 소위 경제적 주권을 갖게 되면서, 가장 먼저 착수한 조치가 나라의 문을 닫고 수입대체를 통한 자급자족 정책을 추진한 것이었다.

    자급자족이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자신을 지배하던 선진 자본주의국가는 국제 교역을 통해 자신들을 착취한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급적 자본주의 선진 국가들과 거래를 하지 않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인도의 위대한 영혼, 간디가 영국 면직물의 수입을 막기 위해 직접 물레를 돌린 것은 신생독립국 주민들의 심리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프레비시 같은 남미 학자들의 종속이론은 수입대체와 자급자족 정책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그런데 박정희의 한국은 수입대체를 통한 자급자족이 아니라 수출지향형 개방정책을 택한 것이다. 또한 굴욕외교라는 오명을 써가면서 국교 정상화를 통해 일본과의 교역을 시작한다. 신흥독립국 중에서 1980년대까지 수출지향형 개방정책을 쓴 나라는 한국과 더불어 홍콩, 싱가포르, 대만의 4개국이다. 그리고 이들 나라는 기적적인 경제발전에 성공한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민족적 자존심을 버리고 내린 개방 결정이 기적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이다.

    수출드라이브 정책은 정부의 개입인가?

    우리는 박정희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정부가 개입한 정책으로 여길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을 정부 개입이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정희 정권 초기의 수출촉진책들은 오히려 수출에 장애가 되는 정부정책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환율이 현실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낮은 상태였다. 암달러시장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이다. 거기에 덧붙여 수입에 대한 엄격한 제한도 수출을 제약하는 요인이었다. 수입을 제한하면 그것과 경쟁관계의 국산품을 쓰는 수출산업의 경쟁력은 낮아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수입제한은 수출억제 효과를 동시에 가지는 것이다.

    한국의 국내시장은 관세 비관세 장벽으로 '보호’를 받아왔기 때문에 그로 인해 수출경쟁력 역시 낮은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수출촉진책들은 선진국 제품들에 대한 한국 수출품들의 약한 경쟁력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다. 김광석과 웨스트팔의 연구에 의하면 박정희 당시 수출촉진책의 효과는 보호주의 수입정책으로 인한 수출저해효과를 거의 정확히 상쇄해주었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기존의 수입억제 정책들과 비현실적인 환율로 인해서 한국 제품의 수출경쟁력이 낮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부가 채택한 수출촉진책들은 낮아져 있던 한국 제품의 경쟁력을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려 놓았고, 그것이 수출의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주7)

    네 마리 용의 권위주의 체제와 시장경제

    한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이 네 나라는 개방정책을 택했다는 것 말고도 권위적인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같다. 홍콩은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국 총독의 통치 하에 있어서 정치적 자유가 전무했다. 박정희와 장개석과 이광요 역시 독재자였다. 그것과 경제성장은 어떤 관계를 가졌던 것일까.

    신생독립국들이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정치적 혼란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문제가 치안부재와 내전이다. 그런 사정은 네 마리의 용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었다.

    우리나라 역시 수많은 세력들이 서로 으르렁 거리고 있었으며, 직장 내에서 조차도 노동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정상적인 법질서를 위협하는 요소가 도처에 깔려 있었다. 그렇게 될 경우 시장경제의 기본인 사유재산권과 계약의 안정성은 보장될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노사 간의 계약이라는 것이 의미를 가지기가 어렵다. 이 네 나라의 공통점은 어떤 식으로든 직장 내에서의 정치투쟁을 막아냈다는 것이다.

    박정희 역시 반공이라는 국시를 통해 집단행동과 정치논리로 점철될 수 있는 직장 내 질서를 계약에 의해서 작동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조치가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직장 내에서의 정치투쟁이 아니라 생산 활동에 전념할 있었을 것이다. 또 생산성 높은 근로자들이 많은 보상을 받고 짧은 시간 내에 승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근로의욕이 작동할 수가 있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사람들은 박정희 시대의 그 같은 상황을 노동탄압이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생산현장이 정치투쟁의 장으로 바뀌는 것을 막는 조치였던 셈이다. 그로 인한 생산성의 증대는 노동자들에게 전반적 임금 상승이라는 열매를 가져다주었다.

    박정희가 했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나 노동운동 탄압 같은 조치는 시장의 작동을 가능하고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는 조치였던 셈이다.

    본격적 시장 개입은 실패로 끝났다

    박정희 시절 진정한 의미의 대규모 시장 개입이라고 불릴만한 정책은 1973년부터 시작된 중화학공업 투자와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금융지원이었다. 그러는 만큼 나머지 산업들에 대한 자금공급이 줄어들게 되고 전반적인 성장률 저하가 나타난다.

    1960년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이 모든 산업에서의 수출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이었던 데에 비해 중화학공업 정책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수출촉진보다는 해당 산업들의 보호에 더욱 힘을 쏟게 된다. 그 결과로 수출의 전반적이 감소가 초래된다.(주8) 1973년부터 시작된 정부 주도의 무리한 중화학공업투자로 인해 자본의 생산성은 급격히 낮아졌고, 급기야 1979년 4월 경제안정화종합시책을 발표함으로써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기에 이른다.

    박정희와 시장경제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들은 여러 가지의 상반된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는 개방정책을 쓰고 노동운동을 억제해서 시장의 원리가 작동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중화학공업으로 잘못된 투자를 유발했고 고교평준화를 강행했으며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해서 의료의 사회주의화를 시작한 장본인이다. 그린벨트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도시토지의 공급부족을 초래했고 그 결과 높은 땅값과 집값의 단초를 제공했다. 세상 어떤 자본주의 국가도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그린벨트 제도처럼 엄격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상반되고 혼란스러운 여러 가지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의미는 그 이전과의 비교를 통해 평가되어야 한다.

    정조의 신해통공과 등소평의 개혁개방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미미한 경제자유화 조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당시 그 사회에서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든 자유화조치였다. 박정희 시대도 마찬가지다. 500년을 이어져온 사농공상의 신분질서, 미군정과 이승만 시절까지 이어진 중일 전쟁 이후의 명령경제체제를 극복하고 훨씬 더 많은 시장이 작동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박정희 때이다.

    박정희의 성공은 장하준 교수가 말하듯이 보호무역이나 관치 금융, 경제개발계획 같은 것이 아니라 개방과 시장, 계약 같은 것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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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하준(이순희 역), 나쁜 사마리안인들: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부키, 2007, p. 32
    2. World Bank, The Asian Miracle: Economic Growth and Public Policy,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3. 이대근, 해방 후-1950년대의 경제: 공업화의 사적 배경 연구, 삼성경제연구소, 2002, pp. 123-24.
    4. J. Yoo, How Koreas Rapid Export Expansion Began in the 1960's: The Role of Foreign Exchange Rate, Working Paper 08-18, KDI School of Public Policy and Management, 2008.
    5. Yoo(2008).
    6. Yoo(2008), p. 19
    7.김광석·웨스트팔 (공저), 『한국의 외환 무역정책』, 한국개발연구원, 1976
    8. 유정호(2009), pp. 8-14.

    [김정호 / 자유기업원장 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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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채 칼럼] 민낯이 드러난 한국의 부품·소재산업
  • 박현채 주필|2019-07-12
  •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계 주요 인사 초청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우리의 외교적 해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대통령이 한·일 무역갈등의 장기화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이 맞불 대응이나 불매운동 등 감정적 대응을 우선하는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외교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기로 한 점은 무척 고무적이다. 지금의 한일 무역분쟁은 관세부과로 대립하는 일반적 무역전쟁과는 달리 상대국 핵심 산업의 필수 중간재 수출을 통제하여 공급망을 붕괴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관세전쟁은 대응할 여지가 있어 어느 정도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중간재 공급을 차단해 생산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분쟁은 경제적 파급효과가 무척 크다. 우리는 최근 수년간 한국산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가전제품 등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면서 마치 1등 산업국가가 된 것처럼 자신감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주요 소재·부품이 주로 일본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번 3대 수출 규제 품목의 일본 의존도도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가 93.7%, 포토레지스트가 91.9%, 고순도 불화수소인 에칭가스가 43.9%에 달한다. 반도체 분야만 보더라도 장비·부품·소재의 국산화율이 절반에 훨씬 못미친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부품·소재산업의 냉혹한 현실이다. 정부는 1990년대 초부터 소재·부품·장비산업 육성 정책을 본격화했다. 국내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하지 않고서는 날로 커지는 대일 무역 역조를 해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술 종속을 영원히 피할 수 없다고 판단,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 전략을 이 즈음부터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한국이 부품·소재 산업에서 영원히 일본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일본에서 제기되자 2001년에 ‘부품소재전문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까지 제정하면서 국산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도 소재·부품의 대일 무역수지는 지금까지 만년 적자 상태다. 부품.소재 장비산업의 국산화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튼튼한 기초과학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성과가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자동차와 디스플레이 등 일부 분야에서 부품.소재 국산화비율을 어느 정도 높일 수 있었고 중국 등지로의 중간재 수출도 많이 늘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실정이 이러하니 일본의 보복에 한국이 수출 규제로 맞대응할 경우 한국이 불리하다고 한다. 최근 발표된 한 보고서는 한국의 맞대응이 강화될수록 한국의 손실 폭은 커지는 반면에 일본은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 이유는 한국 수출기업들의 일본 내 독점적 지위가 일본 수출기업들의 한국내 독점적 지위보다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대일 수출규제를 강화하면 일본은 한국에서 수입하던 물량을 상당부분 일본 내수기업이나 중국 기업 등으로부터 대체 조달할 수 있으나 우리는 그렇게 못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본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일본은 지난해 110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한테는 241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흑자를 냈고 이 중 151억 달러가 소재.부품 분야에서 달성됐다. 우리한테 부품 등을 팔지 못하면 무역적자가 더 커져 일본 경제가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처지이기 때문에 사태의 장기화는 양국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일본의 이번 보복 조치를 계기로 부품·소재·장비 산업 육성을 국가경제정책 최우선 과제로 삼고 예산 등 가용 자원을 총동원, 우리 산업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금명간 부품·소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종합 대책도 발표할 예정이다. 반가운 소식이다. 정부가 국제 경쟁력을 갖춘 부품·소재·장비를 개발하기 위해 앞장서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핵심 소재와 부품 개발이 정부의 의지대로 그렇게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 프리미엄 핵심 소재는 특허 문제로 국산화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산업 특성상 같은 스펙의 제품이라도 거래기업을 변경할 경우 미세한 차이만으로 공정이 불가능하거나 불량이 발생할 수 있는 등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도 많이 걸린다. 과거 남미 국가들이 그랬듯이 경쟁력 강화에는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정부 보조금에만 의존해 이익을 내려는 부실기업이 양산될 수도 있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필자 약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논설위원실장 전)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위원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 [김성기 칼럼]아베의 노림수, 톱다운 방식 담판으로 풀어야
  • 김성기 부회장|2019-07-09
  •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행한 일본이 그 배경을 ‘무역관리’로 제시해 안보와 연관된 민감한 분야를 꺼내들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보복조치를 다각도로 모색하면서 우리 정부를 비난해왔다. 일본은 이미 예고한 대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핵심소재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의 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하는 경제보복 조치를 지난 4일 시행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반도체 업체들은 일본산 소재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고 빠른 시일 안에 국산화하기도 어려운 품목이라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정부는 정치 외교문제를 이유로 한 수출규제는 부당하다며 국제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일본이 억지 논리를 펴가며 절차를 끌어갈 경우 분쟁이 해결되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장담하기 어렵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외에도 추가로 보복조치를 내놓을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대법원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반발을 ‘외교적 결례’나 ‘부당한 간여’로 일축하면서 판결이 나오기 전 박근혜 정부 당시 외교부와 대법원 사이의 의견교환을 ‘사법농단’으로 규정, 적폐청산 대상으로 지목해왔다. 정부는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 일본 전범 기업과 한국 기업이 낸 출연금으로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지난 달 19일 제시했으나 일본은 이를 일축했다. 그후 정부는 일본 반발을 애써 외면하는 자세를 보이다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뒤통수를 맞고 마땅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후속 조치를 걱정할 정도의 수세로 몰렸다. 아베 일본 총리는 한술 더 떠 이번 수출규제 조치와 대북제재의 연관성을 제기해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분쟁을 연상시키려는 듯한 묘한 행보를 보였다. 아베 총리는 일본 후지TV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한국이 대북제재를 잘 지키고 무역관리를 확실하게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가 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 분명한 상황에서 무역관리 규정도 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자민당의 하기우다 고이치 간사장 대행은 앞서 “특정시기에 에칭가스(불화수소)와 관련한 물품의 대량 발주가 급증했는데 이후 한국 기업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군사 전용이 가능한 물품이 북한에 전달됐을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와 업계는 일본 측의 이런 주장을 즉각 부인했다. 국내 업계의 주문량은 그대로 창고에서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며 불화수소가 화학무기 제조에 사용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국내업계는 일본 총리와 자민당 간부가 터무니없는 가짜뉴스까지 유포하며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개입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에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화웨이 제품이 중국 스파이 활동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며 미국이 나서 주요 국가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말도록 촉구하는 것처럼 일본도 북한의 독가스나 화학무기 생산에 전용될 우려가 있는 소재의 수출을 규제한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취하기에 앞서 미국이 개입하지 말도록 설득하기 위한 치밀한 준비를 해온 것으로 보인다. 경제보복이 이달 말 일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지세력 결집을 겨냥한 일시적 조치가 아니라 강경기조가 계속될 수 있다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일본의 움직임은 경제보복 수준이 아니라 중국과 남북관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국제관계에서 자국 입지를 강화하고 한국의 대일본 정책에서 나타나는 강경책을 견제하려는 정치 외교적 공세로 보인다. 수출규제를 극복하려는 민간기업 차원의 자구책이나 WTO 제소 등 국제소송 절차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과의 공조를 끌어내 일본을 압박하고 톱다운 방식의 정상회담을 통해 해법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렇다고 양국 기업간 민간차원의 접촉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기업 경영진들이 나서 공조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정계와 재계 원로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지 않도록 양국 여론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한국-일본, 한국-미국 정상 간 접촉을 통해 해법을 찾는 방안이 효과적이다. 수출규제를 대북제재와 연결시키려는 엉뚱한 시도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확실하게 이를 부인하는 근거를 제시하며 반론을 펴야 한다. 다만 일본 상품 불매운동과 같은 대응방안은 자칫 감정으로 흘러 갈등을 확산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남북관계를 위한 정상회담만으로도 문 대통령이 무척 바쁜 일정을 소화했지만 톱다운 방식으로 일본과의 현안을 풀기 위해서는 피곤을 무릅쓰고 다시 나서야 할 입장이다. &lt;투데이코리아 부회장&gt; 필자약력 △전)국민일보 논설실장,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2013년)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 [데스크 칼럼] ‘퍼스트 아메리카’ 외치는 트럼프와 박용만 회장의 하소연
  • 김충식 편집국장|2019-07-04
  • 도널드 트럼프 美 대통령은 지난 6월 30일 한국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판문점에서 만나기 전 오전에 재계 인사들을 만났다.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권영수 LG그룹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5대그룹을 비롯해 한화, 두산, CJ, SPC 등 대기업 총수 20여명을 30일 오전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만나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조6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신동빈 롯데 회장을 비롯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삼성, 현대차, SK, CJ, 두산 등을 직접 언급하며 대미 투자에 감사의 뜻을 전하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투자에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투자해 준 한국 기업 총수들께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문을 연 뒤 "지금보다 (대미) 투자를 확대하기에 적절한 기회는 없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국 기업들이 대미 투자를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할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참석한 대기업 총수들을 향해 "매우 훌륭한 분들" "천재와 같은 분들"이라고 표현하며 일부 대기업을 호명하며 총수들을 일으켜 세워 특별한 감사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는 대기업 총수들을 치켜세우는 '훈훈한' 간담회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기조를 재확인한 자리이기도 했다. 미국은 지난 1분기(1~3월)에도 경제가 3%를 웃도는 성장세를 이어갔다. 미 상무부는 지난 6월 27일(현지시간)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기 대비 연간 환산 기준 3.1%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발표된 잠정치와 같은 숫자로 로이터가 집계한 시장 전문가 전망치는 3.1%와도 동일하다. 지난해 4분기 미국 경제는 2.2% 성장했다. 미국은 지난 1990년대 10년간 구가했던 최장기 호황을 넘어 이달 7월도 호황을 이어갈 경우 2009년 6월 이후 121개월 연속 경기 확장 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인 3.6%의 낮은 실업률로 곳곳에 일자리가 넘쳐나고 증시도 사상 최고치에 이르고 있어 일반 국민조차 미국 경제가 좋다는 것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체감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경제 성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모토와 어울린다. 대통령은 한국의 기업들에게도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 반면 한국경제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청와대는 거시 지표는 견고하다고 하지만 투자·고용·소비 어느 것 하나 경제 침체를 예고하지 않는 지표를 찾기 힘들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2.6~2.7%로 제시했지만 미·중 무역갈등과 반도체 업황 부진 등이 이어지며 1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0.4%를 기록하는 등 당초 예상보다 악화한 경제 상황에 성장률 전망 역시 하향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국제통화기금(IMF)이 2.6%, 한국은행 2.5%,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4%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18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0%로 5%포인트 내렸고, 골드만삭스도 같은 날 2.1%로 낮췄다. 노무라는 1.8%로 전망하기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발표한 수출입동향을 보면, 반도체 경기는 악화로 월별 수출액이 지난해 12월부터 올 5월까지 6개월 연속 감소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6월 1~20일 수출액이 전년동기 대비 10.0% 감소한 272억700만달러를 기록, 이변이 없는 한 7개월째 수출 감소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물가는 지난달까지 5개월 연속 0%를 기록하며 위축이 이어지고 있다. 메르스 사태로 소비 위축이 컸던 지난 2015년 2~11월 이후 최장 기간 0%대 기록이다. 5월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019억7000만달러로 2개월째 감소했다. 4월 경상수지는 6억6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2012년 4월 이후 7년 만의 적자다. 현 정부의 경제 인식은 “성장에 치중하는 동안 양극화가 극심해졌고, 발전된 나라들 가운데 경제적 불평등의 정도가 가장 심한 나라”가 되어 있다는 문 대통령 연설에 집약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재난적 양극화”에 처해 있거나, 소외 계층을 양산하며, 성장의 과실이 소수에 독점됐다는 걸 보여주는 믿을만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종 지표들은 한국의 소득 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중위권이거나 양호한 편이라는 걸 보여준다. 우리가 고도성장을 하던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소득 격차는 좁혀져 왔으며, 외환위기를 전후한 15년을 제외하고는 직전의 두 보수 정권 아래에서도 양극화는 완화됐다. 지난 6월 수출액은 441억8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13.5% 감소하면서 수출이 7개월 연속 하락세를 나타냈다.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 세계교역 위축, 반도체 및 유화 관련품목 단가 하락 등으로 경제의 한 축인 수출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SNS를 통해 "여야정 모두 경제위기라는 말을 입에 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운을 뗀 뒤 "위기라고 말을 꺼내면 듣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억장이 무너진다"고 글을 시작했다. 아울러 "중국, 미국 모두 보호무역주의로 기울어지며 제조업 제품의 수출이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우리는 여유도 없으면서 하나씩 터질 때마다 대책을 세운다"며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이어갔다. 실제로 이에 종합적인 전략을 갖고 대응해도 모자랄 판국에 땜질식 처방만 내놓는 정부 정책에 답답함을 호소한 것이다. 정부는 기업인들이 활발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경제의 주체가 정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에 올인하는 기업들이 활발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기업인의 기(氣)를 살려주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인식과 우리 정부의 대응방식에 한탄하는 박용만 회장의 하소연에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베짱이들뿐 아닌가 싶다.
  • [권순직 칼럼]전(前) 정권 정책 뒤집기
  • 권순직 논설주간|2019-07-04
  •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전(前)정권이 시행한 정책을 수정 또는 폐기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과거 정부의 잘못이나 흠을 드러내 고침으로서 자신들의 선명성이나 의지를 표명하려 함일 것이다. 선진 외국에서도 전혀 없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의 경우 좀 심한 감이 없지 않다. 문재인 정부 들어 눈에 뜨이는 과거 정부 정책 뒤집기 사례로는 ‘4대강 사업’ ‘위안부 한일(韓日)간 합의 문제’ ‘특목고 폐지’ ‘교과서 수정“ 등이 꼽힌다. 최근 논란이 심한 특목고 폐지와 관련, 특히 전주 상산고 문제가 주목을 끈다. 전북교육청은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재지정 기준 점수를 통상 70점에서 80점으로 대폭 높여 79.61점이라는 매우 높은 점수를 받은 상산고를 재지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 교육청은 대부분 커트라인을 70점으로 운용하는데 유독 전북교육청만 80점으로 강화, 상산고 재지정 탈락을 추진 중이다. 강원도의 민족사관고는 79.77점을 받아 향후 5년간 자사고 지위를 유지 받았다. 전북이었다면 민사고 역시 상산고처럼 탈락한다. 같은 대한민국에서 전북에선 안되고 강원도에선 된다. 왜 이런 사태가 빚어지는가. 우선 특목고 제도에 문제가 있으니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문재인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진보 성향의 민선 교육감들도 이에 동조하기 때문이다.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같은 특목고 시스템에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도를 보완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해보지도 않고 아예 없애겠다는 발상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일부 교육감이나 장관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의 자녀는 외고 과학고 등을 다녀 명문대학에 입학한 사례가 많다니 기가 찰 일이다. 전(前)정권 그림자 지우기보다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로 자사고 폐지는 전정권에서 시행한 제도여서 문제가 많으니 폐지하자는 주장이다. 그 과정에서 정부 정책 취지에 맞춰 적지 않은 사재(私財)를 들여 인재 양성에 나선 사람들의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들의 혼란을 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도 지방교육감은 불도저식 밀어붙이기고, 교육부는 교육감 재량이라며 뒷짐이다. 이명박정부가 의욕적으로 시행한 4대강 사업도 도마에 올랐다. 부작용이 많으니 보를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 이 정부의 방침이다. 일부 강의 경우 주민들의 보 해체 반대에도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박근혜정부에서 일본정부와 합의한 위안부 피해자 보상 관련 문제도 정권이 바뀌면서 폐기됐다. 물론 박근혜정부의 큰 실수였다. 그러나 정부와 정부간의 합의는 합의다.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 의견이라면 폐기할 수 있다. 그러나 절차와 방법 문제다. 외교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처리했어야 옳다. 전정부에서 행한 협상을 지키자는 것이 아니라 수정하든, 폐기하든 외교채널을 가동했어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상대국 정부가 우리 정부를 신뢰하고 외교 행위를 마음 놓고 할 수 있겠는가.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들의 교육은 중요하다. 그들을 가르칠 교과서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 교과서가 이명박정부 때 다르고, 박근혜정부가 다시 고치고, 문재인정부가 또다시 수정하고.. 무슨 이런 나라가 있는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학자들 불러다가 위원회 만들어 교과서를 자신들의 뜻이나 이념에 맞춰 수정하다 보면 학생들은, 아니 국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백년대계,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며 교과서를 만들어 우리의 후세 교육에 나서야 한다. 그러려면 정권 차원에서 교과서를 만들면 안된다. 수정할 필요가 있다면 누가 보아도 존경할 사람들을 모셔 위원회를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이 정권 임기가 지난 먼 훗날에 수정작업을 마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국가 위원회 운용의 권위, 신뢰성 문제 4대강 사업만 해도 시행 당시 타당성조사 위원회도 만들고, 전문가들이 머리 맞대고 궁리한 결과다. 해체 과정 또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결론을 도출했다. 대한민국 전문가인데 이명박정부 전문가 다르고, 문재인정부 전문가 다르다. 국민들은 종잡을 수가 없다. 위원회 운용의 허구성이다. 큰 사업을 착수하거나, 잘못된 사업이나 정책을 수정 폐기하려면 사심(私心)이 배제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권 임기내에 일을 끝내도록 해선 안된다. 과거 정권의 그림자 지우기식 정책 수정은 위험하다. 만에 하나 이 정권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지 못한다 치자. 그럼 다음 정권이 탈원전 정책이나 소득주도성장 정책 등을 모두 폐기하려 들면 어찌할 것인가. 예타(豫妥. 국책사업 예비타당성조사)제도를 무시하고 일부 지방 사업을 시행키로 한 것도 사실 문제다. 타당성도 없는 사업을 특정 지방자치단체장 생색 내주려고, 총선용으로 예타를 면제하고 시행했을 때, 엄청난 국고가 투입되고도 훗날 애물단지가 될 공산이 크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정치인들의 싸움에 국민들 등골 부러진다. 필자약력 (전)동아일보 경제부장, 논설위원 (전)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 기자수첩
  • [기자수첩]'무사안일주의'가 키운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
  • 권규홍 기자|2019-07-07
  • 지난 5월 인천에서 시작돼 한 달 넘게 이어진 ‘붉은 수돗물’ 사태는 환경부 조사에 의해 결국 인재로 드러났다. 또 인천시 공무원들의 기강 해이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발단은 지난 5월 30일 인천광역시 서구 주민들은 수도꼭지에서 붉은 물이 나오자 구청과 인천시에 문제를 제기했다. 인천시는 원인을 알아보겠다고 하고 무려 한달 가까이 이 문제를 방치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주민들의 불만은 커졌다. 집에서는 물을 가정용수로 쓸 수 없었다. 집뿐만이 아니였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제공할 급식을 만들 수 없었다. 학교들은 임시방편으로 생수를 대량으로 구매해 급식을 준비할 수 밖에 없었다.  분노한 시민들 2천여명은 인천 완정역에서 인천시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박남춘 시장은 첫 민원이 제기된지 18일이나 지난 6월 17일 인천시민들에게 공개사과하고 조명래 환경부 장관과 공촌 정수장을 시찰하는 등 뒤늦게 사태 해결에 나섰다.  인천시와 환경부의 공동조사결과 붉은 물은 녹물로 밝혀졌다. 환경부는 이 사건의 원인으로 매뉴얼을 무시한 무리한 공정과 인천시의 안일한 초동대처가 사태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환경부는 공촌정수장에 물을 공급하는 풍납취수장과 성산가압장이 전기 점검으로 가동을 중단하자 인근 정수장물을 수계 전환하는 과정에서 붉은 물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유속이 2배 이상 증가했고, 침전물이 떠올라 혼탁한 물이 상수도로 공급됐다고 전했다.  환경부는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불구하고 인천시의 사전 대비와 미흡한 초동대처가 사건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인천시는 매뉴얼이나 다름없는 ‘국가건설기준 상수도공사 표준시방서’의 원칙을 무시한 채 밸브 조작 위주의 대책으로만 사건을 해결하려했다. 이뿐만 아니였다. 인천시 공무원들은 정수장의 탁도계가 고장난 것도, 원인이 된 수계전환 방식에도 제대로 된 인지가 되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환경부는 현장조사 당시에도 “관련 공무원, 담당자들이 제대로 답을 하지않고 숨기고 은폐하는 등의 모습까지 보였다”며 “인천 수돗물 사태는 100% 인재”라며 인천시 공무원들을 꾸짖었다.  결국 박 시장은 인천 상수도사업본부장, 공천정수사업소장을 직위해제하고 정수장과 배수장, 배수관과 송수관의 정화작업을 실시했다. 이물질 배출 송수관의 방류, 수질 모니터링 등을 강화 하기로 뒤늦게 대책을 세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뒤늦은 땜질 처방에 분노한 인천시민들은 박 시장을 비롯해 이번 사태와 관련한 대부분의 시 공무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붉은 수돗물 사태는 인천을 넘어 서울시 문래동, 양평동을 비롯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과 서면 등지에서도 줄줄이 이어지며 해당 지자체는 일제히 노후 하수도관을 점검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현장 점검을 한 뒤 이번 기회에 서울의 노후화된 하수도관을 대거 교체하겠다며 정부에 긴급 재정을 요청 했다. 공무원, 국민들을 생각하는 ‘행정’ 펼쳐야 환경부가 밝혔듯이 이번 사태는 철저한 ‘인재’다. 공무원들의 안일한 행정이 국민들을 고통에 빠뜨리게 했다.  인천시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몰랐고 사고가 터져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천시민단체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박남춘 시장의 인천시 행정 장악력이 떨어지고 평소에도 꼼꼼하지 못한 행정지도때문에 인천시 공직사회의 기강이 해이해져 붉은 수돗물 사태가 터졌다고 지적했다.  공무원들의 바른 몸가짐과 맡은 일에 대한 근면한 태도는 국가 시스템의 출발점이다. 국민들을 대신해 국가의 일을 처리해야 할 공무원들이 무사안일주의와 복지부동, 그리고 마음에서 부터의 부패는 곧 국가의 패망으로 이어진다.  일찍이 조선시대의 유명한 문신 정약용은 자신의 저서 ‘목민심서’를 통해 공무원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를 지적했다. 정약용은 예제(禮際)를 통해 공무원이 백성에게 화가 미치지 않도록 겸손해야 하며, 수법(守法)을 통해서는 법을 잘 지킴과 동시에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점에 미뤄보면 인천시 공무원들은 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해도 알아보겠다는 말만 내놓은채 시민들의 말을 무시한채 시간만 허비했고, 잘못된 관행이 있었음에도 불구 이것이 잘못된 것인지 조차도 몰랐고 바로 잡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태가 커져 조사가 시작되자 변명과 거짓으로 일관했고 사건을 은폐하려고까지 했다. 공무원들은 국민을 대신해 국가의 일을 하는 직책이다. 자신들이 국민의 머리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아주 대단히 큰 착각을 하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런 공무원들을 일벌백계하여 다시는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날은 갈수록 더워지고 시간은 어느새 한 여름의 한복판으로 달려가고 있다. 물이 없이는 하루도 살수 없는 계절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공무원들의 맹성(猛省)을 촉구한다.   
  • [기자수첩] 5G폰으로 바꿀 생각 있냐는 질문에 ‘싫다’고 답했다
  • 유한일 기자|2019-06-27
  • 최근 퇴근 후 가진 술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5G로 갈아탔어”라며 새 스마트폰을 자랑했다. 5G폰을 이리저리 만져본 기자는 “잘터져?”라고 질문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아니”였다. 5G 서비스는 지난 4월 3일 상용화한 이후 69일 만에 가입자 100만명을 돌파하며 순항하고 있다. 하지만 5G는 출시 초기부터 현재까지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가장 큰 문제는 통신 속도다. 5G 서비스 수신 가능범위(커버리지) 등 통신 품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5G 기지국은 지난 10일 기준 6만1246국(장치 수 14만3257개)이 구축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마저도 수도권 및 전국 주요 도심 일부에만 몰려있다. 아직까지도 뽐뿌 등 스마트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5G가 터지지 않는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껏 5G폰을 구매해놓고 LTE 모드를 사용하고 있다며 울분을 토하는 이용자도 적지 않다. 정부는 5G 전국망 구축 완료 시점을 오는 2022년으로 보고 있다. 전국 어디서나 5G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시점이 약 3년이나 남았다는 뜻이다. 이동통신 3사 역시 올 연말까지 커버리지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결국 연말까지 LTE 수준의 통신을 이용하라는 말로 밖에 안들린다. 특히 5G는 실내에서 더 취약하다. 이통 3사는 이달부터 공항, 역사, 대형 쇼핑몰 등 120여개 건물 내에서 5G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시설 공동구축 작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연말께나 실내 5G 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5G 가입자 100만명 돌파는 내실 있는 서비스 덕이 아니라고 본다. 그 이면에는 초기 가입자를 선점하기 위한 이통사들의 출혈경쟁이 있었다. 지난달 10일 119만원대에 출시된 LG전자의 첫 5G폰 LG V50 ThinQ(씽큐)는 출시 첫 주말부터 일부 판매처에서 가격이 0원으로 떨어지는 꽁짜폰으로 풀렸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빵집’(실구매가가 0원인 곳은 의미하는 은어)의 좌표를 알려주는 게시물이 활개를 쳤다. 심지어 구매자가 돈을 돌려받는 페이백까지 등장해 불법보조금 논란이 일었다. 5G폰에 대한 불법보조금 관련 방송통신위원회의 경고로 시장은 다소 안정화를 찾는 모양새다. 하지만 여전히 5G폰 지원금은 LTE폰 대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기자의 지인 역시 요금제와 통신 속도 문제와는 별개로 단말기 가격에 매력을 느껴 5G폰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통 3사는 서로 5G 속도를 두고 ‘누가 더 빠른가’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요약하면 LG유플러스가 속도 측정 애플리케이션(앱) ‘벤치비’로 측정한 결과 서울 주요지역 50곳 중 40곳에서 자사 5G 속도라 1등을 기록했다고 홍보에 나서자 KT와 SK텔레콤이 “인정할 수 없다”며 발끈한 것이다. 5G 품질에 대한 과제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 이같은 언쟁은 이용자 입장에서 보면 ‘도토리 키재기’다. 최근 업계에서는 올 연말 5G 가입자가 500만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반기 5G폰 신제품이 줄줄이 출격하고 통신사들이 공언한 커버리지 확대 시기와도 맞물려 시너지 효과로 인해 가입자 증가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지금의 5G가 올 연말까지 500만명의 마음을 훔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겠다. 당장 이용자들의 불편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새로운 가입자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5G 통신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상용화 이전부터 어느정도 정보도 받아보고 기사를 작성하며 관심있게 살펴본 기자 입장에서도 5G는 아직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굳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완성되지 않은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5G를 주제로한 대화가 끝날 무렵 지인이 기자에게 물어봤다. “5G폰으로 바꿀 생각 있어?”라고. 기자가 5G 잘 터지냐고 질문했을 때 돌아왔던 대답처럼 “아니”라고 말했다.
  • [기자수첩] “규제는 강하고 지원은 약하고”…기업하기 안좋은 나라 한국
  • 최한결 기자|2019-06-18
  • 최근 나빠진 경제지표들과 기업들의 경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뿐만 아니라 밴처, 창업 기업들도 정부규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기업이 체감하는 경기 지수인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5월 잔산업 업황 BSI는 73으로 전월대비 1포인트 하락했다. 기업경기실사지수는 기업이 경기를 어떻게 체감하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전국 3172개 법인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영상황에 대한 판단과 전망을 조사한다. 이 지수가 100이하면 경기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기업이 긍정 기업보다 많은 것이고, 100 이상은 그의 반대로 경기를 낙관하는 기업이 비관하는 기업보다 많다는 뜻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 협회의 정책담당자들은 주요 경쟁국과 비교해 정책 지원수준은 낮고 규제강도는 높다. 지난 13일 한국경제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 간담회를 개최해 한국과 주요국의 정책지원 및 정부규제를 비교·조사했다. 한국을 100으로 두고 비교한 결과, 정책지원에서는 중국 123, 미국 118, 독일·일본 110이었고, 정부규제 강도에서는 중국 80, 미국·독일 90, 일본 96이었다. 조사 분야는 블록체인, 바이오, 사물인터넷, 우주기술, 3D프린팅, 드론, 신재생에너지, 인공지능, 가상·증강현실(VR·AR) 등 9개다. 정책지원에선 중국이 전 분야에서 앞섰다. 한국이 100일 때 중국은 신재생에너지·AI 140, 3D프린팅·드론·바이오 130, 블록체인·IoT·우주기술·VR/AR 110이다. 정부규제 강도는 7개 분야가 중국이 더 약했고 2개는 비슷했다. 중국은 3D프린팅·신재생에너지· AI 60, 바이오 70, IoT·우주기술·VR/AR 90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4차 산업혁명 육성 환경에서 중국이 가장 앞서고, 한국이 가장 뒤 처진 것으로 보인다"며 “’초연결’ 시대에 들어선 지금 분야를 가리지 않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보통 규제를 생각하면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중국의 규제가 더 강할 것이란 선입견은 오히려 이런 자료를 통해 사라지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경제 지표는 불확실성의 연속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2일 한은 창립 69주년 기념사에서 “올해 우리 경제가 수출과 투자가 감소하고 소비 증가세가 둔화해 성장세가 주춤한 모습”이라며 “앞으로 정부지출이 확대되고 수출과 투자부진은 완화될 것이지만 성장 불확실성은 한층 커졌다”고 한국 경제를 판단했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무역갈등의 장기화, 브렉시트, 홍콩 시위, 화웨이 국가 안보 위협 이슈, 세계교역량 위축, 수출 감소, 반도체 D램 등의 부진 등 경제 성장에 안좋은 소식만 즐비하다. 심지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유발된 금융위기 시절 2008년 4분기 이후 가장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0.3%)을 보여준 바 있다. 1분기 수출은 2.6% 감소하며 지난해 4분기(-1.5%)에 이어 2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연말부터 부진했던 반도체 수출이 올 2월부터 다소 개선된 흐름을 보였으나 LCD(액정표시장치) 등 다른 주력 수출품목들이 부진세를 떨쳐내지 못한 탓이다. 중국 경기 둔화로 대중 수출이 급감한 영향도 작용했다. 투자 역시 위축된 상태다. 설비투자가 전분기대비 -10.8% 감소하며 지난 1998년 1분기(-24.8%) 이후 21년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반도체 제조용 장비 등 기계류 투자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에 대한 지출에서 설비투자의 성장기여도는 –0.9%포인트였다. 규제에 관해선 비단 이번 정권의 문제만은 아닌 점은 한국의 한계점을 보여준다. 매해마다 대통령이 다를때마다 “규제 완화”, “정부 지원”등의 키워드는 항상 들린다. 이번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코드에 추가한 것에 대해 큰 파장이 일었다. 판교에 위치한 모바일 게임 개발, 유통을 책임지는 게임사에 근무중인 박 모씨(39)는 “WHO의 판단이 있기 전에도 게임사들은 게임중독법, 청소년 강제 셧다운제 등으로 오랫동안 규제받아왔다”며 “비단 게임사 규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세대는 만화책이 공격의 대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의 한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모씨는 “이미 기존의 한국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도 좋지 않은데다 이제 규제를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하나 더 생겼으니 고민”이라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스웨덴에서 E스포츠 경기도 관람하고, 문화관광체육부가 WHO 질병코드 관련 이슈에 대해 게임업계를 보호하겠단 자세를 취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정부 정책이나 기업 경영에 대해 규제를 보다 완화해 창업 벤처 기업들이 창의력을 펼칠 수 있도록 적극 지원을 해야 할 때다.
  • [기자수첩] 노조, 상생위해 공생의 협력 연구해야
  • 김태문 기자|2019-06-05
  • ▲ 김태문 기자(산업부장) 최근 mbk 사모펀드 컨소시엄이 인수한 롯데카드에서 노조의 소통과 업무방식에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직장인 어플리케이션인 '블라인드'에 올라왔다. 내용인 즉슨 롯데카드 노동조합의 업무방식과 소통이 답답하다는 내용이다. 해당 글쓴이는 "노사협의체에서 노조와 사측 만나서 매일 같은 이야기와 말을 살짝 바꿔 공지한다"며 "직원들이 블라인드고 뭐고 올리면 '니들은 짖어라 우린 가만히 있으련다'는 태도로 노조는 가만히 있음"이라며 비판했다. 이어 "(롯데)지주에서 본사를 방문해 손해보험 노조만 만나고 돌아갔다"며 "이런데도 노조는 가만히 있다. 지주의 태도에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지만 그래놓고 가만히 있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업무 처리방식에 "노조비 사용 내역 중 식비만 한 달에 몇 백씩 나간다"며 "이제 행동으로 보여주겠다지만 일부 대의원이 행동하자하니 가만히 있으라 했다"며 "위원장이 나서서 직원들과 소통해야 하는데 최근 본 사람이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직원들이 쟁의하자 시위하자 난리인데 위원장과 집행부가 묵살한다"며 직원들이 예전부터 위원장 적선제로 뽑으라 하지만 계속 간선제를 유지해 노조가 바뀔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쟁의 꺼리 많은 금융권 노조 사실 요즘의 금융권 노조들은 솔직한 얘기로 쟁의할 꺼리(?)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카드사의 경우 정부의 시장간섭으로 가맹점주들을 위해 수수료를 인하해 매출이 급격히 줄었다. 또 서울시는 ‘제로페이’를 만들어 시장에 진입하고 기업들을 가맹점으로 끌어들였다. 소비자들은 편한대로 카드를 사용하던 제로페이를 사용하던 하겠지만, 카드사 입장에서는 정부와 시(市)가 시장에 개입해 자신들과 경쟁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인데도 금융노조는 조용한 분위기다. 실력발휘만이 노조의 살길은 아냐 최근 우리나라의 노조들의 모습을 보면 각양각색의 노조가 쟁의를 하고 파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불법으로 주총장을 점거하고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체육관을 부숴버려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몇 달이 걸릴 것이라는 얘기가 기사화된 적이 있다. 르노삼성차 노조는 어떤가? 현대자동차 노조를 닮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공사현장에 자신들의 노조원을 사용하라며 아침부터 자동차에서 노동운동가를 틀어놓는 통에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상암동이 그렇고 을지로가 그렇고 성수동이 그렇다. 자신들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인가 보다. 그래선 곤란하다. 문제는 공권력이다. 공권력이 무너지면 사회질서가 무너진다. 그럼에도 공권력은 노조의 폭행으로 경찰이 다쳐도 가만히 있는다. 마치 누가 가만히 있으라고 한 것처럼. 2014년 당시 윤갑한 현대자동차 사장과 이경훈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은 “자동차의 품질 앞에선 노사가 따로 없다”며 “품질을 만족하게 해야 그게 고용안정이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라며 품질 경영에 앞장선 바 있다. 노사가 이런 공통분모를 찾아야 하는데 서로 다른 분모를 찾아 나누어지니 분규와 쟁의가 더늘어만 가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어렵다는 요즘 서로 살고 상생하기 위해 자신만의 주장만 내세우지 말고 서로 살기위해 머리를 맞대는 공생의 협력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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